[사람들] "벌거벗고 시인동네에 들어선 기분"

04/28(수) 08:06

누구나 한때는 시인이었지만 그 시심(詩心)을 잃지 않기가 어려운 일인지 나이가 들어야 안다. 냉소에 일찍 물드는 기자는 나이 먹지 않고도 이 사실을 잘 안다. 나이가 든 기자가 쓰는 시는 대체 어떤 것일까.

현대시학 4월호에 등단한 기자 설희관(52)씨는 그래서인지 ‘부끄럽습니다’‘부끄럽습니다’끝에 “아랫도리를 벗은 것처럼 부끄럽습니다”고 했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 시인동네의 초입에서 어슬렁거리는 일”도 그렇다는 것이다.

현대시학에 실린 설씨의 시는 ‘마흔 아홉에 쓰는 시’와 ‘석양무렵’‘햇살무리’‘63년전 사진’그리고 연작 ‘내 어린 시절’. 설씨는 이 5편의 시에 비극적인 가족사와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유년기의 아픔을 담담히 고백하듯 적고 있다.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했던 어려웠던 그때 이야기다.

“시의 본디 모습을 제자리에 돌려 놓은 것 같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는 시인 정진규 이성부씨는 “기교에 관심없이 오직 시에 충실하고 자기 감성에 철저하려는 천진무구함만이 읽는 이의 가슴을 조용하게 울릴 뿐”이라고 평했다.

“시인촌에 전입신고가 받아들여지면 오십의 나이테를 떼어내고 인생의 나이테를 다시 그리겠다”는 설씨에게 시는 삶의 영원한 숙제였다. 이 숙제는 도달할 수만 있다면 꿈 속에서라도 달려가야할 ‘아버지 닮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鐘’‘포도’‘제신의 분노’를 쓰고 한국전쟁때 월북한 시인 설정식씨. 연희전문을 나와 미 마운트 유니온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뒤 해방시단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때 아기였던 설씨에게는 ‘사촌 누이네 앨범속에’ 동그란 테안경의 모습과 몇권의 시집과 가난만을 남겨두고 북으로 ‘가출’한 아버지다. 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뭉쳐 시가 됐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을 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한 설씨는 “열심히 써 아버지의 그림자라도 따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의 홍수속에 모습도 없이 휩쓸려간 ’ ‘삼십대 청년의 정면사진 한장이 한평생 영정으로 남은 ’ ‘포르말린에 절인 나비처럼 시집속에 화석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 ‘아들보다 젊은 마흔하나에 세상에서 밀려난 불쌍한 시인’이고 ‘붉은 잉크 들고 종로구청에 찾아가 가출노인이 이제사 돌아오셨다고 (사망)신고해야 하는 아버지’다.

설씨는 한국일보 기자, 사회2부장, 여론독자부장, 문화부장을 거쳐 지금 한국일보사 총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태규·주간한국부기자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