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요다 징크스 깨라"

04/29(목) 08:16

“요다 징크스를 깨라.” 이창호가 자존심 회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역대전적 1승6패, 최근 5년간 전패. 최고기사 이창호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를 상대로 마크한 부끄러운 기록이다. 이 기록은 세계 어느 기사도 이창호에게 기록할 수 없는 기록중의 기록이다.

이창호를 상대로 한 정상기사들의 성적표를 잠시 살펴보자. 일본 일인자 조치훈은 이미 이창호에게 1승7패로 완패를 당하는 중이요, 중국 일인자 마샤오춘은 치욕의 10연패를 포함하여 5승16패, 중국 2인자 창하오도 1승5패. 가장 자주 만났던 조훈현마저도 3할의 성적표로 만족하는 실정이다. 가히 철권통치시대라 아니할 수 없는 요즘이다.

그런데 유독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만은 이창호 무서운 줄 모른다. 요다가 이창호에게 ‘거꾸로 된’성적을 올리는 건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그는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강한 눈매에다 파워까지 겸비해 상당히 촉망받는 기사였으나 아직까지 일본의 메이저 타이틀을 한번도 손에 잡아보지 못한 불운의 기사다. 일본내에서도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고바야시 사토루, 가토 마사오, 류시훈 등에게 밀리는 기색이 역력한 ‘어느덧’ 중견이다.

그런데 그는 희한하게도 한국기사에겐 유독 강하다. 간단하게 말해 ‘4인방’을 위시해 중견그룹까지 요다에게 승점이 앞서는 한국기사는 한명도 없다. 그러나 요다 자체가 세계무대에 자주 나섰던 인물이고 보면 간혹 머리를 내미는 중견기사에게 강한 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창호에게 강한 것, 그것도 원사이드하게 밀어부치는 장면은 누구도 인정할 수 없다. 요다는 최근들어 이창호의 속을 벅벅 긁고 있다. “이창호는 어렵지않다. 언제 어느 때고 도전한다면 받아줄 용의가 있다.”

약간은 시건방진 ‘도전’ 이란 표현을 듣고 이창호는 달리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무려 1승6패. 아쉬우면 이기는 수 밖에 없다. 한두번도 아니고 어찌 매번 컨디션이나 피로를 가지고 핑계를 댈 것인가.

이창호도 이 대목에선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다. 그도 사석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기사는 요다라고 밝힌다. 스스로 구겨진 체면을 일부나마 곧추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창호가 아쉬운 건 그동안 패점이 너무 많아 한번쯤 설욕한다고 해서 그 징크스가 단숨에 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제아무리 세계정상에 뒷동산 언덕 오르듯 올라도 요다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한 이창호는 곤히 잠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더욱 더 아쉬운 건 요다가 예전만 못해 세계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창호가 아무리 약이 올라서 한번 만나고 싶어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년전부터 이창호는 그런 점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단박에 요다를 꺾어보려고 서두르다가 오히려 패점만 늘어나는 수모를 겪었다.

요다가 이창호에게 강한 건 한마디로 ‘기풍’에서 찾을 수 있다. 엇비슷하게 뒤가 강한 타입이고 이창호보다는 요다가 전투력에서 좀 앞서기 때문에 결국 요다가 매번 근소하게 앞서나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창호는 답답하다. 누가 요다와의 라이벌전이라도 열어주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다음 세기가 되어도 요다와의 승점을 줄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강 이창호. 그러나 ‘준최강’도 아닌 요다가 이창호를 이긴다는 사실은 승부세계의 오묘함을 더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이창호의 대응이 두고두고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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