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힘겨루기] 충돌 직전서 잠복한 '수사권 독립'

05/12(수) 13:51

경찰이 또 다시 ‘수사권 독립’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찰과 검찰의 50여년에걸친 힘겨루기가 재연되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 공약사항인 자치경찰제가 본격 추진되면서 이는 수사권 독립과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를 개발, 검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동안 숱한 좌절을 되씹을 수 밖에 없었던 경찰로서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을 방패삼아 숙원을 풀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되지도 않을 일을 경찰 특유의 근성으로 밀어 부치려 한다는 식의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철저한 반박논리로 경찰의 공세를 봉쇄하고 있다.

50여년 동안 일방적으로 밀려온 경찰의 이번 공세는 사뭇 비장하기 까지 하다. 경찰총수가 공개적으로 선봉에 나선 것이다. 김광식경찰청장은 지난 4일 전국 지방경찰청장회의에서 “수사권 현실화는 자치경찰제 도입 및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공식적 자리에서 수사권 독립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모든 경찰관은 자치경찰제와 수사권 현실화 필요성을 담은 교양자료 ‘자치경찰제’를 읽고 숙지하라”고 지시했다. 검찰과의 일전을 앞두고 임전태세를 가다듬는 분위기이다.

경찰, 해방이후 끈질긴 수사권 독립 요구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독립 논쟁의 시발은 해방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검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던 싸움이었지만 경찰의 끈질긴 시도는 정치적 격변기를 놓치지 않았다.

1945년 남한의 행정권을 장악한 미군정은 미국식 수사권 제도를 확립하려 했다. 경찰에 수사권, 검찰에 소추권을 나누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검찰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일제의 앞잡이였다는 비난에 몰리고 있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뒤 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면서 국회에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됐다. 하지만 검사출신인 엄상섭의원등이 일제히 나서 “국가경찰제 아래서는 수사권이 독립될 경우 경찰파쇼화가 생길 위험이 크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4·19 직후 허정 과도정부는 경찰개혁 심의회를 만들어 일본식으로 경찰에 1차적 수사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 여기에는 미국인 전문가들의 의견이 크게 반영됐다. 이번 역시 검찰의 로비에 밀려 흐지부지 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수사권 독립을 논의할 사회적 분위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5·16 쿠테타 직후 5차 헌법개정에서 박정희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검증 영장 청구권을 검사에게 준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헌법 조항으로 못을 박아 수사권 독립주장의 근원을 잘라 버린 것이다. 검찰에 힘을 실어주어 인권을 옹호한다는 논리에서 였다. 정권의 정통성이 없던 박정희로서는 민심을 돌리기 위한 고육지책중의 하나였다. 사실상 눈 가리고 아옹식의 무리한 발상이었지만 가뜩이나 독재권력의 앞잡이라고 욕을 먹던 경찰로선 전혀 항변할 수 없는 처지였다.

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경찰은 외곽을 때리는 수법으로 중립화를 노렸다. 신군부가 박정희 정권과는 달리 경찰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시대 분위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경찰퇴역인사들의 모임인 경우회는 국립경찰의 중립화와 수사권 독립에 관한 건의문을 각계에 발송했다. 여론 조성을 위한 것이었다. 이어 경찰은 ‘대화자료’라는 유인물을 만들어 국회 로비활동에 나섰다.

검찰 반격으로 번번히 주저앉은 경찰

경찰 안팎의 이같은 공세에 검찰 역시 일제 반격을 벌였다. 검찰과 재야 법조인들은 경찰공무원 5만8,000여명중 고시합격자가 51명(0.008%)뿐이라는 등의 자료를 제시하며 아직 경찰 수준으로는 수사권 독립을 가지기에 무리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경찰 대화 자료의 허구성’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경찰의 주장은 왜곡 날조라고 몰아부쳤다. 결국 이 싸움 역시 일방적인 검찰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84년 경찰청의 전신인 치안본부는 수사권 독립을 골자로 하는 ‘2000년대를 향한 경찰발전 방향 계획안’을 마련했으나 치안본부장의 지시로 폐기하고 말았다. 검찰의 역공을 두려워한 선제조치였다. 92년에는 경찰청 ‘2000년대 기획단’이 수사권 독립등 총체적인 경찰행정 개편방안을 만들어 공청회까지 열려고 했으나 내부의 제동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 당시에는 경찰의 선거개입을 막기위해 야당이 적극적으로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던 상황이라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경찰이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97년 7월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민생범죄만 경찰이 독자적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했으나 국회에 상정하지는 않았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찰에 생색을 내면서 검찰의 눈치를 살피는 이중 플레이를 펼쳤던 것이다. 이 법안의 발의단계에서 검사 출신의 박상천의원(현 법무부 장관)과 경찰 문제 전문가로 관련 저서까지 펴낸 정균환의원(현 국민회의 사무총장)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어 98년에는 경찰대학이 펴낸 ‘경찰수사론’이 빌미가 되어 검찰과 경찰의 논쟁이 불붙었다. 그 어느 때 보다 경찰의 강기가 강하게 느껴진 싸움이었다. 이 책에서 경찰은 “국가 형벌권이 검찰에 편중돼 있어 사건 처리지연에 따른 인권침해 및 비능률이 야기된다”고 검찰의 수사지휘·감독에 강한 비판을 했다. 더욱이 헌법과 형사소송법등 5개 실정법을 경찰의 수사독립권을 제약하는 ‘노예법규’라고 규정하고,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면 견제기구가 없어 검찰파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과감한 공격을 퍼부었다.

검찰은 경찰의 도전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아예 연구보고서 형태의 책자를 만들어 반격했다. 서울고검이 펴낸 ‘수사지휘론’은 경찰 주장의 모순과 문제점을 조목 조목 반박하는 한편 오히려 검찰의 지휘권한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며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했다.

검찰은 “앞으로 수사지휘 전담검사제도를 도입, 경찰서장 과장 계장등 사법경찰관이 행사하고 있는 현장수사 지휘권을 되찾아야 하며 송치사건 처리과정에서 사법경찰관의 불법구금 폭력 금품요구 등의 인권침해를 막기위한 인권옹호전담검사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동안 설전을 벌인뒤 양측 모두 잠잠해졌지만 불씨는 그대로 살아있는 형국이었다.

그동안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경의 힘겨루기 승패는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어느 정권이든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양대 기구 어느 쪽에도 소홀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역대 정권은 사회 각계에 고루 우군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검찰에게 일방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자치경찰제를 공약으로 내건 이번 정권의 현실판단이 궁금하다.

손태규·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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