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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주최 세미나] 발제 요약

◇지식인은 누구인가/이상희 상지학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는 군화로 짓밟힌 처절한 상태였다. 전반부는 일본 군국주의의 군화였고, 후반부는 일단의 정치군인들의 군화였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도 있었고 ‘인텔렉추얼(Intellectual)’도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과감하고 행동적인 지식인은 독립운동, 투옥, 처형으로 얼룩진다. 이에 비해 다소 온건한 민족계몽·개화운동에 정성을 다한 지식인들은 인텔렉추얼의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두 부류가 자기 희생을 무릅쓰는 동안 전문화·기능화된 ‘지식인’들은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고용당함으로써 안주와 풍요를 누렸다. 그리고 정통성 없는 정권에 적극적으로 빌붙어 출세와 영달을 꾀해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지식인들은 전문화, 기술화, 기능화 쪽으로 점점 변질돼 가는 것 같다. 그 가혹한 시대상황 속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민족과 사회와 역사에 몸바친 사실을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숙연한 생각에 잠긴다.

이제 보편적 가치와 전인류의 입장에서 현대사회의 문제에 접근하고 국가와 특정 권력의 벽을 넘어 민족과 민족, 시민과 시민이 연대하는 차원에서 지적 비판활동을 전개할 때다.

◇한말·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이만열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성장하고 있던 지식인들은 폐쇄적인 세계관을 극복하고 자유주의적인 가치관을 수용해 봉건성을 극복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대에 들어 해외유학을 통해 자유주의를 접한 지식인 중에는 뒷날 민족문제를 두고 훼절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중 상당수가 일본유학을 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그 훼절과 친일행각은 민족의 고통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못하고 지식인으로서 삶이 민중과 유리돼 있었으며 민족(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1923년 경을 전후해 사회주의 사조가 지식인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이들을 진보적 지식인으로 간주하게 됐다. 사회주의자들의 특징의 하나는 그들이 지식인으로서의 신념을 고수하는 데 비교적 철저했다는 것이다.

◇1945∼1960년간의 민족지성 재평가/조동일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해방 이후 1960년까지 지식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해 비판하고 개탄하는 일은 많이들 해왔다. 따라서 국문학자인 나는 미래의 통일조국을 위해 우리가 이 기간의 지식인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즉 당시 남쪽의 우익체제와 북쪽의 좌익체제가 각기 지닌 편향성을 극복하고 그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선을 찾기 위해 언어·사상·학문·문학 부문에서 민족문화의 저력을 계승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학문한 이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연대(1961∼1987년) 지식인의 역할과 반성/정영태 인하대 정치학과 교수

지식인의 공통점은 비판이어야 한다고 본다. 개발연대에 지식인들이 정권에 참여해 부당한 짓거리를 합리화한 사례는 많다. 거기에는 나의 은사도 포함돼 있다. 일부 학자들의 개발독재에 대한 지지와 참여는 5공 군부정권 하에서도 나타났다. 지식인이 개별적으로 그런 처신을 하는 사례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문제는 지식인 ‘집단’이 사회비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발연대에 대부분의 지식인이 침묵하거나 묵종한 이유는 독재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통제 때문이지만 당시 학계를 지배한 근대화 패러다임이 가져온 페단도 컸다. 주로 미국에서 수입해온 이 패러다임은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이상 성취돼야만 정치·사회적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그런 경우조차 경제발전이 저절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처럼 가정함으로써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병행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고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다.

◇지성의 변조:민주주의로의 이행과 시민사회의 성장(1987년∼현재)/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이에 따른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지식인의 활동모습도 저항과 비판으로부터 참여와 대안마련으로 달라졌다. 90년대 이후 일부 지식인은 정치권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음으로써 사회개혁을 위한 정책과제를 개발하거나 권력유지를 위한 논리정립에 주력하기도 하는 양태를 나타냈다.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지식의 내적 구조도 민주화 전문화 정보화 지구화되었다. 최근에는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의 위상이 약화돼 가는 경향을 보인다. 지식인들은 사상이나 비판의 역할보다 실용성, 전문성을 강조하고 체제와 같은 거대한 문제는 제기하지 않으며 체제 유지냐 혁파냐 사이에 대치선을 그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지식인의 비판적 책무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비판성과 사상성을 고려하지 않은 실용성과 창의성의 논의가 ‘신지식인’이라는 허명으로 확대될 때 그 결과는 지성의 변조를 넘어 지성의 변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데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

<토론 요약>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개발연대(1961∼1987년)에 대한 평가로 ‘정치는 실패했지만 경제는 성공했다’는 논리가 득세한 데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정치가 실패했다면 그것을 유발한 경제적 이유가 있다.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분리하는 관점은 단순한 사고의 산물로 이것이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것은 당시로부터 이어져온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이삼열 숭실대 철학과 교수

지성사는 학문사와 구별해야 한다. 지식인과 학자는 반드시 동의어는 아니다. 개발독재때 비판적 발언과 참여로 해직이나 법적 처벌을 당한 교수, 언론인, 종교인, 문인 등 지식인 상이 좀더 부각돼야 하지 않을까.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임 교수가 ‘신지식인’에 대해 “경제적 시장논리에 따라줄 것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 대해 한 방청객이 ‘신+지식인’이 아니라 ‘신지식+인’으로 보면 좋은 얘기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식으로 보면 지식인의 개념이 흐려진다. 그런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정권 차원에서 위로부터 동원된 관제화된 운동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진우 계명대 철학과 교수

시대 변화에 따라 지식인들은 우선 저항 자체가 도덕적 선이며 또 지식인은 반드시 권력과 대립관계에 있다는 근대성의 편집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은 죽은 것이다.

◇조동일 서울대 국문과 교수

(민주화가 정착되고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총체적 전망에 입각해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일부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지식인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이제야말로 지식인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앞으로 남과 북의 통일, 세계사적 문제해결, 근대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야기하는 온갖 문제의 극복을 위해 지식인은 이제부터 할 일이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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