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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어협 발효5개월] 목숨건 불법조업 '고데구리'

6월 18일 밤 11시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진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일교차가 심해지면서 밤안개는 흔한 사정이 됐다. 바다쪽으로 희미한 불빛을 흘려주던 포구주변 횟집들이 하나 둘 문을 닫자 선창은 어느새 칠흑으로 변했다.

포구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던 10톤짜리 소형어선인 ○○호 선장 최모(40)씨와 일행으로 보이는 4명의 선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출어 채비를 했다. 이런 광경은 이날 선창을 따라 몇곳에서나 눈에 띄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다대포 앞바다엔 이들 배의 행렬이 불을 밝히며 40~50㎙간격으로 줄지으며 파도를 갈랐다. 배앞쪽에서 뿜어내는 불빛이 없었더라면 이같은 짙은 농무상황에서 배가 운항중인 사실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날같이 한밤중, 짙은 안개속에서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은 어업허가가 없는 일명 ‘고데구리’라 불리는 20톤미만 소형기선저인망이다. 촘촘한 그물로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 연안의 치어까지 마구 잡는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어로활동이 금지된 업종이다.

불법어로행위로 보상혜택도 없어

멀쩡한 날 조업을 나갔다가 단속에라도 걸리면 한달치 수입 수백만원을 고스란히 벌금으로 날리고 전과자가 되기 십상인 업종이다. “고데구리 배를 타려면 전과 10범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이들 업종 종사자들에겐 상식이다.

새 한일어업협정이 1월22일 발효된지 5개월. 발효이후 근해어장이 좁아지면서 합법적인 조업구역을 가진 업종의 선단들이 ‘내 구역’지키기에 혈안이 되면서 불법조업의 대명사격인 ‘고데구리’ 배들은 발디딜 틈이 사라졌다.

그래서 ‘고데구리’종사자들은 날씨가 나빠지기만을 기다린다. 해경 단속선이나 어업지도선이 바다에 못나 갈 정도의 악천후가 이들에겐 ‘기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96년말 전국 등록어선 7만5,244척의 40%인 3만여척이 무허가·무등록 어선으로, 이들 대부분은 불법 저인망어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도 표본조사에 의한 수치인데다 그동안 체계적인 조사 한번 못한 현실이고 보면 실제 어선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만해도 1,000여척에 이르는 것으로 부산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의 근거지는 부산을 비롯, 마산 진해 거제 통영 사천 남해 하동등 남해 연안일대에 널리 퍼져 있다. 새 한일어협 이전에는 쓰시마해역등 일본측 배타적경제수역(EEZ)까지 넘나들었다.

특히 정부가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어민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 소형기선저인망은 어로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바다가 생명줄이자 생계형 어로를 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불법’이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에 따라 어민들은 현재 중·대형 기선저인망 어선들을 대상으로 추진중인 감척 등 각종 정부 지원책에 소형기선저인망 어선도 포함시켜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부산시 수협관계자는 “사실 한일어업협정 이후 가장 타격을 입고 있는 어민들이 ‘고데구리’종사자들이다. ‘불법’의 원죄에 묶여 아무런 호소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다”면서 “어업협정의 근본취지가 해양자원과 어장환경보호 등에 있는 만큼 자원고갈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이들에 대한 폐업지원이나 양성화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데구리’가 즉각적이고, 칼날이 시퍼런 피해를 직접 입은 대표적 어로종사 업종이라면 수리조선과 어구·어망제조업체, 수산물가공업체 등은 한일어업협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또한 광범위하게 드리워지고 있는 수산관련 업종이다.

텅빈 선박수리소 등 지역경제에 엄청난 타격

130여개 수리조선업체가 밀집된 부산 영도구 남항일대 수리선 도크에는 접안된 배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수리선을 뭍으로 끌어올리는 레일은 대부분 사용한지 오래된듯 진붉게 녹이 차올라 있다.

예년 같으면 4월부터 6월까지 대형선망과 대형기선저인망 등 업종별로 철망기(그물을 걷어 올리는 시기, 즉 휴어기)인 요즘, 어선수리물량이 쏟아져 가동률이 100%대를 넘어 철야작업까지 해야할 성수기인데 한일어협이 발효된 올해는 60%에도 못미치는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선박수리비 시세를 물어보러 왔다는 부산 서구 영진수산의 한 관계자는 “고깃배를 수리한들 뭣합니까. 2억원정도 든다는데 조업구역이 축소된데다 앞날도 불투명해 수리를 할까 말까 고민중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시수협에 따르면 수리조선업의 경우 130여개중 59개업체가 조업단축, 2개업체가 휴업중이며 정상조업률(가동률 80%이상)을 보이고 있는 업체는 2월 67.7%, 3월 65.4%, 4월 52.3% 등으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특히 어선을 제작하는 20개 중소 조선소중 정상조업을 하는 업체는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魚)상자를 제조, 부산공동어시장에 공급하는 제조업체들도 위판물량 감소로 수요가 급감, 업체수가 지난해 25개에서 13개로 줄었다.

부산지역 50여개 어망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예년에는 철망기인 요즘같으면 주문이 넘쳐났지만 올해는 출어포기와 감척등의 영향으로 새 어망을 교체하는 선주가 없어 창고에 재고만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부의 감척사업이 이달부터 본격화하면서 대규모 감척이 예고돼 이들 수산관련 업계의 어협피해는 이제 시작인 셈이며 수요감소에 따른 경영난 악화는 갈수록 심화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한일어협피해가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지역 수산물 수출신용장 내도액은 전년대비 54.8% 감소한 반면 수입신용장 개설액은 146.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어획감소가 지역경제엔 무역역조현상을 빚게 하는 주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목상균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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