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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어협 발효5개월] 할당량 소진 연근해에서 제살뜯기

도산, 파산, 제살뜯기조업. 새 한일어업협정 발효 5개월째인 경북동해안 어민들의 실상이다. 시름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어민들의 마음은 여름날씨 마냥 음울하고 짜증스럽다.

협정발효 5개월째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동해안은 일본수역에 들어가지 못한 우리어선들이 연일 연근해어장으로 몰려들어 제살뜯기식의 조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이미 설치해둔 어구위에 다시 어구를 설치하는 겹치기 그물투망등으로 분쟁도 잦다.

이곳에서도 일부어민들이 ‘고데구리’ 작업을 하고 있어 어자원보호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경북동해안의 최대어업전진기지인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항에는 최근 활오징어 성어기를 맞고도 이미 지난달에 일본경제수역내에서 잡을 수 있도록 허가된 어획량을 모두 소진한 100여척의 오징어 채낚기어선들이 항구에 발이 묶여 있다. 발이 묶인 채낚기 어선의 선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먹고 노는 것 뿐이다. 소주가 이들의 안타까움을 함께 할 뿐이다.

할당량 이미 소진, 고기 있어도 못잡아

“뱃사람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데 바다에 나가지 못하고 부두에서 소주만 마시고 있으니 산송장이나 다를바 없지요.” 좌절과 분노가 가득한 선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구룡포 선주협회 이도락(65)회장은 “일본경제수역에서 잡을 수있는 올해 할당량 1만1,000톤을 우리어선들이 출어 2개월만인 지난달 이미 모두 소진해 출어를 하고싶어도 할 수없는 실정”이라며 “새 어업협정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성어기에 만선의 기쁨으로 항구에 들어오는 선원들이 두툼한 돈뭉치를 선주들로부터 받아들고 한껏 기분을 내던 시절은 이제 추억이 됐다. 구룡포항 소속의 최은하(46)선장은 27년간 애지중지하며 생사를 갖이한 24톤급 근해자망어선인 자신의 배가 출어를 하지못하는 쓸모없는 배로 전락돼 파산 위기에 몰렸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또 출어를 해봤자 출어경비도 건지지 못하는 조업조건 때문에 항구에 배를 묶어두는 어선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동해안지역의 수산물가공업체들을 비롯한 냉동창고업체, 생선상자생산업체, 어선수리업체들도 물량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어협발효 이후 동해안지역의 20여개의 수산관련업체들이 도산과 파산, 휴폐업했다.

위판량 절반으로 급감, 요즘은 ‘신 보릿고개’

동해안의 각 수협들도 어선들의 출어포기로 인해 위판장의 어획량이 절반수준으로 떨어져 수협이 생긴이래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경북동해안 최대수협인 포항시 영일수협의 경우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2,718톤의 위판량과 77억3,000여만원의 위판고를 올렸으나 새 어업협정이후 절반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로인해 올해 사업계획까지 다시 조정해야 할 정도로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고있다.

수협의 한관계자는 “어민들을 지원하는 수협마저 이제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면 어민들의 생활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더욱이 이같은 상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악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경북동해안 어민들 사이에서는 요즘 ‘신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어민들의 고통은 외면한채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피해보상금 지급마저 내년 5월로 미뤄 어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어민들은 “정부가 어민들을 죽이는 행위만 하고 있다”며 “정부가 협상력과 준비부족으로 어민들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입에 풀칠은 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분개하고 있다. 보상을 빨리 해주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어려운 어민들에게는 공공근로사업이라도 할 수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차라리 배 불질러버리고 싶은 심정

27년간 애지중지하던 자망어선을 부두에 묶어두고 있는 박현철(52)씨는 “보상금 지급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이리저리 돈을 빌려 4식구가 그동안 생활해 왔다”며 “이제와서 또 1년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차라리 배를 불질러 버리고 가족과 동반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극언까지 했다.

고통이 갈수록 심화하자 일부지역의 어민대표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 스스로 경비를 마련해 민간해외어장개척단을 구성, 수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어장 개척 등에 나서고 있는 것. 반면 정부와 해양수산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부처들은 어민들을 위한 대체어장 개발을 비롯한 자금지원 및 국가간 입어 협의 등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뒷짐만 진채 구경만하고 있어 어민들의 불만을 더 높이는 실정이다.

조업을 포기한 어선이들이 늘어나면서 동해안의 각항포구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도 잦아졌다. 실직어민들의 급증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폭력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정박한 어선들에서의 절도사건도 늘어나고 있다.

포항해양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최근 동해안지역의 각 항포구에 정박되어있는 어선에 설치된 어군탐지기 등을 비롯한 고가품의 통신장비만을 싹쓸이 해가는 도둑들이 설쳐 동해안 어민들이 이중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실직선원들에 대한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에도 경북포항시 북구 포항구항에 정박한 13톤급 오징어 채낚기어선 동성호에 도둑이 들어 시가 500여만원 상당의 어군탐지기를 도난당하는등 올들어서만도 관내에서 10여척의 어선들이 통신장비를 도난당했다.

포항= 이정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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