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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8월 해결' DJ 깊은 뜻 뭔가

“김종필총리는 나를 위해 동서남북으로 애쓰고 계신데, 진실로 감사해야 한다. 자민련이 있었기에 선거에서 이겼고, 원내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다. 특별히 당부하는 데 자민련과 반드시 협력해 잘지내야 한다.”

고급옷 로비의혹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의혹으로 정가가 들끓던 지난 10일 청와대 만찬에서 김대중대통령은 국민회의 의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위기에 봉착한 김대통령이 새삼 JP예찬, 나아가서는 보은론을 들고 나온 것은 적잖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대통령의 뜻은 1주일 뒤 대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금 더 구체화됐다.

“내각제 개헌은 양당이 협의해서 8월에 해결하겠다. 한 두달만 기다리면 여러분이 납득할 만한 방안을 마련할 테니 기다려달라.”

원론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김대통령의 발언은 여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전 발언의 가장 큰 의미는 내각제 논의에 함구령을 내렸던 김대통령이 스스로 이 문제의 뚜껑을 열었다는 점이다. 미루어 놓았던 숙제를 풀기 위해 김대통령이 움직이는 조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각제 ‘물밑논의’ 서곡인가

발언의 진의를 묻는 한 참모에게 김대통령은 “특별한 상황변화는 없다”고 짤막하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헌 논의를 유보시킨 이후 청와대와 총리실은 물론, 국민회의와 자민련 양당 간에도 내각제와 관련한 모든 의사교환이 중단된 상태다. 경우에 따라선 김대통령의 발언이 양당간에 본격적인 물밑논의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서곡으로 들릴 수 있다.

내각제 해법 만들기가 시작된다면 이는 김대통령이 구상하던 시간표가 다소 앞당겨졌음을 의미한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 거듭된 회견과 발언을 통해 “내각제는 8월까지 논의를 유보한다”는 표현을 써 왔다. 이런 언급은 9월부터 김총리와 개헌과 관련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개헌에 소요되는 물리적인 시간이 3개월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김대통령의 뜻은 사실상 연내 내각제 개헌이라는 자민련과의 약속을 변경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유추돼왔다. 그러나 8월에 내각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달부터 준비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더욱이 김대통령은 ‘김총리와 내가’라는 표현에서 ‘양당이’ 해결하겠다는 말로 협의 주체의 범위를 넓혀 놓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과거 대선후보 단일화협상 때처럼 양당의 중진들이 예비접촉을 통해 밑그림을 그려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슬슬 얘기해보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진의가 여기까지 이르고 있는 지는 분명치 않다. 어떻든 여권의 중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물밑 논의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특히 자민련측에선 김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내각제 문제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리려는 자세다. 자민련 김용환수석부총재는 “일정이 앞당겨졌음을 의미한다” 면서 “물밑논의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내 생각도 정리해 놓았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연내 내각제개헌은 반드시 관철돼야 하지만, 내각제 시행시기는 다른 문제”라고 말해 먼저 개헌절차를 완료하고 내각제 시행시기를 늦추는 단서조항을 두는 타협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민련, 적극적 자세 보여

자민련측이 적극적인 것은 현 국면이 국민회의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개헌 논의를 유보시킨 후 수개월 동안 현 정권은 일련의 악재가 잇따라 위기를 맞고 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등 잇따른 도덕성 시비, 전통적 지지세력의 이반조짐 등이 나타난 뒤 국민회의의 입지가 예전같지는 않다. 정권출범 초기 김대통령측은 내각제 문제의 해법으로 자민련과의 결별이라는 대안을 배제하지 않았다. 보수정당과의 결별후 개혁세력을 집결시키는 정계개편은 언제나 유효한 수단으로 남아 있었다. 정권의 위세가 한껏 떨어진 지금, 국민회의의 대안은 극히 제한돼 있다. 자민련과의 결별은 일단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진로라고 할 수 있다.

진형구 전대검공안부장의 발언파문이 내각제 문제의 결론을 앞당기는 파급효과도 가져온 셈이다. 최후의 수단이 배제될 경우 김대통령의 내각제 해법은 두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은 자민련측에서 제기한 대로 개헌시기와 시행시기를 분리해 사실상 내각제를 늦추는 방안이다. 이미 자민련 이인구부총재는 연내개헌을 완료하면서 시행시기를 총선이후로 늦추도록 단서조항을 다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국민회의에서는 시행시기를 임기말인 2002년께로 늦추자는 방안이 나와있다. 이런 방안들은 연내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거론되는 것이지만, 현재 내각제에 관한 여론분포와 야당의 태도를 볼 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여야간의 공수가 전환되면서 한나라당내부의 내각제 세력이 세를 잃은 상황이어서 더욱 실현가능성이 난망이다.

2원집정제 등 내각제의 형태를 놓고 절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박태준자민련총재는 공개적으로 2원집정제로의 타협을 주창한 적이 있다. 국민회의 일각에서도 지난해 2원집정제적 운영으로 자민련과 타협을 하려다가 김대통령의 제지를 받아 좌절된 적이 있다. 그러나 2원집정제는 사례가 다양하고 권력분점의 내용을 놓고 복잡다단한 준비협상이 필요한 방안이다.

DJ 정확한 진의에 신경 곤두세워

김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일까? 김대통령은 지난 4월 자민련과의 연합공천을 통해 내년 총선을 치르겠다는 방침을 분명히했다. 이와함께 중선거구제에 집착하고 있는 대목은 어떤 경우든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의 틀을 임기말까지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각제 논의를 공식적으로 앞당길 생각은 없는 것같다는 게 핵심측근들의 공통된 견해다.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어느때보다 자민련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 이라면서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시기를 택해 협상을 시작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말의 뉘앙스를 바꾼 것은 자민련과의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던진 유인책일 뿐, 개헌논의시기를 가능한한 늦추겠다는 자세에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각제는 늦추면서 자민련을 계속 끌어안으려는 국민회의, 호기를 맞아 약속이행을 관철하려는 자민련의 겨루기가 7월정국을 보는 또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같다.

유승우·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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