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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재벌개혁 고삐 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다. 칼은 공동여당인 자민련도 공정위에 주는 것을 반대했던 계좌추적권(금융자료열람요구권)이다. 공정위가 계좌추적권(금융자료열람요구권)을 처음으로 발동하자 재벌들이 아연 긴장하고 있다. 최근 경기회복을 틈타 느슨해진 재벌들의 구조조정을 다잡기위한 정부의 고강도 정책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처음 들이댄 곳은 현대·삼성그룹. 공정위는 5대그룹에 대한 3차 부당내부거래 조사와 관련, 두 그룹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고, 수법도 상대 그룹의 계열사를 서로 지원해주는 등 교묘해지고 있어 계좌추적권을 지난 10일 발동했다.

현대·삼성 부당내부거래 혐의 포착

공정위는 현대 1조원, 삼성 5,000억원 규모의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잡고, 11개 금융기관에 대해 두 그룹 11개 계열사의 금융거래내역에 대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공정위 김병일사무처장은 “대우·LG·SK 그룹도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권한을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 삼성 두 그룹은 은행이나 증권사에 특정금전신탁을 개설, 특정 계열사의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를 낮은 금리로 매입해주는 방법으로 지원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기업은 현대 9개, 삼성 2개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98년 1월~99년 4월이 조사대상인 이번 조사에서 포착된 내부거래규모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전인 1,2차 조사때보다 훨씬 컸으며, 삼성그룹도 2차조사때보다 지원성 거래규모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올초 계좌추적권을 확보했을 때만 해도 “권한을 가진 것만으로도 조사는 문제없을 것”이라며 권한 발동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대로 연내 재벌개혁을 마무리 하기위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압박수단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인 계좌추적권의 발동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계좌추적권은 조사때마다 난관에 부닥쳤던 금융기관을 통한 내부거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다. 특정 계열사의 기업어음을 높은 가격으로 매입해준 계열사가 바로 적발되기 때문이다. 상대 그룹의 계열사를 같은 규모로 교차 지원해주는 교묘한 수법도 더이상 공정위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각종 지원을 통해 계열사 체제를 꾸려온 재벌들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같은 계좌추적권의 강력함 때문이다.

5대그룹 모두에 계좌추적권 발동

공정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계열사 지원사실이 확인될 경우 유사한 사례를 갖고 있는 대우와 LG, SK 등 나머지 3개 그룹에 대해서도 계좌추적권을 발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발동하게 된데는 재벌들이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다른 그룹과 약정, 서로 상대방 계열사를 지원함으로써 부당내부거래 조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벌들이 지난해 공정위의 1,2차 조사를 받은 뒤 한층 교묘한 방법으로 계열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주로 그룹간 교차지원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교차지원을 했을 경우 공정위는 금융거래 자료를 연속해서 추적하는 수 밖에 없고, 이같은 요구에 금융기관이 금융거래실명법을 들어 난색을 표명하자 계좌추적권을 발동한 것이다.

공정위는 또 재벌들이 은행의 특정금전신탁을 이용, 계열사 기업어음을 사주고 증권사로 하여금 유가증권 인수에도 적극 개입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주변에서는 이번 계좌추적권 발동이 어떤 성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재벌개혁의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있다.

한편 공정위는 LG그룹 계열사들이 데이콤의 지분을 위장보유해왔다는 참여연대의 신고에 따라 다음주께 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공정위는 조사가 진행돼 위장계열사임이 밝혀지고 내부지원의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인정된다면 계좌추적권을 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LG그룹이 그동안 친인척이나 관계회사를 통해 20% 이상의 데이콤 지분을 위장관리해왔다며 공정위의 조사를 촉구했다.

유병률·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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