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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꺽어진 꽃으로 살기에는 할일많은 세상이죠"

경기 수원시에 있는 불교포교원 성불원에는 ‘광고모델처럼’ 잘 생긴 한 비구니 승려가 있다. 주변사람이라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쉽지않은 1급 지체장애아 3명이 전부인데, 최근 이 스님 앞으로 갑자기 ‘응원전화’가 몰려들고 있다. “속이 다 시원하다. 큰 일 하셨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정말 용기있게 잘 해주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주로 연예인들. 얼마전 그녀가 내놓은 책을 읽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그 자신, 한때 인기정상을 향해 치닫던 어린 가수이자 광고모델로 방송가와 연예계를 뛰다가, 출가와 환속을 반복한 뒤 결국 완전히 불가(佛家)로 돌아간 주인공, 보현스님.

연예인시절 보고 겪은 음지의 이야기

“왜 중이 저런 얘기를 하나, 중이 된 사람이 이제와서 뭐하러 저런 얘기를 하나 비난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고, 앞으로라도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겪은 얘기를 하게 된겁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고 한 건 전혀 아녜요. 한때는 제게 아주 큰 상처를 주었던 분들이지만, 이젠 오히려 감사하거든요. 그렇게 힘들었기에 더 빨리 제 길을 찾아서 불교에 의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진심으로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체아들의 수족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스님이지만, 워낙 기구했던 그녀의 행로에 대해 주변에선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 몇 년전부터는 영화를 만들자는 사람도 있었고, 그 제의를 고사한 뒤 최근엔 다시 한 출판사 사장이 집요하게 설득하고 나서면서 그녀는 13년만에 결국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곧바로 어렸을때부터 써 온 일기장들을 모두 꺼내들었고, 또 연예인 시절 늘 소형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생각나는 것마다 녹음했던 테입들을 모두 되틀어보며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주로 연예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자신이 보고 겪은 모든 음지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그것이 ‘타래’라는 책이다. 모두 솔직하게 밝혔지만, 행여나 피해가 갈까하여 실존인물의 이름은 거의 없애버렸다. 그러고도 아직 그녀에겐 ‘수천권의 책이 더 머릿속에 들어’있다. 그만큼 험난한 삶이었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그녀는 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초 가수 이경미로 더 잘알려진 비구니

속가의 본명은 황옥희, 80년대 초엔 가수 이경미란 예명으로 더 알려졌었다. 피어리스, 유한양행 등의 광고모델로, 인기가수로 한창 절정기를 달리던 그녀의 삶은 이미 출생때부터 단 한순간 순탄한 적이 없었다. 고향은 충남 홍성. 태어난 집은 말할 수 없이 가난했고, 그중에서도 그녀는 아래로 6명의 동생을 달고 있는 장녀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매일 앙숙처럼 싸움만 벌였다. 자연 동생들을 거두는 것도 장녀인 그녀의 몫. 그 무겁고 답답한 현실속에서도 그녀는 어려서부터 스님들로부터 곧잘 ‘부모의 업을 대신 풀고 있다’던가 ‘스님이 돼야 할 팔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렵게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공부, 외형상 구김살 없고 노래도 잘 불러 인기가 있던 그녀의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공교롭게도 작고한 작곡가 겸 트럼펫 연주자 L씨의 딸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결국 작곡가 B씨는 물론, 가요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그녀는 이미 두 번째 음반을 내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재목이었다. 일찌감치 이름을 타기 시작했고 돈도 생겼다. 가수는 물론 광고모델로, 방송 게스트로 나날이 줏가가 올랐다. ‘소녀시절’ ‘개미들의 합창’ 등이 그때의 발표작. 그러나 그때부터 새로운 갈등이 동반됐다. ‘더 확실하게 인기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쓰라는 주위의 거의 노골적인 권유와 압박이었다. 어른들은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나 뇌물이란 것이 통용된다’고 가르쳤고 실제로 밖에서 번 돈 상당부분은 관계자들의 뇌물로 쓰여졌다. 그러나 더 고민스러운 것은 특히 여자연예인에게 암시되는 또다른 ‘베팅’을 강요받는 일이었다. 마치 정석처럼 ‘스타가 되고 싶다면 돈으로 베팅하는 것보다 몸으로 베팅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들 말했다. 심지어 그를 아끼는 매니저는 물론 어려서부터 내내 충돌이 심했던 어머니까지도 그러한 본인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화가 계속됐다.

못 볼일도 너무 많이 보았다. 한 번은 매니저 겸 작곡가인 L씨와의 관계를 의심한 부인일행으로부터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손찌검을 당하기도 했다. 나중엔 오해로 밝혀져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긴 했지만, 어린 나이에 당한 그 모욕과 상처는 평생 가슴에 얹혀있다. 언젠가 서울 강남의 어느 성인 나이트클럽 무대에 섰던 날엔, 갑자기 벌어진 조직 깡패들간의 세력다툼에 휘말렸다가 새로운 ‘조직’의 보스에게 거의 납치되다시피 끌려가 기억하기도 싫은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 직후 모든 방송, 연예활동을 일시 중단한 채 집에서 요양, 겨우 기운을 차린건 불상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그렇듯 갈수록 불교에 깊이 의지해가자 오랜세월 반 무당처럼 무속을 믿고 따르던 어머니는 그녀와 끝없는 마찰을 빚다가, 결국 그녀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켜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신병원은 그렇게해서 들어갔다. 건장한 남자들과 간호사들에게 양팔을 붙잡힌채 끌려간 곳이 안국동에 있는 한 병원. 매일같이 들어오는 의사는 앵무새처럼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 물었고, 결국 정신병자 취급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1주일만에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망치듯 바로 각진선원을 찾은 뒤 간청 끝에 출가했다.

출가 1년뒤 환속, 꿈같은 시간도 잠시…

환속한 것은 그로부터 약 1년 뒤. 한 암자를 찾던 중 길에 쓰러진 한 남자를 구해 간호해주었는데, 그의 끈질긴 구애와 사랑이 결국 그녀를 속가로 이끌었다. 남들같은 결혼도 꿈꾸었고, 예전과 같은 삶도 서서히 되찾아 갔다. 연예계 활동도 재개했지만, 또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인기는 여전히 좋았다. 청와대 안가에 여섯 번을 불려다녔을만큼 ‘최고 높으신 어른’의 사랑도 받았다. 또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기업총수들이나 TV에서나 보던 정치인들의 귀빈 접대행사때마다 불려가기도 했다.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며 스폰서를 자처한 재벌도 적지 않았지만, 그러나 마지막은 언제나 가수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육체에 대한 협상이었다. 환멸을 느끼면서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의 한계선이 됐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돈있는자, 힘있는 자들과의 적절한 거리가 필요했다. 그들이 부르면 거역하지 못하고 요정이며, 귀빈접대 행사장마다 부르는대로 따랐다. 그러나 진이 빠지도록 노래를 부르며 어울려주고나면 늘 공허감이 뒤따랐다. 밤늦게 강변도로로 차를 몰고 가며 이대로 핸들을 꺾어 죽어버릴까 생각하기도 여러번.

“아무리 피곤하고 싫어도 그 바닥에서 완전히 떠나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어쩔 수가 없어요. 그저 요령껏 피하는 수밖에 없죠. 저는 아예 ‘내겐 신기가 있다’는 식으로 상대를 섬하게 만들어서 그들 스스로 무서워서 접근을 못하게 만들기도 했고, 계속 핑계를 만들어댔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엔 저더러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말로 잘 피해다니냐구요.”

나중엔 홍은동 칠보사에서 머리를 깎은뒤 아예 삭발머리로 화장을 한 채 무대에 올랐다. 밤무대에 설때도 승복을 즐겨 입었다. 그편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수많은 바깥의 유혹과 압력을 피하는데도 적지않은 도움도 되었다. 물론 이같은 행색 때문에 매니저들 사이엔 ‘애기도사’니 ‘돌았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말이다.

권력과 돈 앞에 휘둘린 젊은 날의 아픔

KBS 드라마 ‘사모곡’ 주제가를 부르면서 그녀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그럴수록 정상에 대한 그녀의 욕심도 높아갔다. 그녀는 정말 최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스폰서가 돼주겠다는 재벌들도 나날이 늘어났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여전했다. 한동안 그녀를 아끼며 ‘다음 신형 차 모델이 되게해주겠다’던 한 재벌총수조차 결국 그의 약속을 저버렸다. 그녀는 자신 역시 그의 숱한 노리개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그리고 찾아온 연인의 죽음.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남자는 암으로 목숨을 거뒀다. 그 많은 일을 한꺼번에 치른 뒤 그녀는 완전히 스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과거의 자신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을지 모를 후배 연예인들이 있다면, 그때의 자신보다 훨씬 더 현명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만약 저와 비슷한 상황이 누군가에게 닥친다면, 그리고 일과 자신 그 두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아무리 인기와 꿈이 중요한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길은 결코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옳은 희생이 아니예요. 결과적으로는 이름없는 꽃 하나만 다치는거지, 꺾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갈 곳으로 돌아가고나면 그 꽃이 죽든가 말든가 전혀 눈 하나 깜빡 안하거든요. 물론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그때같진 않겠지요. 다들 잘 하겠지만, 어쨌든 연예인도 상품이 아니라 예술인으로 대접을 받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지체아 돌보며 수행의 길 걸어

수행의 길에 든지도 어느덧 10여년이 흘렀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 과거를 극복했다. 그녀의 삶에 등장했던 그 많던 정·재계의 인물들도 이젠 TV에 자주 비치지 않는 걸로 봐서, 은퇴를 한 모양이었다. 그토록 보이지 않는 기싸움으로 서로를 쇠진케 하던 어머니와의 갈등도 막을 내렸고, 그녀는 이제 가족과 속세의 인연도 끊은 채 호적조차 자신의 독호적을 가진 한 비구니 스님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맞고 있다.

남들이 외면한 지체아들은 그녀에게 새로운 상생의 인연이다. 아주 힘들었던 몇 년전 수행중에 우연히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만난 뒤, 이상하게도 장애아들과의 묘한 인연이 거듭되면서 오늘의 이 자리까지 왔다. 현재 데리고 있는 지체아들이 각각 20세, 19세, 8세. 혼자 몸으로 다 돌보다보니 일상생활은 물론 2시간마다 대소변을 보이는 일까지 직접 살피느라 한시도 눈 돌릴 틈이 없다. 그래도 공 들이는 만큼 댓가가 있다. 처음엔 세상냉대에 벙어리처럼 겁먹고 굳어있던 아이들이 이젠 웃기도 잘 웃고, 전화까지 직접 받을 정도가 됐다. 사랑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 작년에 다른 스님들이 앞장서서 만들어준 국악풍 가요 음반 ‘실타래’ 판매수익도 이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보탬이 돼서 가장 요긴하다. 앞으로 돈이 모이면 가장 먼저 그 갑갑한 건물 4층 갇힌 방에서 나와 좀 더 넓은 곳에서 함께 흙을 밟으며 살고 싶은 꿈이 있다. 이경미도 황옥희도 아닌, 보현스님의 꿈이다.

정영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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