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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유치] 이대로는 곤란하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외자 유치가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들어왔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국내 고용창출, 기술이전, 국제자본의 안정적 도입을 통한 국내 경제 구조조정 등 각종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에 적극적인 유치가 필요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국내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인수·매각에 있어 국내자본의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M&A 형태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국내기업의 구조조정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우리가 외환위기라는 급박한 사정 속에 놓이면서 외국인 투자의 역할이 중요시되다보니, 외자유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은 국수주의자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과연 외국인 투자유치가 절대선인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M&A를 통한 외국인 투자의 경우에는 유의할 점이 많다.

M&A를 통한 외자유치는 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다. M&A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심각한 재정적 압박(financial distress)에 봉착한 경우나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본을 취득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는 기술이나 경영상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경우이다. 이중 후자가 더 바람직한 것이지만 우리 나라 상황에서는 전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정부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외국인에 의한 M&A의 활성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최근 제기되는 상황을 보면 내국인과 외국인간에 공정한 게임의 법칙(rule of game)이 존재하지 않는 것같아 유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30대그룹 계열 금융·보험사가 취득·소유하고 있는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계열 금융기관이 한 계열사의 주식 10% 이상을 보유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금융기관은 국내기업 주식을 100% 살 수있고 의결권도 행사하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 금융기관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 해제를 요청한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은 52%이다. 12%의 지분을 가진 미 캐피탈 리서치를 비롯, 13개 외국 기관이 힘을 합치면 지분이 45%가 되어 쉽게 경영권을 탈취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지분율 8.2%)외에 삼성항공, 삼성물산 등 주요계열사의 지분을 10%안팎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금융기관이 보유하는 주식은 의결권이 없으므로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미 마이크론사가 삼성전자에 투자한 13개 투자펀드를 설득하면 경영권을 탈취할 수 있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삼성전자가 한국을 대표할만한 우량기업이라고 해서 외국인이 경영권을 장악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문제는 경쟁의 조건이 내외국인 간에 불평등하다는데 있다.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은 이뿐만 아니라 은행주 동일인 소유한도 제한에서도 나타난다. 대기업 계열 금융기관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한 것은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한 것이고, 은행주식의 동일인소유한도를 4%로 제한한 것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의 폐해는 부당 내부거래 근절, 우월적 지위 남용 방지 등을 통해 개선해나가야 하는 것이지, 경영권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국인과 불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하다. 물론 기업 경영권 안정을 위해 의결권 제한을 완화할 경우 고객의 자금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처럼 의결권에 제한을 두더라도 계열 금융기관들이 살 수 있는 지분취득한도를 높여 주는 대신 신규사업에 대한 출자는 엄격히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SK 텔레콤과 타이거펀드 간의 대립도 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타이거펀드 측은 유상증자 반대에 이어 액면분할을 요구했고, SK는 이를 거절하고 있다. SK는 시설투자비로 약 2조원 가량이 필요한데도 타이거펀드가 7월 1일로 예정된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에 맞추어 지분을 매각, 차익을 실현시키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자 유상증자를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타이거펀드는 SK가 유상증자와 함께 한국통신의 실권을 유도해 33%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계산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밥 돌 공화당 전대통령후보까지 로비에 동원했다. 지분제한 자유화와 더불어 외국계 펀드들까지 국내기업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압력을 가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굴지의 우량사들도 M&A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가치는 외환위기 이후 너무나 저평가되어 있다. 선진국 기업들은 M&A 거래에 있어 최적의 시기인 반면, 한국 기업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외국기업들은 국내 활동에 있어 어디까지나 해당 주주들을 위해 활동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의 주주는 대부분 외국 거주자들이므로 외국기업들은 국내에서 번 소득을 해외로 이전시키며, 이런 점에서 국내기업과 외국기업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 기업은 M&A를 통한 효율성 제고로 수익을 확대할 수 있고 고용도 증대시킬 수 있지만, 외국기업의 계산에 대한 인식없이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경영 효율 증대가 목표라고 한다면 높아진 효율이 한국기업에게 유익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며, 전략적 제휴 관계의 체결은 지배권한을 내주지 않고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외국기업이 국내 정책을 따르도록 해야하는 것이지 외국기업이 국내 정책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국기업들에게 세제해택 등은 제시하더라도 몇 가지 정책적 의무는 부여해야 한다. 생산액 중의 일정부분은 수출하도록 한다든지 외국인이 경영진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국내에서 조달하는 원자재 비중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할 것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외국기업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하고 한국의 경제 주권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뉴욕 타임스와 월 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제일 및 서울은행, 대한생명의 매각 과정과 SK텔레콤의 증자 등에 대해 문제점을 고발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월가의 시각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떤 업체든 헐값에 신속하게 다 팔아 넘기라는 뜻은 아니다. 외자유치가 더뎌질 경우 신용등급이 다시 하락하면서,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주장들을 한다. 그러나 받을 가치에 대한 충분한 평정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얻었다면, 그것을 공정하게 매각해야 하지 시기만 앞당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아쉬운 시점이다.

양성수·현대경제연구원 국제금융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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