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21] "우리더러 문 닫으란 얘기냐"

07/14(수) 12:01

교수시위를 촉발시킨 BK21이라는 빙산에서 모습이 감춰진 거대한 얼음덩이에는 ‘지방대의 위기’가 큰부분을 점하고 있다.

지방대 교수들은 “BK21이 끓고 있는 지방대 교수들의 분노에 마지막으로 뚜껑을 연데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너지고 있는 지방대에 BK21이 또다시 일격을 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방대의 위기’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지방대학의 ‘공동화 현상’이다. 학생의 수도권 유입 등에 따른 학생수 감소와 대학재정 부족으로 대학이 자칫 존폐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다. 자연히 지역사회의 일꾼을 양성해 낸다는 지방대 존립 이유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지방대의 공동화. 이것은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국가구조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신입생이 주는데다 있는 학생마저 떠나고, 대학수는 늘고. 지방대 공동화의 표면적 현상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는 지방대 재정난은 날로 심화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신입생 등록률을 보자. 지난해 신입생 1차 등록률이 50% 미만인 대학이 29개교, 올 신입생 모집에서 지원자가 정원의 50~60%에 그친 대학이 11개에 달했다. 차이는 중앙과 지방을 비교하면 더 커진다. 지난해 지방대는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학생수가 9,740명으로 수도권 소재 대학의 11배가 넘었다. 무더기 결원으로 인한 등록금 납입 부족액은 총 450억원.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정원 양극화

미래전망은 밝은가. 정반대다. 2003년부터는 객관적인 수치만 봐도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해 존폐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란 예측이다. 대학 지원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는 ‘한 가정 한 자녀 갖기’에 따른 이른바 ‘가족계획세대’가 대입시험의 주류가 된다. 지난해 대학입시 재학생 응시자는 61만여명이었으나 가족계획세대가 대입시의 주류가 되는 2003년은 50만명. 작년과 같이 고교졸업생의 82%가 대입시험을 치른다고 볼 때 10만명이 줄어든 수치다. 수도권 소재 대학과 지방대가 현재의 비율처럼 학생수를 나눠 가진다 하더라도 절대수치는 급감하게 마련이다.

96년 실시한 편입학 모집정원 확대정책도 지방대 공동화를 부추긴 한 요인이다. 학과별 여석산정을 종래 재적기준에서 재학기준으로 바꾸면서 군입대를 비롯한 휴학학생의 빈자리까지 편입생이 채우도록 했기 때문. 편입학 시험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여전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 인기학과의 경쟁률은 치솟고 지방대는 정원에 미달하는 양극화 현상이 재연된 것. 지난해 2학기 서울의 27개 대학 편입학 경쟁률은 6.76대 1. 반면, 편입생을 모집한 67개 지방대에서는 대부분 지원미달 사태를 빚었다. 당국은 올해부터 편입학 규모를 크게 줄인다며 사후 대책에 나섰으나 이미 지방대의 상처는 깊어졌다.

IMF와 이에 따른 취업난으로 인한 휴학생 급증도 빼놓을 수 없다. 올 4월1일 현재 전국 158개 일반대학(교육·산업대 제외)의 재적생 158만7,955명중 휴학생은 48만4,679명으로 전체의 30.5%에 달했다. 물론 지방대의 휴학률이 더 높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휴학률이 29.4%인데 반해 지방대학은 31.3%다.

사정이 이러니 정원대비 재학생의 비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현재 수도권 소재 대학은 휴학생을 빼고도 재학생이 정원의 99.9%에 달해 거의 정원을 채우고 있는데 반해 지방대는 90%에 그치고 있다.

대학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

그러면 지방대 위기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전부문이 서울중심으로 편성된 구조적 편중에 있다. ‘기회가 거기 있으니’ 인재가 서울로 몰리는 것은 탓할 수 없다. 대기업이 신입사원 공채에서 ‘같은 값이면 서울과 수도권 소재 대학졸업생 우선’하는 것도 일면 당연하고.

영남대의 백승대교수(사회학)는 “지원단계에서부터 나타나는 서울지향적 태도, 국제화할수록 지방이 불리한(서울에 비해 국제화 감각이 상대적으로 지방대가 뒤질 수 밖에 없는 데서 오는) 현실, 대기업의 지방대 출신 차별을 비롯한 취업기회 제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구조문제 해결없이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BK21에 대한 지방대 교수들의 반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당국의 교육정책이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커녕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국공립대 교수협의회장 황한식교수(부산대)의 주장을 들어보자. “BK21이 시행될 경우 서울소재 일부 대학에만 투자가 집중돼 지방대 등 대부분의 대학에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 결국 부익부 빈익부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 이같은 특혜지원은 공정경쟁을 해치고 고질적인 대학 서열화를 심화할 뿐이다.” BK21이 현재의 서울중심적 구조 개선에 역행한다는 이야기다. 한 교수는 “BK21은 중앙중심으로 굳어진 현재의 중앙_지방관계를 답습하고 있는 교육부 당국자의 마인드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우수대학과 연구중심대학을 구분할 경우 연구중심대학은 일류, 지역우수대학은 이류,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대학은 삼류가 된다는 위기감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이것은 학생모집 뿐 아니라 돈줄과도 무관치 않다. 연구기능이 제외될 경우 지역업체에서 들어오던 프로젝트에서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우려다. 대학원이 유명무실해지면 실험인력도 없어질 게 뻔한데 누가 프로젝트를 주겠느냐는 이야기다.

거액이 걸린 사업인 만큼 ‘분배’와 관련한 불만도 적지 않다. 바로 BK21 지원자금의 성격 문제다. 매년 지원될 2,000억원중 1,000억원은 새로 조달했지만 나머지 1,000억원은 과거 사학 등에 지원되던 돈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학진흥기금은 지난해 850억원에서 500억으로 350억원이나 삭감됐다. 그것도 사학에 대한 국가지원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현실속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지원이 사학의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비록 ‘딴나라’ 얘기긴 하지만 유럽은 90%대, 자유시장경제의 모델국가인 미국까지 18%, 일본도 9%수준이다.

전체 사학과 지방대 기반 위협

위기의 지방대중 상당수가 사학이란 점을 감안하면 BK21은 소수 대학원 육성을 위해 전체 사학과 지방대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책임을 구조적 문제와 정부정책에만 돌릴 수는 없다. 일부 지방 사립대의 부실경영도 책임의 한 부분을 떠맡아야 한다. 교육투자가 이재와 재산상속의 수단이 되고 학문풍토 조성은 뒷전이 돼버린 현실이 그것이다. 재단과 줄있는 교수가 대접받다 보니 뜻있고 능력있는 교수들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도끼로 제 발 찍는 꼴’일 뿐 아니라 전체 지방대의 입지를 약화하는 풍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대학 재정난과 부실경영, 비리 등은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을 허가해 주는 정부의 준칙주의와 무책임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잘못이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교수들 자신의 목소리와 모순된다. 정부가 대학당국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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