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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불신. 불만조장 정책?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것중의 하나가 자치단체장과 장관 등의 판공비 사용내역입니다. 그러나 단체장등은 한결같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혈세가 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도 공개를 꺼리는 판공비 사용내역이 경북의 한 작은도시의 시민단체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시민단체가 지난해 이 도시 시장의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 등 판공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1억5,151만원중 80%가량이 시정협조자와 지역유지, 관변단체등에 선심성 용도로 사용됐습니다.재선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사용내역을 항목별로 보면 확연해집니다. 시정 협조자에 대한 지출이 전체의 24.6%로 가장 많습니다. 다음은 지역유지와 지역모임,관변단체 16% ▲기관장, 공무원 15% ▲타도시 자매결연 행사 11.8% ▲언론, 기자 10% ▲경찰, 공안기관 10% ▲의회, 의원 5.7% ▲기타 4.7% 순입니다. 이같은 용도는 크게 ‘내사람 만들기’와 ‘실적쌓기· 홍보’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재선을 위한 행보로써의 판공비 사용은 시민·복지단체 지원금이 전체의 1.5%(223만원), 서민·불우이웃 지원금이 0.7%(107만원)에 불과한데서 더욱 확연해집니다. 화환·화분구입비가 664만원으로 불우이웃 지원금 107만원의 6배가 넘는 사실에서는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전체 판공비의 40.3%, 특수활동비의 82.2%는 영수증이 없어 혈세 사용의 투명성이 철저히 무시됐습니다.

문제는 단체장이 재량권을 갖고 사용하는 혈세가 과연 자료에 나온 것 뿐이냐는 것입니다. 단체장의 판공비는 법으로 정해진 범위외에 갖은 방법으로 예산 항목들속에 ‘비자금’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필자가 95년 대구·경북 취재본부장으로 근무할 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뛰던 한 후보가 단체장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변호사인 그는 ‘법상으로 가능한 단체장의 판공비 액수가 뻔한데 선거운동중인 나보다도 더 많은 돈을 경조사비 등으로 뿌리고 다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분개했지요.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공무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고치면서 경조사비를 못받는 공직자에서 단체장을 제외시켰습니다. 중·하위직 공무원의 사기를 높인다며 지급키로 한 가계안정비 수혜대상에 장·차관과 국회의원, 단체장까지 포함시켰다가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장·차관과 의원은 제외키로 했습니다. 장관등이 가계안정비를 받을 경우 9급 공무원보다 6배 가까이 많습니다.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 아니라 공직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오히려 불만을 조장하는 꼴이었습니다.

신중한 검토없는 ‘졸속’과 내몫챙기기를 앞세운 막가파식 결정이 빚은 것입니다. 공직자 10대준수 사항과 공무원 사기진작이라는 정책 결정을 두고 벌써 여러차례 오락가락입니다.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또 가계안정비 수혜대상에서 마땅히 제외돼야 하는 단체장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단체장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으려는 이같은 행태는 내년 총선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선자치제 실시이후 ‘단체장에게 한번 잘못 찍히면 12년(단체장은 3연임 가능)을 죽어 지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자조가 이를 잘 말해줍니다. 단체장에게 협조하지 않는 사람으로 찍히면 승진도, 능력에 걸맞는 좋은 보직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공무원의 단체장 사병화’입니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그런 단체장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요.

정부가 추진중인 2단계 지방구조조정과 관련, 16개시도중 8곳이 계획서를 시한안에 제출하지 않는등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 같은 양상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부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선거 때문에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정책은 신중한 검토과정을 거쳐 결정되고, 또 반드시 이행돼야 합니다. 지금은 선심성 졸속정책의 남발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jr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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