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초부터 '잿밥'에만 관심

07/15(목) 13:24

‘올 한가위에는 꿈에 그리던 북녘의 가족에게 최소한 편지라도 보낼 수 있겠지’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이산가족들은 이번에도 허탈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6월22일부터 7월3일까지 베이징에서 진행된 1, 2차 남북차관급회담은 50년 묵은 이산가족들의 실낱같은 꿈이 이뤄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함을 확인한 자리였다.

차관급 회담이 개최된다는 발표가 있은 6월3일 이후 노구를 이끌고 이북5도청과 통일부를 찾아 이산가족찾기 신청서를 제출했던 실향민들은 북측의 태도에 분을 삭여야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처음 이뤄지는 ‘이산가족 회담’이어서 기대치가 높았던 차라 이산가족들의 실망은 어느 때보다 더 컸다.

북한, 회담 대부분 ‘정치공세’

북측은 회담내내 이산가족문제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 6월 22일과 26일 두차례 진행된 제1차 회담에서 박영수 북측단장은 이산가족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연평해전에 관한 사죄와 재발방지를 남측에 요구했고 남측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의 행태를 맹비난했다. 타협을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싸움을 걸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94년 ‘서울불바다’ 발언의 당사자 다웠다. 5일 후에 열린 2차 회담에서 북측은 비료지원전 이산가족문제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후 비료지원이라는 남측 입장과 대칭을 이뤘다. 심지어 북측이 이번 회담장에 나름대로 구상중인 이산가족 문제 해결방안을 갖고왔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당국간 정식 대좌에서 이산가족의 희망을 뒤로 한 북한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이산가족문제에 관한 관심을 흘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회담직전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무대위에서 연출할 수만 있다면 이산가족사업도 못할게 없다”고 말했다. 또 “이산가족 면회장소로는 정치색 짙은 판문점보다는 금강산 지역을 고려하고 있다”고 흘렸다. 아울러 이산가족사업에 대비, 북측이 이산가족 시범사업에 참여할 대상자를 이미 물색하고 이들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면서 행사를 대비한다는 전언도 있었다. 북한대사관 직원뿐만 아니라 차관급 회담의 대표단도 남쪽 여론을 의식, 속이 훤히 보이는 말을 쏟아냈다. 북측 권민 대표는 22일 첫 회의에 앞서 “이산가족도 논의해야죠”라고 남측 기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회담장에서의 북측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남측대표단 관계자는 2차 회담 직후 “박단장은 회담 의제인 이산가족문제를 제대로 숙지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며 “서해사태에 대해서는 일사천리로 언급하던 그는 의제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 파일조차 찾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북측대표단은 회담에 나오기 전부터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했다. 따라서 8월부터 이산가족명단 교환, 9월부터 면회소 설치운영, 9~10월중 서울 평양 교환방문으로 요약되는 우리측에 대한 북측의 답변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서해문제와 비료가 회담의 목적

그렇다면 북측은 왜 이산가족 문제를 외면했을까. 회담도중 북측대표단들은 “서해상에서 30명이상이 죽었는데 어떻게 서해문제(연평해전)를 피해갈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 평양방송도 “이같은 사태속에서 남북이 이산가족문제에 관한 합의를 한다해도 그 실천은 어렵다”고 밝혔다. 보다 직접적으로 북측 박단장은 3일 2차회담 2번째 수석대표간 접촉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서해사태로 도저히 남북이 대화할수 없는 상태였다”며 “6월22일 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어려웠지만 우리는 회담장에 나와 서해사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의 목적은 서해사태이지 이산가족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논의하겠다는 6·3 남북비공개 예비접촉의 합의가 서해사태라는 사정으로 무의미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회담전 10만톤의 비료를 조건없이 챙긴 북측은 1, 2차 회담내내 나머지 비료 10만톤의 비료 제공여부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남측대표단 관계자는 “연평해전을 언급한뒤 우리측의 비료지원의사를 끊임없이 탐색해왔다”고 말했다. 비료만 취하겠다는 북측의 의도가 노골적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측은 이산가족에 등을 돌린 북측 태도를 눈치채지 못한채 회담전략을 안이하게 구상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결과론적인 추론일 수 있지만 우리측이 연평해전의 심각성을 헤아리지 못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남측수석대표인 양영식통일부차관은 연평해전 3일뒤인 지난달 18일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앞서 “형님이 동생에게 떡을 주면 동생은 그 떡바구니에 찐고구마라도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료 10만톤이 지원된 만큼 이산가족의 해결이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양차관은 또 1차 회담 내내 수행기자들에게 한 배경설명에서 “북측은 이산가족문제에 관한 보따리를 분명 가져온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양차관은 6월 21일로 예정된 회담이 북측의 일방적 통보로 하루 늦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들은 50년을 기다려왔다”며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우리측 낙관적 전망에 ‘고춧가루’

낙관적인 전망을 가진 우리측은 필연적으로 회담내내 북측에 의해 끌려다닐수 밖에 없었다. 북측은 6월 22일 회담개시 직전까지 대표단 명단조차 우리측에 통고하지 않았다. 또 21일로 예정됐던 회담을 전날 북으로 출발한 비료수송선이 21일 오후까지 북의 항구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연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베이징 켐핀스키호텔에서 열린 1차 회담 1차 회의직후 켐핀스키 호텔앞에 게양된 태극기를 문제삼아 회담장을 차이나월드호텔로 옮겼다.

특히 2차 회담의 첫번째 회의가 진행된 7월1일 이렇다할 성과를 못낸 우리대표단은 다음날 오후 철수 방침을 밝혔다가 북측의 전화 한통으로 3일 수석대표간 접촉을 재시도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북측은 수석대표간 접촉직후 “부상급(차관급) 회담에 나온 것 자체가 우리의 아량”이라고 선전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회담 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6·3 남북비공개 예비 접촉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달반동안 비밀리에 진행된 예비접촉에서 남북은 차관급 회담전까지 비료 10만톤을 북측에 제공하고 7월말까지 10만톤을 추가로 제공키로 했다. 또 차관급회담에서는 이산가족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다룬다는 것이 6·3 합의문의 요지다.

하지만 비료와 이산가족문제의 연계여부는 명확히 언급되지 않았다. 임동원통일부장관은 6월3일 “비료는 동포애적 차원에서 주는 것”이라고 말했고, 15일뒤인 18일 양차관은 “우리정부는 탄력적인 상호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우리측은 비공식적으로 “예비접촉의 북측수석대표인 전금철은 비료만 주면 통크게 이산가족문제를 합의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양차관도 회담결렬이 다가온 7월2일 “북측은 예비접촉에서 비료만 제공한다면 회담에서 남측이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었다”고 공개했다.

구두합의 믿은 우리태도 ‘순진’

북측의 구두발언만 있고 이면합의가 없는 점을 이용, 북측 박단장은 “예비접촉에서 남측은 20만톤의 비료를 제공하기로 하고 회담이 잘되면 5만톤을 더 주기로 했었다”면서 “6·3 합의서 어디에도 이산가족과 비료가 연계됐다는 언급이 없다”고 말했다. 구두합의를 믿은 우리 태도가 순진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문제와 관련, 우리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도 가감없이 지적돼야 할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차관급회담 개시전까지 두 사안의 연계방침을 밝히지 않다가 6월 20일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가 억류되자 6월 23일 연계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부 방침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회담도중 회담전략이 바뀜에 따라 북측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영섭·정치부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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