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앞뒤가 바뀐 불이행과 이행

07/21(수) 16:27

97년 대선당시 김대중후보가 내건 두개의 공약을 놓고 지금 말들이 많습니다. 내각제와 그린벨트입니다. 두개의 공약은 전혀 상반된 상황으로 국민들에게 다가 왔습니다. 불이행과 이행입니다.

각종 선거에서 후보들이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 유권자를 우롱하는 공약들을 남발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도로나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공약들이 판을 치고 거창한 착공식이 열립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이 되지요. 그래서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말들이 많은 두개의 공약에 대해서도 선거당시 반신반의한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내각제는 우리정치에서 화두중의 하나였고, 그린벨트는 국민의 환경·건강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현정권은 내각제 공약을 통해 태어난 공동정권입니다. 97년 10월31일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총재와 자민련 김종필총재는 15대 국회 임기내에 내각제로 개헌할 것임을 공약하고,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늦어도 12월말까지 개헌을 완료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같은 공약으로 김대중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를 30여만표 차이로 따돌리고 대통령이, 김종필총재는 국무총리가 됐지요.

그런데 국민들에게 약속을 한 공동정권의 김총리가 연내 내각제 개헌포기를 시사했습니다. 그는 최근 ‘모든 일은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개헌이 불가능하더라도 공동 정권은 유지돼야 한다’는 우회적인 말로 표현했습니다. 대국민 약속의 파기입니다. 그동안 내각제란 ‘뜨거운 감자’를 놓고 대통령과 총리간에, 공동여당간에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계속돼 왔지요. 공동여당간의 갈등으로 국민회의 총재대행이 청와대의 유임발표후 몇시간만에 경질되는 등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줄다리기는 국민들에게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 없이 언제나 떠도는 말 뿐이었습니다. 국민들을 끊임없이 답답하고 피곤하게 만든 것입니다. 김총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를 달았지만 불편했던 국민들의 심기를 배려한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시원하게 밝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여전히 ‘선문답’식입니다.

분명한 것은 김총리의 내각제 약속은 부도수표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제때 결제를 못해 부도난 수표는 휴지쪽이지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총선이후는 또 무엇입니까. 국민이 안중에 없는 처사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내각제 문제와 달리 그린벨트 공약은 현정권이 이행하겠다고 하는데 논란이 분분합니다. 특히 일부 중소도시 그린벨트 전면해제 방침에 대해서는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그린벨트개선위원회의 시민단체 위원 2명이 건교부가 그린벨트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왜곡해 중소도시의 전면해제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반발,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합리적인 그린벨트 조정이라는 대선공약은 내각제와는 달리 그 이행시기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서둘러 이행하려고 합니다. 내년 총선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서둘러서 될 사안인가 하는 점입니다. 녹지대 감소로 일어날 당장의 환경적인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시화를 가속화해 또 다른 녹지대 파괴를 가져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중소도시 지역 전면해제는 형평성의 시비로 또 다른 분란이 불가피합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시간을 갖고 국토종합관리 차원에서 검토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와함께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 사유재산의 제약에 따른 피해구제이지요. 그린벨트 존치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국민 모두가 얻고 있으므로 정부차원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두개 대선공약의 이·불이행이 주는 교훈은 국가정책은 공론화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략적 이해에 따른 밀실흥정, 당장의 표만을 의식한 정책결정은 역사와 민족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정권은 유한하나 국가, 국토, 국민은 무한합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