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특검제 물타기' 기습공격

07/29(목) 09:57

“사건 발생 이후 40여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정치적 논란만 계속되고 있을 뿐 단시일 내에 여·야간의 협상이 타결되어 진상조사에 이를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입니다.(중략) 이런 상황에서 조속히 이 사건을 수사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의 혐의가 드러나면 법에 따라 엄정조치한 후 그 결과를 국민에게 보고드리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검찰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7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찌는듯한 더위에 힌색 청사건물마저 숨을 허덕거리고 있을 때 검은색 그랜저가 10여대가 쏟아지는 햇볕을 뚫고 잇따라 대검청사 현관앞에 도착했다.

박순용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고검장들이 긴급소집된 것이다. 2시간여의 회의가 끝난뒤 차동민 대검공보관은 기자실로 내려와 지난달초 정국을 휘몰아쳤던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에 대한 수사에 착수키로 했다고 알렸다. 두쪽짜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도 읽어내려갔다.

이후 서울지검에는 이훈규 특수1부장을 본부장으로 특수부와 외사부 검사 12명으로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됐고 소환대상자 선정과 법률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는 총장이나 서울지검장 등 계선상의 지휘나 보고없이 본부장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벌이는 “검찰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친절하게 의미부여까지 해주었다.

이후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진 전공안부장의 집과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사전 통보도 없이’대검공안부에서 자료를 모두 압수해왔고 안영욱 당시 대검 공안기획관(현 울산지검 차장검사)과 이준보 대검 공안2과장(현 대검 중수2과장)까지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의 독자적인 수사방침은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지만 그중에서도 한나라당은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특검제 전면도입을 밀어붙이려던 한나라당은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자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일부 소속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회의가 제의한 한정적(파업유도와 옷로비) 특검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국민회의측도 검찰의 ‘기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정적 특검제가 합의된 만큼 검찰에 수사를 중단토록 요구할 것을 한때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기습공격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주도권을 쥔 듯이 보이지만 얼마만큼 계속될 지는 의문이다. 진 전공안부장을 고발한 민주노총 등이 “검찰의 독자수사방침은 특검제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며 고발인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고 변협을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에 수사중단을 촉구하는 등 여론의 시각이 곱지 않다.

검찰도 예상을 뛰어넘는 여론의 반발과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격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여론의 반발이나 정치권의 반격 등 어느정도 비난은 이미 예상했으나 이를 감수하고라도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낳다는 판단을 했다”며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검찰이 거듭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독자적인 수사착수방침은 지난달 25일 열린 전국 검사장회의에서 어는 정도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회의가 대외적으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됐으나 조폐공사 파업유도발언사건의 독자수사여부에 논의의 대부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간부들은 이후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면 반발이 심하겠지”라며 여론탐색을 벌여오다 고검장회의 형식을 빌려 공표했다는 추론이다.

검찰로서는 이 사건을 방치해두었다가 특검제가 도입돼 특별검사가 손을 댄다면 검찰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임창렬 경기지사부부 사건 등으로 정치권이 위축된 시기적인 이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착수 배경이나 수사의 강도 등을 감안할 때 진 전공안부장의 사법처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서는 ‘집안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처리한다는 사례를 확인시켜주는 한편 특별검사의 재수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함으로써 특검제의 허상을 부각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의 성격상 확실한 물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떻게 진 전공안부장과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에게서 사법처리가 가능한 수준의 진술을 받아내느냐는 점이 관건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검찰수뇌부가 이미 진 전공안부장을 설득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주변에서는 검찰이 이 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는 거둘지 모르지만 검찰의 ‘특검제 공포’와 ‘조직보호주의’에 대한 여론만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모 변호사는 “진 전공안부장을 구속시켰다고 국민들이 검찰을 새롭게 보겠느냐”며 “미국이 특검제를 폐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특검제도입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검찰이 다시 생각해야 할 것”고 말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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