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일본에 '한국인 3인방시대' 개막

07/23(금) 11:36

일본에는 조치훈만 있다는 등식이 이젠 깨지기 시작한다. 일본에도 드디어 조치훈 1인 독주시대가 막을 내리고 소위 ‘3인방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조치훈에 이어 조선진 류시훈이 바로 한 축.

전설적인 바둑영웅이 되어버린 조치훈이지만 그도 지난주 한국의 아우 조선진에게 전통의 본인방을 빼앗긴 후 상당한 슬럼프를 겪고 있다.

조치훈이 10년 넘게 지속해 온 일본 정상의 자리에 흠집이 생기자 이 틈에 대삼관의 또다른 한 축인 명인전 도전권을 향해 또 한명의 아우 류시훈이 대시하고 있어 어쩌면 류시훈이 조선진에 이어 또한번 이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일본의 1인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조치훈이다. 여전히 랭킹 1, 2위 기전인 기성전, 명인전을 보유하고 있으니 아직은 1인자에서 물러나려면(?) 상당히 더 잃어야한다. 든든하다는 얘기.

2인자는 조선진이다. 평범한 600여 일본기사들 중 하나였던 그가 본인방을 따내면서 일약 2인자로 뛰어올랐다. 타이틀 갯수는 아직 미미하지만 1인자 조치훈을 상대로 당당하게 따낸 타이틀은 여느 일본기사들은 흉내내지 못했던 쾌거.

3인자에 대한 논쟁은 사실 뜨겁다. 일단 크고 작은 타이틀을 가진 기사만 해도 조치훈과 조선진을 제외하면 무려 5명. 소소한 속기전까지 다 합치고 신인왕전같은 미니기전은 제외한 갯수다. 여기서 일본의 도전기 기전이랄 수 있는 7대기전 타이틀 보유자로 3인자 후보군을 제한하면 3명으로 압축된다.

고바야시 고이치가 일단 현재까지는 3인자라고 봐야한다. 그는 4위기전인 십단을 쟁패중이고 5위 기전인 천원도 동시보유하고 있다. 그 다음 대만계 왕리청이다. 그는 6위 기전왕좌를 보유중이다. 또 한국기사킬러로 악명높은 요다 노리모토가 7위 기전 기성(碁聖)을 갖고있다. 따라서 3인자는 이들 3인중 한명이라고 봐야한다.

여기에 복병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2위 기전 명인전 리그에서 현재 선두를 달리고있는 류시훈이다. 만약 류시훈이 도전권을 거머쥔다면 가장 강력한 3인자 후보가 된다. 사실 3인자가 아니라 담박에 2인자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다. 일본기전의 서열은 기성 명인 본인방 순. 따라서 류시훈이 조치훈에게 도전하여 대선배가 보유한 타이틀을 한번 더 빼앗아온다면 조치훈으로서는 안된 일이지만 한국용사 3인이 랭킹 1~3위 기전을 하나씩 보유하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여기엔 단서가 하나 붙는다. 결국 핵심이 될 사항은 조치훈이 그런 시나리오대로 호락호락 넘어가 주느냐는 문제다. 사실 반반이다. 조치훈은 최근 본인방전 방어실패의 원인을 목표의식 상실로 보고있다. 즉, 기량이 떨어져서라기 보다 이미 일본 기록 9연패를 깬 마당에 더 이상 지겨운 방어전을 치르는 건 싫증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상당히 설득력을 더하는 요인은 본인방 방어기간에 그는 후지쓰배 LG배 등 별로 내키지않는 국제전까지 동시에 참가했다는 점이다. 즉, 목표물을 정조준하기엔 좀 어지러운 시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류시훈에게 거는 기대도 만만찮다. 그는 3년전 이미 본인방전에서 조치훈에게 2:4로 무릎을 꾼 바 있다. 당시 7번기엔 처음 나선 풋내기였지만 그도 이젠 쓴맛을 볼만큼 본 중견. 따라서 경험부족이 이제와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다. 그리고 좀 더 독날해진 기풍이 강점이다.

빠르면 8월중으로 또한번의 형제대국이 벌어질 것 같다. 그결과에 따라 ‘재일 3인방’이 일본바둑 3인방이 되는 경사가 생길 지 모르겠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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