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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작가로의 데뷔는 인생의 화려한 덤"

국내 유전자감식계 1인자로 손꼽히는 최상규(55)박사는 느지막히 인생의 덤 하나를 얻어내고 요즘 희색이 만면하다. 최근 ‘슬픈 만남’이란 추리소설을 발표해 화제가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생물학과장. 공무상 민간인 출입이라곤 전혀 없는 서울 변두리의 한 건물. 곳곳에 소독약 냄새가 배어있는 스산한 그의 근무처, 국과수를 찾아가 그를 만났을 때도 자신의 소설을 읽어봤는지부터 넌지시 묻고 나왔다.

“정말 힘들게 썼습니다. 일하는 것보다 더 머리 아팠습니다. 제 일이야 거의 20년동안 해 왔으니 익숙할대로 익숙하지만 글이란 건 또 얼마나 민감한지 문장 하나만 바꿔도, 단어 위치만 바꿔도 그 느낌 전체가 확 달라지거든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생전 처음 써 본 소설이지만 솔직히 제 힘으로 이만큼 써 낸 것도 참 큰 일 해냈다 싶습니다.”

넉넉한 현장경험이 글쓰기의 큰 밑거름

그렇듯 골치아픈 일을 자청한 이유는? 알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꼭 자료화하려드는 그의 ‘직업의식’이 발동하기도 했고, 뒤늦게 터진 글쓰기 열망에 아직 한참을 더 풀어내어도 될 만큼 그에겐 넉넉한 현장경험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수사계에선 그만큼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도 드물다. 최박사는 91년 국내 처음으로 ‘DNA 감식기법’을 들여온 주인공. 그간 처리한 사건사고 건수만 3만건에 이르고,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많은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한 것은 물론, 이제는 이 기법의 종주국인 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까지 국내 유전자감식계의 발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DNA 감식기법이란 한마디로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 구조의 차이를 이용해 조회대상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이다. 85년 한 영국인에 의해 발견된 뒤 구미 각국마다 속속 도입한데 이어, 국내에선 91년 처음으로 소개됐다.

이 기법의 가장 큰 위력은 어떤 소량의 인체 유류품으로도 판별할 수 있다는 것. 강력사건의 경우, 현장에 남아있는 머리카락 한 올, 담배꽁초에 묻은 타액, 휴지에 묻은 정액, 피부조각 등 어느 것이든 확실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실험과정은 모두 5단계. 세계적으론 모두 60종류의 감별법이 있지만, 국내의 경우 12종류를 활용한다. 그러나 신뢰도는 100%에 가깝다.

“틀릴 확률은 5,000만분의 1, 혹은 1억분의 1정도에 불과합니다. 거의 완벽

하다고 봐야지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든 상관없습니다. 썩지만 않았다면 1년은 물론이고 50년, 100년 지난 것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분비물이 1년 지난거라고 하잖습니까. 그것도 DNA감식기법으로 밝힌건데 그 결과가 잘못될 확률이 수조분의 1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수사에선 그만큼 절대적이고 확실한 자료지요.”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기법을 도입한 뒤 국내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적용되는 분야도 다양. 3년전엔 문화재관리국의 의뢰를 받아 수십년전에 사망한 백범 김구선생의 유전자 정보를 처음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단서는 선생의 옷에서 긁어낸 핏가루 조금. 보존상태만 양호하다면 시간, 공간을 초월해 무엇이든 무불통지.

억울한 사람에게 DNA 감식자료는 ‘무고증명’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사건에선 더욱 더 결정적이다. 그의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범인을 단정하지 말 일. 자칫 억울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지 않도록 DNA감식자료는 ‘무고 증명’의 역할도 맡는다.

평생 험한 시신이나 유류품만 다루다 보니 남들과 다른 ‘직업병’도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저는 오히려 깨끗한 시신은 더 징그러워 못 볼 것 같습

니다. 사실 시체부검하는 건 이제까지 거의 안 봤어요. 일부러 봐야 할 필요도 없고, 제가 시신을 직접 보는 건 주로 너무 심하게 손상돼서 과연 분석이 가능한가 아닌가 그걸 보려고 할 때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시신중에서도 가장 험한 경우만 봐 온 거지요. 그러다보니 특히 불에 탄 상태(소사체)는 덜 한데 멀쩡한 시신은 더 끔찍할 것 같아 더 못 보겠더라구요.”

워낙 많은 사건사고현장을 봐 왔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97년 KAL기 괌참사때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 삼풍백화점 사고 때엔 기본적인 사망자들의 윤곽조차 불확실해 사고현장에 모여든 ‘예상되는 유가족’ 모두의 DNA까지 죄다 확인해야하는 고충까지 따랐다. 시간이나 작업량도 그만큼 곱절. 괌 사고땐 시신 69구의 산산조각 난 뼛조각만을 인도받아 일일이 조사, 거의 6개월동안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작업을 해야했다. 바로 얼마전 일어난 화성 씨랜드 화재참사도 마찬가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비상근무는 당연지사. 애타는 유족들이 있는 한, 과로도 피할 도리가 없다.

“일 자체로 생각하면 사실상 어떤 죽음 앞에서든 담담합니다. 옛날엔 연구를 위해서 토끼며 쥐, 염소를 실험용으로 사용한 일도 많고, 그런 일 자체에 대해선 ‘면역’이 됐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마음 아플 때가 많지요. 얼마전 씨랜드사고 때도 그 귀여운 아이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은걸 보니 참 가슴 아팠습니다. 부모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부짖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 현장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괌사고 때도 ‘다 같은 인간인데 저렇게 비참한 사고로 목숨이 끊어진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는 이렇게 극과 극이구나. 죽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살았을 때 더 뜻있고 보람있게, 멋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익숙한 글쓰기 “써본것중 소설이 가장 재미있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온 모양도 그만하면 자신에겐 성공작이다. 굳이 이 분야의 1인자라는 이름이 없었다해도 그는 이미 오래전 소년시절의 꿈을 이룬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고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63년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에 입학, 한양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뒤 69년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과 전임강사로 출발, 결국 소원대로 대학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77년부터 2년동안 독일 본대학 흄볼트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장기이식에 관련된 연구활동도 했다. 그리고 현재의 국과수로 특채된 것이 79년. 90년엔 미국 FBI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DNA 감식기법을 공부하고 들어와 당시 유일무이한 DNA기법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고, 오늘까지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를 지켜온 것. 그외에도 경찰대, 경찰학교, 육해군 헌병수사관, 국방부 범죄수사단 등을 대상으로 20년째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이런 참에 예정에 없던 ‘작가’로까지 데뷔한 건 분명 그의 인생에 내린 ‘덤’이다. 그간의 작업성과를 중심으로 ‘과학수사의 이론과 실제’‘루미놀’‘유전자’등 이미 네권의 이론서나 과학수사사례집을 내긴 했어도, 문학엔 문외한이던 그가 소설을 발표하다니. ‘최상규가 추리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가장 놀란 사람은 사실상 다른 어느 독자도 아닌 최박사 그 자신인 듯 보이기마저 한다.

“솔직히 오기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는 일이 이 분야이다보니 글쓰는

사람들, 특히 추리소설가나 방송작가들이 제게 자문을 많이 구했어요. 그것이 인연이 돼 추리작가협회 명예회원이 된 뒤 지금은 이사까지 맡아 9년째 왔는데, 명색이 ‘소설 하나 없는 추리작가회원’이예요. 그래서 나도 책 하나 꼭 쓰고 말겠다 그런 오기도 없지 않았지요. 원래 지난 80년부터 ‘월간 수사연구’에서 DNA기법 관련 사례를 15년동안 한번도 안 거르고 15년동안 썼던 일이 있거든요. 그 경험을 통해서 글을 쓴다는것에 많이 익숙해진터라 용기를 내 이번 책을 3년에 걸쳐 준비했는데, 사실 인내와 용기 아니면 제가 어떻게 10년에 책을 다섯권이나 냈을까 싶어요. 그런데 머리는 더 아파도, 역시 써 본 것중엔 소설이 가장 재미있더군요. 뭐든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다만 요즘 독자들은 워낙 눈이 높아서 웬만한 평범한 재미는 성에 안 차지 않습니까. 그래서 머리를 더 쓰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이 책이 성공 할 지 안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표면상 그리 달변의 얘깃군도 아닌 그가 처음부터 장편을 끌고 나가게 한 힘은 한편 그의 오랜 메모습관에서도 발견된다. 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된 메모벽은 오늘까지도 진행중. 심지어 외국 출장길에서도 한번 걸러 본 일이 없다. 30여년에 걸쳐 쌓인 그 수첩들은 분량으로만 몇박스. 그중 한 노트를 슬쩍 들여다보니 깨알같은 글씨에 번호까지 단정히 매겨져있다. ‘6월17일. 1)음주후유증, 2)점심 칼국수 3)아무개 교수 방문 4)아무개 형사과장과 통화 (국교생 강간추행건) 5)하루종일 비 오다. 일찍 귀가.’ 수십년전을 소급해도 끄떡없을 그의 알리바이 증명서이기도. 섬세하고도 철저한 성격을 말해준다.

5년뒤면 정년, 흔들림없는 삶 이어갈 듯

그도 5년뒤면 정년이다. 그 5년안에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다. 가장 급한 것은 유전자자료은행을 세우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한 해 평균 강력범 출소자는 약 2만명. 해마다 양산되는 이들의 유전자 정보만이라도 자료화 해두면 재범시 곧바로 DNA를 대조, 강력사건의 수사부담을 한층 덜어줄 수 있다. 컴퓨터만 두드려도 곧바로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 아까운 시간낭비와 소모적인 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인권문제에 걸려 법률화하기가 마냥 쉽진 않겠지만 이미 선진국에선 실시중,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어떤 사고를 당하든 억울한 행려병자로 내버려지지 않도록 구제해주는 기능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이젠 고려해 볼 때가 됐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갈 생각이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죽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므로’ 목숨 다하는 날까지 그는 뜻있게 살 작정이다. 좀 빠르긴 하지만, 몇 년 뒤 조용한 교외에서 꽃을 기르며 제2탄, 3탄의 글을 터뜨릴 퇴직후 자신을 상상하는 것도 일락. 가고 싶은 길이 있고, 가는 방법을 아는 그의 삶은 그래서 흔들림이 없다.

정영주·자유기고가 김명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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