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추라 "대선, 나한테 물어봐"

08/05(목) 12:39

1㎙93㎝의 키에 몸무게 120㎏. 프로레슬러 시절 거구에 걸맞게 ‘몸집(the Body)’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던 현 미네소타 주지사 제시 벤추라. 전문대를 중퇴한 학력에 해군 특수부대(네이비 실)의 수중 폭파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던 그가 지난해 11월 주지사에 당선됐을 때 그는 이미 ‘미국 정치사의 혁명’을 예고했다.

파격의 정치인 벤추라가 이제는 2000년 미 대선전의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그가 미국의 제3당인 개혁당(The Reform Party)의 당권을 설립자인 텍사스의 백만장자 로스 페로에게서 쟁취한 것이다. 7월25일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열린 개혁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지원한 잭 가르간이 213대 135의 압도적 표차로 페로가 추천한 패트리샤 벤자민을 누르고 신임 당의장에 선출된 순간부터 그의 위상은 주지사를 뛰어넘었다 . 그의 등장으로 어쩌면 민주당의 앨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부시 등 선두주자들의 대통령선거 페이스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그는 제3의 당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양당 구도의 미국 정치 풍토까지 바꿀 수 있는 ‘거물’인가.

기행 정치인 벤추라

벤추라는 주지사 선거 과정부터 숱한 기행으로 집중 조명됐다. 정직을 간판으로 내세운 그는 젊은 시절 네바다의 창녀촌을 기웃거린 과거까지 거리낌없이 내뱉었다. 정치자금을 일절받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자신의 로고와 구호가 새겨진 각종 기념품을 팔아 선거자금을 조달했다. 단돈 600달러를 들여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e-메일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미사여구를 섞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말을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그의 화법은 점점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기존 정치틀의 타파’. 미국 정치가 소수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로 일반인들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거침없이 쏘아대는 말은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잡아 두기에 충분한 하나의 이념이기도 했다.

파격적 행동은 주지사가 된 후에도 계속됐다. 주지사 취임식장에 프로레슬러 복장으로 나타난 그는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고 외쳐댔고 “내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당선은 문제없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러나 그는 주정부 각료를 정파를 초월한 전문가와 개혁인사들로 구성하는 등 제3당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적절한 정책을 펼 줄도 아는 ‘온전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방종과도 같은 그의 기행에 시민들은 아직까지 후한 점수를 주고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인기도는 85%, 직무만족도는 72%를 나타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주민들은 자신들의 주지사보다 벤추라에게 더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벤추라의 기회와 계산

벤추라의 인기는 그러나 대선전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최근들어 스스로가 차기 대선에 개혁당 후보로 나서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는 개혁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TV회견에서 그 같은 약속을 재다짐했다. 그는 대신 공화당 상원의원과 무소속으로 코네티컷 주지사를 지낸 로웰 와이커를 개혁당의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주, 공화 양당의 쟁쟁한 후보들이 개혁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벤추라가 개혁당의 유일한 카드는 아니다. 96년 대선에서 페로가 연방보조금을 받을 수있는 상한선인 득표율 5%를 넘어 9%의 지지율을 획득함으로써 개혁당 후보는 1,260만 달러의 보조금을 확보해 놓고 있다. 아직은 공화당 대권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으나 언제 탈당할 지 모르는 아리조나 출신의 존 맥케인 상원의원과 강경 보수파 패트릭 뷰캐넌 등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96년 대선때도 마지막까지 밥 돌 후보를 애먹인 뷰캐넌은 진작부터 제3당 후보출마 가능성을 내비쳐 또다시 공화당의 골치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상원의원이자 오클라호마 주지사를 지낸 데이비드 보렌, 그리고 뉴욕의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등이 개혁당 후보를 탐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혁당의 당권변화로 벤추라가 현실적으로 득을 볼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92년과 96년 대선에 잇따라 출마했던 페로의 삼수(三修) 의지를 꺾어 놓음으로써 무엇보다 벤추라는 당내 기반을 확고히 했다. 형편에 따라 전술을 달리하는 것은 이제 그의 몫이 된 셈이다. 측근들이 지속적으로 부추기는 자신의 대선주자 입후보도 언제나 내밀수 있는 카드가 됐다.

개혁당의 실험

벤추라의 등장은 양대정당 체제의 미국 정치풍토에서 제3당의 생존가능성 모색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9세기 양당제가 정착된 이래 미국에서는 제3당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군소정당으로 지리멸렬해 왔다. 지금까지 가장 선전했던 제3당은 1912년 대선 때의 진보당. 공화당 출신으로 재선 대통령을 지낸 루스벨트는 당내 후보지명전에서 윌리엄 태프트 당시 대통령에게 패하자 탈당한 뒤 진보당을 만들어 입후보, 6개주 선거인단을 휩쓸었다. 루스벨트는 2개주에서만 승리한 태프트에 심각한 타격은 입혔지만 공화당의 내분 와중에 최종승리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92년 대선에서 19%의 득표율로 바람을 일으켰던 페로도 미 정치사의 분수령이 됐지만 재출마했던 92년 선거에서는 지지율이 9%로 추락했다.

페로의 바통을 이어받아 개혁당을 이끌어갈 벤추라가 과연 진정한 혁명을 불러올 지는 아직 미지수. 전국적인 조직의 확고한 기반을 가진 민주, 공화의 오래된 양립 구도를 깨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부정적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개혁당과 벤추라의 발걸음은 미 대선전의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정곤·국제부 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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