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인 천국' 우크라이나를 가다

08/10(화) 22:00

7월24일 오후 2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서쪽 11.3㎞ 지점에 있는 볼리스퓨리 국제공항. 서울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도착한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단장 권용주) 단원 22명은 한 동양계 미인의 환영을 받았다. 키예프외국어대 한국어과 2학년 리라(22)양.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고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그녀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현지 여행사 직원이었다.

단원들은 대형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40분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170㎝를 넘는 이 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우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럴수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던 늘씬한 모델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게 아닌가.

젊은 여성들 꿈은 ‘해외진출’

우크라이나는 미인의 천국이다.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일까. 여성들의 미모는 더욱 돋보였다. 우크라이나는 한반도 면적의 2.6배나 되는 넓은 땅에 5,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강국이다. ‘유럽의 식량창고’라고 불릴 정도로 비옥한 흑토지대를 갖고 있어 구소련 시절엔 식량공급의 역할을 도맡았다. 광물자원도 풍부한 편이다.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이라는 음악으로 유명한 뮤지컬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무대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촌지역이다.

하지만 국민 소득은 1인당 981달러(97년 기준)에 불과하다. 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후에도 원유의 90%와 전력의 상당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제조업체가 전무한데다 산업설비가 낙후돼 있어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영공장 근로자의 월급은 60~70달러, 대우자동차 등 일부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는 월 2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 여성들이 외국으로의 탈출을 꿈꾸고 있다. 삼성전자 주재원인 김동민과장은 “최근 수년간 18~22세 여성 중 40여만명이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패션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독일, 폴란드, 체코 등 인접국가의 유흥업소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키예프에서는 수시로 모델선발대회가 열린다. 공항에서 집어든 영자지 ‘키예프포스트’는 유명 나이트클럽인 ‘할리우드’에서 모델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델의 수요는 한정돼 있어 상당수 여성들은 17~18세면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리라양은 “이미 결혼해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며 “대학에 진학하는 일부 여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고 말했다. 이 곳 여성들은 일단 결혼을 하면 가정에 충실한 편이다. 반면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다.

가난이 낳은 ‘매춘’

가난은 매춘을 낳는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 곳도 마피아들이 거느린 윤락조직이 많다. 7월26일 저녁 11시쯤 키예프 시내를 관통하는 드네프르 강변의 슬라브티치호텔 732호. 국립제12병원에서 진행된 의료봉사활동을 취재하고 돌아온 기자는 피곤한 몸을 눕힌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언뜻 잠이 들려는 순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수동식 전화기였다. 젊은 남자가 영어로 “예쁜 아가씨를 원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가격은 시간당 50달러이며 즉시 객실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객실에 투숙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키예프의 호텔에는 여자들이 들어올 수 없다. 사설 경호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텔측이 마피아와 결탁해 투숙객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다음은 키예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33)사장의 설명. “호텔로 전화해 보내주는 여성은 중급 수준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특급모델 수준의 여성을 만나려면 마피아 조직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 이들은 호화 저택이나 대형 아파트를 고급 룸살롱으로 개조해 외국인들을 유혹한다. 보통 한팀당 입장료만 300달러 수준이다. 여자의 경우 1인당 200~400달러를 요구한다.”

7월27일 저녁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사우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한국식 사우나를 연상했던 기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대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 로비 한켠을 점령하고 있었다. 종업원은 사우나 이용비용으로 시간당 90그리브나(1달러=4.25그리브나)를 요구했다. 여자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시간당 25달러를 추가로 내야한다고 했다.

사우나는 20여평이 채 안됐다. 5평 크기의 사우나장과 조그만 욕조, 샤워시설, 술을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룸과 큰 침대가 놓인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사우나는 남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다. 키예프에는 여관이나 호텔 등 숙박업소가 부족해 젊은 연인들이 함께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예쁘지만 미래가 없어요”

일부 여성들은 길거리로 직접 나선다. 키예프 제일의 번화가인 흐레샤티크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만난 알라(20)양은 친구와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며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생활을 위한 비즈니스일 뿐 부끄럽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3년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해왔으며 한달에 10명 정도의 고객을 상대한다”고 말했다.

외국행을 꿈꾸다 불행에 빠지는 여성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고려인은 “서구의 중·장년 남성들이 결혼을 미끼로 접근해 함께 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일부는 성적 욕구만 채우고 그냥 돌려보내 원성을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혼율은 선진국 못지 않게 높은 편이다. 남자가 경제문제를 등한시하고 보드카에 빠져 지내다 이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생활력이 강해 아이를 혼자 키우며 꿋꿋이 살아간다. 한 상사 주재원은 “노인을 공경하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점이 우리와 아주 닮았다”며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이 많아 청소년 비행이 거의 없는 편이다”고 말했다.

경제난은 우크라이나 정부 뿐아니라 이 곳 여성들에게도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특히 IMF사태 이후 인플레가 연간 수십%에 달해 생활고가 심각하다. 알라양은 “우리는 예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슬픈 눈망울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키예프= 고재학·생활과학부 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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