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변산반도.. 황혼녘 영혼이 타는 아름다움의 땅

08/11(수) 15:10

한반도를 감싼 세 바다는 저마다 다른 향취를 지녔다. 장엄하고 강한 동해. 짙게 드리워진 수평선과 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무한한 에너지를 사람에게 전한다. 천지를 물들이며 붉은 해가 솟을 때면 그 힘은 더욱 커진다. 남해는 깨끗하고 화려하다. 크고 작은 섬들과 그 주위를 감돌아 흐르는 맑은 물. 구비구비 저마다의 사연과 드라마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서해는 다정다감하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넓은 갯벌, 그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고깃배, 평화롭게 부는 바람…. 서해의 갯벌에 서면 마음 속에 또아리를 트는 것이 있다. 바로 ‘시심(詩心)’이다.

전라북도의 곶부리 변산반도는 그 시심의 한가운데에 있다. 바캉스철이면 잠시 시장바닥처럼 변하지만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 곳의 아름다움이 제자리를 찾고, 진정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객이 자리를 대신한다.

국립공원인 이 곳은 크게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구분된다. 직소폭포 내소사 등이 자리한 곳이 내변산, 격포 채석강 등이 있는 곳이 외변산이다. 호남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과 바다의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서해안의 진주같은 곳이다. 내변산 쪽의 여행은 거의 산행이다. 등산을 목적으로 가지 않는다면 부안에서 내소사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도를 일주하는 30번국도는 드라이브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은 채석강. 아직 물이 흐르는 강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격포해수욕장 끝에 자리잡은 기괴한 형상의 바위로 두꺼운 종이를 켜켜이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수억년에 걸쳐 퇴적된 수성암이다.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 기슭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88년 이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많은 수난을 당했다. 건축업자나 수석업자가 이 절경을 쪼개 팔아먹었고 격포항 방파재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격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채석강의 반대편에는 적벽강이 자리하고 있다. 2㎞의 해변에 펼쳐진 바위절경이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즐겨찾던 적벽강에서 이름을 빌렸다.

내소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절.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지어진 고찰이다. 특이한 절이름은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다녀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원목 색깔 그대로의 절 건물이 단아한 운치를 풍기고 절로 들어가는 200여㎙의 솔숲길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여유를 찾거나 서해안 사람들의 사는 냄새를 맡으려면 이러한 명소보다는 포구로 향하는 게 좋다. 만선깃발을 단 어부들의 환한 미소, 소라를 줄에 엮어 만든 쭈꾸미그물, 바다 냄새가 가득한 민박집의 밥상…. 격포항, 모항등이 이미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격포항은 식당가처럼 변해버렸고, 모항은 모 보험회사의 수련원 건물이 들어서 옛 풍치를 많이 잃었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은 궁항. 격포와 이웃한 곳으로 호젓함과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썰물이 되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항구 앞의 개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길 옆 자갈밭과 갯벌에는 굴 바지락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은 저녁에 절정을 맞는다. 낙조이다. 온 세상을 붉게 태우는 낙조는 보는 이의 가슴 속 응어리까지 연소시키고도 남는다.

생활과학부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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