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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 건국 50년] 거대 중국, 중화민족주의 꿈틀댄다

“中華人民共和國中央人民政府成立了!(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성립됐다)”

1949년 10월1일 오후3시. 마오쩌둥(毛澤東)은 베이징(北京) 천안문 누각 위에서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선언했다. 소련에 이어 유라시아 대륙 위에 또다시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면서 세계 이념지도(地圖)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999년 10월1일. 새 천년을 앞두고 중국이 출범 50주년을 맞는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의 협력과 대립, 민주주의 대부 미국과의 대립과 협력을 거치면서 반세기를 달려온 것이다. 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몰락 도미노 속에서도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외치며 용틀임을 계속해 왔다.

21세기 중국은 세계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아태질서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해답의 한 부분은 아무래도 신중국이 일어서고 걸어 온 궤적이 말해 줄 것이다.

마오가 국민당군에 쫓겨 대장정을 하던 1935년 1월15일. 구이저우(貴州)성 준이(遵義)에서 중공 중앙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른바 ‘준이회의’다. 이 회의에서 마오는 친소련 볼셰비키파를 제압하고 당권을 장악했다.

준이회의에서 ‘농촌을 근거지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이 정식으로 채택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구의 90% 이상이 농민인 중국의 현실을 무시한 채 도시 노동자 중심의 마르크스·레닌식 혁명을 고집하는 극좌노선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의 노선은 바로 ‘중국적 특색’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내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은 ‘옌안(延安)정신’이다. 장졔스(蔣介石) 군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화난(華南)성에서 싼시(陝西)성 옌안까지 장장 1만2,000㎞를 행군하며 불가사이를 창출한 정신을 말한다. 출발 당시 30만명이었던 홍군은 옌안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마오의 영도하에 척박한 북부 산악지역에서 혁명 근거지를 건설하고 승리의 기틀을 잡았다. 옌안은 신중국 인민들에게는 불굴의 혁명정신과 동의어가 됐다.

마오가 발동했던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 운동, 문화대혁명의 배경과 평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가건설과 이념적 노선을 둘러싼 대규모 사회적 실험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동시대 어느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중국적 특색’의 실험이었다. 66년에서 76년까지 10년간 중국을 광기로 몰아 넣었던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지도자의 부상과 함께 또다시 엄청난 반탄력을 얻게 된다.

78년 12월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확립된 덩샤오핑(鄧小平)체제는 신중국의 이념적 혁신 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란 실용주의 노선의 채택과 추진력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대혁명에서 쏟아내 보였던 정신적 동원력과 잠재력이 실사구시로 다시 개화한 것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올해로 21년째. 후진 농업국가에서 선진국들이 군침을 흘리는 발전도상 국가, 유망 투자국가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들어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연방 해체의 운명을 맞은 소련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왜 소련은 조기에 실패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을까. 역시 ‘중국적 특색’의 노선이다. ‘징검다리도 두드려 건넌다’는 덩샤오핑의 조심스러운 사상해방 전략이다. 생산력 해방을 위해서는 사상해방이 전제돼야 하지만, 사상해방이 결코 과거를 송두리 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신중성이 성공의 바탕이었다. 97년 7월 중국에서 출간된 ‘지에똥니엔따이(解凍年代·해방시대)’를 보자. 관변학자들이 저술한 이 책은 개혁개방 이래 중국에서 펼쳐진 3차례의 사상해방 기록을 담고 있다.

사상해방의 신호탄은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타파. 덩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은 실천”이라고 주장하며 마오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교조주의를 깨뜨렸다. 덩은 마오의 계승자 화궈펑(華國鋒)을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라는 실사구시 정신에 호소해 몰아 냈다. 그렇지만 그는 마오를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마오의 공과에 대한 판단을 앞으로의 실천에 맡겨 둠으로써 절묘하게 좌·우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두번째 사상해방은 ‘계획경제 숭배’를 혁파한 것. 덩은 생산력 발전에 이롭다면 사회주의적 방식이든, 자본주의적 방식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론으로 교조주의자들을 제압했다. 계획경제를 자본주의 국가가 사용하고 있듯이 시장경제도 사회주의 국가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공유제 숭배’로 부터의 해방. 사회주의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재산 공유제가 위로부터 깨진 것이다. 공유제로부터의 해방은 덩이 사망한 97년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15전대에서 마침내 후계자 장쩌민(江澤民)의 입을 통해 현실화했다. “공유제를 기본으로 하되 사유제를 포함하는 혼합 소유제로 전환하겠다.”덩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보위에 앉힌 장은 여전히 그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후계자들이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계승하는 것은 불가결한 정당성의 기반이 될 지도 모른다.

개혁개방 21년간 중국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와 연안지방의 눈부신 발전만이 아니다. 50년전 천안문에서 마오가 신중국 탄생을 선언했을 당시와 오늘을 움직이는 중국의 이데올로기가 달라졌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계획경제와 공유제가 사라진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향해 치닫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인가.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란 도데체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이 물음은 21세기 세계무대의 주요 행위자로서 중국이 아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묻는 것과 다름없다. 이 문제가 앞으로 아태지역의 거대 행위자인 미국과의 관계설정에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주류는 ‘개입(Engagement)정책’이다.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 이끌어 내겠다는 이야기다. 조지 부시 행정부와 빌 클린턴 정부가 모두 개입정책을 추진해 왔다. 물론 거대중국이 미국의 아태전략에 제동을 걸 만큼 커지지 전에 봉쇄해야 한다는 ‘중국위협론’도 있다. 하지만 주류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속마음이다. 외부와 관계없이 중국이 추구하는 고유한 전략과 아태지역에서의 위상이다.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는 무엇인가이다. 미국의 중국전문가 모리스 마이스너는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과 그 후(Mao's China and After)’에서 중국 사회주의의 동력은 민족주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마오의 사회주의 혁명과 덩의 개혁개방 정책도 근본적으로는 강력한 민족국가 건설에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과 다국적 기업이 국경을 무시하는 시대에 강력한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중국 50년은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와 중화(中華)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민족주의의 결합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아태지역은 미국의 ‘시장 민주주의’와 중국의 ‘중화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골치아픈 대결장이 될 지도 모른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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