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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하는 정치론 안됩니다"

“새천년을 맞아서도 1인 중심의 봉건적 정당체제를 고수하면 우리는 한발도 전진할 수 없다”

국민회의, 자민련 두 여당 내부에서 ‘1인 보스 정당체제’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 이인제 당무위원과 이종찬·김근태 부총재, 자민련 김용환 수석부총재, 박철언 부총재 등이 당내 민주화를 부르짖는 주역들이다. 소장파보다는 차세대를 노리는 중진들이 더 앞장서서 ‘3김정치 문화’ 청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요구 불 지핀 신당창당

국민회의에선 신당 창당 움직임이 민주화 요구에 불을 지폈다. 국민신당 상임고문을 지낸 이인제 당무위원은 8월26일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뒤 기자와 만나 “신당창당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누구한테 들은 적이 없다”며 “1인 중심으로 만드는 신당은 지역정당을 탈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뒤 줄곧 자민련과의 합당및 상향식 민주공천제 도입을 주장한데 이어 9월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신당건설은 1인정당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좀더 공개적으로 상향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위원은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김대통령의 명예총재론’에 대해서도 “경청할만한 얘기”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구 국민신당출신 인사들은 “이위원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연말쯤 이위원과 함께 탈당하자”고 엄포를 놓고 있어 이위원의 향후 진로가 주목되고 있다.

또 국민회의 재야출신 개혁그룹을 대표하는 김근태 부총재도 ‘정치시스템 개혁’을 주장했다. 김부총재는 9월7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강연에서 “이제 한 개인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며 “정치와 정당 공히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어떤 의사결정구조를 가져야 하는지가 또 하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부총재는 “신당창당만으로 정치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며 “창당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시스템과 리더십을 국민동의하에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찬 부총재도 9월10일 한국정치발전연구원 초청강연에서 당내민주화 요구에 가세했다. 이부총재는 “로마는 1인지배가 아니라 시스템을 잘 운영했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며 “신당은 민주화와 함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정당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총재는 이어 “김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 분권화하겠다고 말했는데 자꾸 청와대로 권력이 몰린다”면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강연을 갖는 등 너무 말을 많이 한다”고 꼬집었다.

자민련, 보스정치 탈피 요구 봇물

국민회의와 비슷한 시점에 자민련에서도 보스정치 탈피요구가 분출했다. 김용환 수석부총재는 내각제개헌유보를 계기로 당직사퇴서를 제출한 뒤부터 사석에서 1인 보스정치개혁을 거론하다가 9월8일 김칠환의원 후원회에서 이를 공식 제기했다. 김부총재는 이날 축사를 통해 “100일가량 지나면 새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몇몇 보스에 의해 정당이 장악되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제대로 소신을 펴지 못하고, 선거때 낙하산식 공천을 해 선택의 여지를 제거하는, 이러한 정치문화를 21세기에도 계속 끌고가야 하는지 회의를 갖게 된다”며 정당구조 개혁을 역설했다. 김부총재는 이어 “정치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김종필총리의 내각제 개헌유보 조치를 비판했다. 반(反)JP 독자노선도 검토하는 김부총재는 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1인 중심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원형적 리더십, 집성적(集成的)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며 집단지도체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자민련 박철언 부총재도 9월8일 자민련 의원세미나 도중 기자들과 만나 “황제적 1인 보스정치를 청산하고 당의 인사, 재정, 정책 등을 제도와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부총재는 이어 “비민주적 당헌·당규는 고치고 당론및 공천결정을 규정대로 해야한다”며 “공천은 장기적으로 당원대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선 객관적 여론조사를 참고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저녁 한양대 금융정책대학원 초청 강연에서도 ‘오너 정당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물론 당내민주화 요구는 차세대 주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9월6일 열린 국민회의 의원연수에서 김명섭의원은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그동안 외교·국방·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정책을 추진했으나 신당에는 명예총재로 모시는 게 어떤지 한번 생각해볼만 하며 신당은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박범진의원도 “재벌의 오너체제 청산처럼 정당의 오너체제를 극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모두 서울출신인 김의원과 박의원은 ‘DJ 간판’으로는 수도권에서 표밭을 더 넓히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9월8일 자민련 의원세미나에서도 충북출신 초선인 정우택의원은 “내각제 유보 과정에서 김종필총리 혼자 결정하는 등 1인중심의 당운영이 문제”라며 “선거구제 문제에서는 의원들의 자유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 이날 모임에서 당내 민주화 요구가 잇따라 터져나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논의해봐야” “인기발언” 엇갈린 평가

어쨌든 여권 중진들이 앞장서 내건 당내 민주화 깃발에 대해 여권내부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새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므로 상향식 공천제도의 실현방안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평가도 있지만 “실현가능한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개인적 야심을 펴기위해 인기성 발언만 하고 있다”는 등의 가시돋친 비판도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쟁력 확보에 주력해야 할 시기에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며 “당내 민주화 주장은 지도력을 흔들겠다는 것이며 지금은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자민련의 한 당직자는 “정당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발기인이 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통령이 신당발기인까지 낙하산식으로 임명하는 것부터가 정당민주화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권내에서 ‘포스트 3김’을 노리는 중진들이 내건 정당개혁 방안은 내년 4총선과 ‘새천년’이란 시점과 맞물려 정치적 논쟁의 주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권위주의적 정당구조를 탈피하자는 점에선 흐름을 같이하지만 정치적 속셈에선 적지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공동보조에 한계가 있다. 김대통령과 김총리 등 여권수뇌부는 이들의 정당 민주화 요구가 달갑지 않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민심수습차원에서 일부 요구를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여권내의 당내민주화 요구는 완전히 진화되지 않고 간헐적으로 연기와 불꽃을 만들어내는 불씨가 될 것 같다.

김광덕·정치부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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