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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여전히 허약체질

‘비만과 허약체질’

99년 하반기 한국 경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올들어 겉으로는 ‘잘 나가는’것으로 보이는 한국 경제의 체질에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발표하는 지수성장률을 실감하기가 힘들 뿐만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비만증 환자의 경우 몸무게(경제 성장률)가 늘어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는 치명적인 것처럼 일부 업종만의 호황과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 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잠재성장률 지수는 이같은 우려가 이미 상당부분 현실화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99년 상반기 7.3%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은 2% 중반에 불과했다. 즉 현재의 성장률은 지나치게 가파르며 자칫 물가불안과 경상수지악화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성장잠재력이 낮아진 이유는 뭘까. 다양한 원인이 제기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건설과 설비투자 등 고정투자가 크게 감소한데다 경제활동인구 증가율도 감소추세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극심한 경기침체에 따른 투자부진은 생산능력을 위축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설비투자는 97년 11.3% 감소한데 이어 98년에는 38.5%의 급락세를 보였다. 비록 올들어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투자가 98년의 부진에서 탈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실제 투자규모는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99년 상반기중 설비투자는 24.8%의 비교적 높은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이는 지난해의 극심한 부진에 따른 통계적 착시현상에 불과하며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교한 투자규모는 98년을 제외할 경우 아직도 최악의 부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90년에서 97년까지 설비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3.7%. 그러나 투자심리 위축으로 98년에는 이 비중이 8.7%로 추락했으며 올 상반기에는 10%정도로 회복됐을 뿐이다.

잠재성장률이 실제 성장률을 뒤따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잠재성장률’은 학술적으로 “노동 및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에 있어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도달가능한 최대 성장능력”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실질GDP가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로 하회하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게 된다.

90년대 상반기까지 7%대를 유지했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낮아졌다는 것은 조금만 높은 성장에도 물가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잠재성장률을 97년 실질성장률과 비교할 때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인 GDP갭이 1·4분기 약 3%포인트 수준에서 약 2%포인트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물가압력없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잠재성장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고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쓸 경우 인플레만 초래하고 경제의 체질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맞게 된다는 얘기다. 물론 기업들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 잠재성장률도 다시 상승하게 되지만현 시점에서의 고속성장은 위험하다는 것이 낮은 ‘잠재성장률’수치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경고인 것이다.

성장잠재력의 약화와 함께 지적될 수 있는 것이 호황업종과 불황업종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경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업종간 불균형 성장의 문제점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통신기기, 자동차 등 3대 호황업종의 1~7월중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7%나 증가했는데, 이는 전체 제조업 증가율(20.4%)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대우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들 3대 호황업종과 여타 업종간의 생산증가율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고 있다”며 “안정적인 경제 산업구조로 나아가기 위해 정밀기계, 정밀화학, 자동차 등의 고부가가치화를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3대 호황업종이 제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생산기여도와 기여율도 올들어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8월중 3개 업종의 생산기여도는 13.4%로 지난해 동기의 2.1%보다 11.3%포인트가 높아졌고, 특히 생산기여율은 85.4%로 반도체가 버블현상을 보였던 95년(43.6%) 당시보다 높았다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이같은 불균형은 수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8월중 수출은 지난해에 비해 3.0% 증가에 그쳤으나 3대 호황업종의 수출은 21.8%가 증가했다. 이 때문에 3대 호황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올해 1~6월중 수출은 오히려 8.5%가 감소했다. 이는 이들 3개업종의 수출이 올해 상반기 수출을 거의 주도했다는 것을 뜻한다.

산업은행은 “반도체, 정보통신 위주의 불균형 성장은 경제력 집중현상을 심화시키는 한편 반도체, 통신기기 관련산업의 수입유발효과에 따른 수입확대 지속현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반도체, 정보통신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고실업률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타 업종의 경기회복지연에 따른 피부경기와 지표경기의 괴리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97년 12월 외환위기 직후, 당시 재정경제원 강만수 차관이 “95년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반도체 경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며 ‘반도체 착시론’을 내놓았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야 한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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