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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회색의 땅에 '희망의 빛'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잡혀요. 인부들이 왔다갔다 하고, 사람들이 보여요. 앞으로 이곳이 북적댈 거라고 하니 정말 기대되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이곳에서 9년째 음식점을 해왔다는 한 식당 여주인은 폐광지역 종합관광단지 개발을 무척이나 반긴다. 89년 석탄산업합리화 당시 ‘막차’를 타고 이곳에서 음식점을 열었다 낭패를 보았다는 그의 말속에는 개발에 대한 기대가 배있다. 강원랜드 직원들도 심심찮게 찾아와 밥을 먹는다며 조만간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눈치다.

고한리는 석탄산업합리화 이전 4만명이 살았던 대표적인 탄광촌. 그러나 지금은 떠날 사람은 다 떠나고 6,000명만 남아 있다. 읍내에 유일하게 남은 삼척탄좌 직원과 인부들 덕분에 그나마 연명하는 곳이다. 아직은 시꺼먼 석탄가루가 더 친숙해 보이지만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지역경제 부활 기대로 ‘활기’

하지만 이곳에도 조용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아직은 주민들의 마음과 말속에서만 비치지만 개발과 지역경제 부흥에 대한 기대가 바로 변화의 실체다.

탄광촌과 카지노. 뭔가 부조화가 느껴지지만 주민들은 카지노가 지역경제의 부활을 가져올 마법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폐광지역 종합관광단지 개발을 맡고 있는 ㈜강원랜드 본사 사옥이 이곳에 들어선 것은 올해 4월10일. 구 고한읍 석탄회관 건물에 입주한 강원랜드는 이곳 주민들의 기대를 압축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내년 8~9월까지 스몰 카지노를 개장하고, 2002년까지는 메인 카지노와 스키장, 골프장, 가족 위락지를 조성해 본격 개장할 계획이다. 현재 스몰 카지노 부지정리 작업이 한창이다.

강원랜드는 석탄합리화 사업단과 강원도가 주식 51%를 보유한 공공법인. 폐광지역 종합관광단지 개발을 위해 95년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그런만큼 강원랜드에 주어지는 혜택도 특별하다. 국내최초로 내국인 출입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강원랜드는 2002년 첫해 3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루 8,000명 이상 꼴이니 주민들이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카지노와 관광을 즐기러 온 손님들이 뿌리고 갈 돈이 눈앞에 삼삼한 것이다. 강원랜드의 호텔 객실은 모두 500여개. 수용능력은 예상 관광객 수에 한참 모자란다. 자연히 주변지역의 숙박업소와 음식점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정선군과 인근 태백시도 기대에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로 곳곳에 ‘환영 강원랜드 기공’이라고 씌여 있는 플래카드가 그것을 말해 준다. 인근의 동강과 태백산맥의 자연경관, 동해와 연계되는 관광자원이 함께 빛을 발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돈 있는 사람, 외지임만 혜택” 걱정

그러나 고한리가 기대에만 부풀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강원랜드 사옥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야트막한 민가의 표정은 상가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길을 가던 한 아낙의 이야기. “카지노가 들어 선다고 우리에게 좋을 거야 뭐가 있겠어요. 돈많은 외지 사람이나 장사해서 돈벌이 하지, 우리야 안쫓겨 나면 다행이죠.”

가전제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민의 이야기에도 걱정은 배여있다. “카지노가 개장되면 지역 경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부작용도 많을 거예요. 각종 범죄가 판을 칠텐데 치안이 걱정입니다. 조직폭력배가 벌써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지역사회도 혼돈의 모습을 보인다. 종합관광단지 개발로 직접적인 이익을 볼 주민들,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삼척탄좌가 그렇다. 혜택을 예상하는 주민들은 당연히 개발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갈 곳없이 이곳에 주저앉아 있는 주민들은 그나마 삶의 터전마저 잃을까 걱정이다. 삼척탄좌도 개발에 따른 땅값상승을 노리고 이해타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가난한 주민들이 종합관광단지 개발을 반길 수 없는 것은 주택문제다. 정선군이 주는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 가서 변변한 집 한칸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춘을 갱속에서 보냈다는 한 노인은 철거되는 사택을 가리키며 울먹였다. “우리가 석탄으로 한국을 이만큼 발전시켰는데,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제 우리더러 어디로 가란 말인가…”

여전히 지역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척탄좌에 대한 주민들의 눈길도 이젠 달라졌다. 삼척탄좌에서 정선군측에 땅을 팔지 않아 개발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삼척탄좌는 지금까지 주민 덕에 돈을 벌었다. 당연히 땅을 팔아 개발에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사양산업인 석탄보다는 강원랜드를 조속히 발전시키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낫다는 이야기다.

지역민들에 혜택주는 정책펴야

혼란스러운 주민들의 이야기는 태백문화원의 김강산 사무국장의 말에서 정리가 된다. “카지노 개발의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클 것입니다. 주민들의 기대가 큰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자체고 주민들이고 아직 카지노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어떨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습니다.”

김 국장에게도 소외된 주민들의 앞날은 걱정거리다. 개발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높아지겠지만 직접적인 주민들의 소득향상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측에서다. “폐광되면서 남은 사람들은 모두 돈 못번 사람들입니다. 강원랜드가 개장된다고 해도 고용창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죠.”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폐광 후 실의에 빠져 있는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당국자들이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백시에는 89년 석탄산업합리화 이전 주민등록된 인구가 12만명,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20여만명에 달했다. 현재 인구는 6만명에도 못미칠 정도로 쇠락해 버렸다.

그는 카지노가 지역의 문화와 정서에 끼치는 영향을 ‘양날의 칼’에 비유했다. “문화의 질도 따지고 보면 재정자립도가 말해주는 겁니다. 경기도 과천시 처럼 재정이 풍부해지면 지역문화의 질이 따라서 높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 여기의 사정으로는 득실을 따지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카지노를 시작했으니 정부에서도 강원랜드에만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독점체제를 당분간 유지해야 특별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허용한다면 누가 이곳까지 오겠습니까. 문화적 환경만 황폐해지는 거죠.”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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