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세무조사] 세무조사가 먹히는 '부끄러운' 사회

‘유전무세(有錢無稅) 무전유세(無錢有稅).’

한때 한국 사회에서 유행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를 본뜬 자조적 표현이 또다시 시중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중앙일보 사주인 홍석현 보광그룹 사장과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된뒤 매달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꼬박꼬박 세금이 떼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반 봉급생활자들의 분노는 이제 허탈감으로 바뀌었다.

비록 보광과 한진그룹에 각각 262억원과 5,416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추징됐지만 세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탈세사실이 영원히 묻혀버렸을 것이 틀림없으며, 여러 정황상 이들의 탈세가 ‘가진 자들’이 탈루한 세금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탈세 부추기는 제도·법 체계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왜 ‘세무조사’를 받기만 하면 줄줄이 각종 세무비리가 적발되는 걸까. 그리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재벌이나 부유층들은 어떤 탈세수법을 동원하고 있을까.

우선 한국의 기업들에게 있어서 ‘세무조사’가 그야말로 ‘쥐약’으로 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세무체계가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목분류 자체가 애매해 과세근거를 찾지 못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불과 16억원의 증여세만 납부하고도 사실상 수조원의 가치를 지닌,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아들인 재용씨에 넘긴 사실은 한국 조세체계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외국과 비교할때 탈세범에 대한 처벌과 사후관리가 허술한 점도 한국 사회에서 탈세를 부추기는 또다른 요인이다. 외국에서는 탈세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다. 미국은 조세포탈범에 대한 조세시효가 없다. 탈세자가 살아있다면 끝까지 따라가서 세금을 추징한다는 취지이다. 또 미국 일본 대만 등은 세금을 내지 않고 미적거리다가는 고율의 가산세를 맞게 된다. 은행금리는 연 3~5%인데 가산세율은 20%나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효는 겨우 5년. 고의로 상속세를 탈세한 경우에만 시효가 15년으로 연장될 뿐이다. 당연히 그동안 들통나지 않으면 세금은 안내도 된다. 세금체납시 가산세도 10%로 은행이자 수준에 불과하다. 세금 낼 돈을 은행에 넣어두었다가 이자를 받은 것으로 가산세를 내도 되는 수준이다.

유전무세, 다양한 탈세수법 등장

실제로 98년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중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이 1.3%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느슨한 한국의 조세체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재산 상속자는 26만7,701명이었으나 상속세를 낸 사람은 1.3%에 불과한 3,455명뿐이다. 또 이들이 낸 상속세는 4조9,000여억원으로 총 상속재산 21조8,700여억원의 22.4%에 머물렀다.

우리나라의 경우 탈세자에 대한 사후관리 역시 외국에 비해 느슨하기 그지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국세청(IRS)의 세무조사를 받아 탈세사실이 드러나면 그 뒤로는 사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신용과 평판이 나빠진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국세청에 적발된 재벌과 부유층들의 탈세수법은 ‘유전무세’라는 말을 실감케 할만큼 교묘하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에는 외화유출을 통한 세금은닉이 새로운 수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선 한국의 대표재벌인 삼성그룹의 경우 ‘고 이병철 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씨’로 이어지는 지분 상속과정에서 마땅히 부과되야 할 상속세가 제대로 부과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0월6일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자민련 정우택의원은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16%를 퇴직 임원들로부터 9,000원에 사들여 지분을 26%로 늘렸다”며 “삼성측이 삼성생명 주식의 주당가격을 70만원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시세차익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은 “이는 고 이병철 회장의 보유주식을 퇴직 임원들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변칙으로 상속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변칙송금 등 갈수록 교묘

물론 세금을 줄이거나 아예 떼어먹으려는 시도는 재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초 컨설팅 회사의 오너인 최모씨의 경우 IMF체제이후 급증하고 있는 외환거래를 위장한 대표적인 수법으로 탈세를 기도한 사례이다. 최씨는 “해외에서 호텔경영을 하겠다”며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43억원을 대출받아 해외 현지법인에 변칙 송금하는 방식으로 기업자금을 빼돌렸다.

또 무역상이면서 반도체 관련제품을 수입판매하는 이모(45)씨는 94~97년 해외 관계사와 국내 기업간 납품거래를 중개한뒤 중개 수수료로 받을 커미션중 일부만 처리한뒤 나머지 1,000만달러를 현지에서 빼돌려 개인명의 부동산 매입에 사용했다.

서민들로서는 인정하기에는 가슴이 아프지만 ‘세무조사’가 효과를 발휘하는 현실만큼 부유층들이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