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의 허와실] 외국기업 "파트너인가 점령군인가"

10/26(화) 20:44

외국기업은 한국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취업 희망자의 선호 대상이 된 것은 옛일이고, 채권팀의 일원으로 재벌 구조조정 협상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부지불식간에 외국기업이 한국경제의 주요 행위자가 된 것이다.

외국기업의 한국진출 러시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제 확산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자, 한국경제의 국제화와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긍정론이 대세를 점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 기업문화의 혼란과 정부 경제정책의 자율성 약화를 지적하는 경계론도 있다.

분명한 것은 외국기업이 이제 한국경제의 불가결한 한 요소로서 정부 경제정책 수립과 일반인의 생활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이다.

IMF 이후 외국인 투자 비약적 증가

99년 9월 현재,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 수는 약 6,000개. 지난해 말의 4,892개에 비해 9개월만에 1,100여개가 늘었다. 이같은 비약적인 증가는 IMF 탈출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제시한 외국인 투자유치 촉진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IMF 이후 ‘외국인투자촉진법’등의 시행에 따라 99년 외국인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2.6% 증가했다. 올해 1~8월 외국인 투자총액은 77억7,400만달러 규모. 외국인 투자가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에는 총 797건에 투자액만 88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모기업의 지역별 분포도 다양화하는 추세다. IMF 이후 유럽국적 기업의 진출이 가속화하고, 일본기업의 진출도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유럽국적 기업의 한국투자는 전년도에 비해 141.6%, 일본기업은 75%가 늘었다.

대한 투자국의 수가 50여개국에 이르고, 이들 국가 기업의 투자업종도 1, 2, 3차 산업에 걸쳐 매우 다양하다. 국가별 투자기업 수는 일본이 1,721개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1,223개, 중국 268개, 독일 218개, 네덜란드 150개, 영국 111개, 홍콩 110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와 함께 50개 이상 기업이 진출한 국가에는 프랑스(93개), 싱가포르(79), 말레이시아(74), 스위스(73), 러시아(68), 캐나다(51), 대만(51) 등이 포함된다.

업종별 투자기업 수는 무역업이 1,113개로 가장 많다. 각종 서비스업종 672개, 기계 515개, 전기전자 451개, 화학 332개, 도소매업 245개, 기타 제조업 192개, 식품 145개 등의 순이다.

높은 자본 효율성, 영업실적도 상승

투자패턴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57억4,000만달러에 달해 총투자액의 64.8%를 기록했다. 97년의 33.7%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기업인수합병(M&A) 방식에 의한 투자도 12억4,000만달러로 총투자액의 14%를 차지해 97년 10%에 비해 다소 높아졌다.

외국기업의 영업실적은 한국기업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98년 한국기업의 수익성이 전년에 비해 악화된데 반해 외국기업은 오히려 개선됐다. 한국기업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 전년의 -0.5%에서 -4.2%로 크게 떨어졌지만 외국기업은 1.7%에서 5.2%로 크게 상승했다.(매출액 표참조)

외국투자 기업도 투자지분 비율에 따라 수익성이 달랐다. 지난해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50% 이상인 기업은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이 전년에 비해 증가했으나 지분 50% 미만인 기업은 대부분 적자를 보였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외국자본의 효율성이 국내자본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낮은 임금에 한국정부의 ‘호의’도 한 몫

그러면 외국기업들의 한국진입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 정부의 규제완화와 각종 투자유인책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한국의 투자매력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우선 한국인의 노동윤리를 그 매력으로 꼽았다. “독일이나 일본을 제외하고는 한국인처럼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국민도 없다. 노동생산성 대비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노동력의 질도 높은 편이다. 외국기업이 충분히 눈독을 들일 만한 조건이다.” 노동조건에서도 정부가 사소한 탈·불법은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제 문제는 이미 우리경제의 한 부분이 돼 버린 외국기업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LG경제연구원 오정훈 책임연구원의 이야기. “외국기업 진입은 외자유치와 선진경영기법 도입에 긍정적이다. 외국기업의 수익성이 높은 것만 보아도 이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경쟁에 따른)소비자 권리향상과 국내 고용증진도 부수적인 효과로 빼놓을 수 없다.”

오 연구원은 부정적인 측면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우선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국부유출의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외국기업이 M&A형태로 진출할 경우 국내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초과비용을 지출해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정부의 경제정책 자율성이 외국기업의 로비나 퇴출압력으로 인해 침해받을 소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체계적 해외자본 유치 필요

흔히 외국기업을 이야기할 때 ‘단물만 빨고 필요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국제철새’라는 말이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직접투자의 경우에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다. 간접투자의 경우에는 자본을 쉽게 빼갈 수 있지만 직접투자 기업은 퇴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어놓은 공장을 뽑아서 옮겨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외국기업의 한국진입에 따른 장기적 효과에 대한 정확한 손익계산을 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유동적인 국제경제 전망속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식으로 손짓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어차피 한국시장에 충분한 매력을 느껴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이라면 옥석을 가리면서 적정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외국기업 진입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통계적 작업도 필수적이다. 막연히 고용증진 효과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외국기업에 고용된 한국인 노동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못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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