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 한미 정치게임의 희생양인가?

10/20(수) 20:37

로버트 김사건이 발생 3년여만에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로버트 김구명 운동이 활성화조짐을 보이고 있고 각계에서는 이스라엘이 유대계 미국인 스파이 조너선 제이 폴라드의 석방을 중동평화회담에 연계시키는 등 끈질긴 노력을 보이는 것을 들어 로버트 김구명에 정부가 개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진지 6일 뒤인 96년 9월24일. 공노명 외무장관이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과 만나 긴밀한 공조를 다짐한 직후인 오후 8시15분께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은 미 해군정보국(ONI)에 근무하는 로버트 김(59·한국이름 김채곤)을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체포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백동일대령에게 기밀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영씨의 4남1녀중 장남으로 40년 1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로버트 김은 경기고와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뒤 미국으로 건너가 퍼듀대 공학석사를 학위를 받고 미 항공우주국(NASA) 컴퓨터 분석가로 취업했다가 75년 해군정보국으로 자리를 옮긴 컴퓨터 전문가다.

미 국무부는 로버트 김 체포 이튼날인 25일 한국대사관의 이창호 정무공사를 불러 “미국이 이번 사건에 매우 당혹하고 있으며 한국이 사건해결에 전폭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크리스토 국무장관도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평을 할 수 없다면서도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국측의 이같은 강경대응에 대해 복선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로버트 김이 백대령에게 전달했다는 정보들은 통상적으로 비밀분류됐을 뿐 정보가치는 낮은 것이라는 평가다. 미국 정보관계자들조차 “한국측이 공식 요청했다면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는 자료들”이라고 말할 정도다. 로버트 김이 한국에 넘겨준 자료는 주로 한국 영해내에서 북한 잠수함이 활동에 관련된 것들로 한국측은 당시까지만 해도 이같은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로버트 김의 체포시점도 의문이다. FBI 등 수사당국이 김씨의 기밀유출행위를 포착한 것은 같은해 5월. 로버트 김의 변호사는 수사당국이 로버트 김의 정보전달사실을 알고 증거도 충분히 확보했는데 체포시점을 늦췄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미국측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특히 한국측이 팀스피리트훈련 재개를 거론하는 등 강경입장을 취하자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로버트 김사건을 이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측의 수사협조요청에도 불구하고 백대령을 귀국조치해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로버트 김구명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영삼대통령은 공식서한을 통해 “로버트 김이 미국시민이므로 한국정부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로버트 김은 97년 7월 기밀유출죄보다 훨씬 형량이 높은 간첩죄가 적용돼 징역 9년에 보호감찰 3년형이 확정, 애팔레치아 계곡에 있는 연방교도소에서 복역중이며 9월말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형량재심의요청이 기각돼 현재 형량재심의요청을 다시 제출한 상태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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