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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절묘한 선택

수하르토 장기 독재를 종식시킨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정치적 실험에 들어갔다. 10월20일 압둘라흐만 와히드(59) 국민각성당(PKB)당수가 4대 대통령에 선출된데 이어 21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2) 투쟁민주당(PDIP) 당수가 부통령에 선출됐다.

인도네시아는 독립 54년만에 최고입법기관인 국민협의회(MPR)에서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았다. 또 65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34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B.J.하비비 전 대통령, 와히드, 메가와티 3파전으로 점쳐졌던 인도네시아 대선은 하비비 전 대통령의 후보사퇴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선거 전날인 19일 MPR이 하비비의 국정보고를 부결(찬 323표,반 355표)시킨데 이어 골카르당이 즉시 하비비의 후보지명을 철회함으로써 투표 10시간전 하비비는 낙마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아크바르 탄중 골카르 당수가 하비비의 대타로 지명됐다가 곧바로 철회되는 순간 34년 여당의 아성이 무너졌다.

차기 대통령은 와히드와 메가와티로 좁혀졌다. 의석 158석을 가진 최대정당 당수이자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52%를 얻은 메가와티에 51석과 11% 지지도의 와히드. 메가와티의 집권이 눈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개표가 시작되자 줄곧 메가와티가 근소한 차로 리드했다. 그러나 결과는 373표대 313. MPR은 와히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슬람계 군소정당의 표와 집권 골카르당의 표가 결집된 결과였다.

결과가 발표되자 메가와티 지지자 1만여명은 “우리는 메가와티를 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군·경 치안병력과 충돌, 자카르타는 돌과 최루탄으로 얼룩졌다. 또 자카르타 주식시장은 순식간에 폭등세에서 폭락세로 돌변했고 루피아화도 급락했다. 메가와티는 “화합을 위해 선거결과를 받아 들이기를 촉구한다”며 자리를 떠났다.

격렬한 시위의 혼란속에서 인도네시아와 세계의 시선은 부통령 선거에 모아졌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하비비의 부통령 제안을 거절, 대선판도를 바꾼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총사령관. 여당이면서 대통령 후보를 못내는 아이러니를 연출했지만 와히드에게 지지를 보내 부통령 내락을 받았던 아크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 그러나 부통령선거에서도 반전의 드라마는 계속됐다. 투표직전 위란토와 탄중이 사퇴하고 메가와티는 와히드의 국민각성당 추천으로 출마, 통일개방당(PPP) 총재 함자 하즈 후보를 396표대 284표로 눌렀다.

격렬했던 메가와티 지지자들의 시위는 하룻밤새 환호성으로 바뀌었고, 떨어졌던 주가는 큰폭으로 상승했으며 환율도 안정을 되찾았다.

의회 최대 의석을 보유하고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메가와티는 성(性)과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인구 2억명 중 90%가 회교인 인도네시아에서 회교 7개 정당의 추대를 받았고 3,000만명의 지지자를 가진 인도네시아 최대 회교단체 나흐드라툴 울라마(NU)의 지도자 와히드는 당장 넘기에는 큰산이었다.

현지 언론은 와히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메가와티에 비해 온건한 정치성향, 여성 지도자를 멸시하는 회교 국민정서, 순수회교권 출신 등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수하르토 집권 당시 메가와티에 대한 탄압에 앞장섰던 골카르당의 피해의식도 와히드의 당선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새로 선출된 와히드 대통령과 MPR은 총칼이 아닌 변화를 포용함으로써 안정의 길을 열었다. 와히드의 이슬람세력, 메가와티의 피플파워, 위란토의 군부가 절묘한 타협을 통해 안정을 선택하며 한지붕 아래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정파와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와히드-메가와티 체제가 탄생한 것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21일 취임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국가화합을 위해 지방정부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국가자산의 공평한 분배, 독립적인 사법부의 설치 등 정국운영 구상을 밝혔으며 거국내각 구성작업에도 착수했다.

인도네시아의 앞길에는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도 2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극복과 98년 수하르토의 사임 이후 터져 나오고 있는 아체, 이리안 자야 등 지역의 분리독립운동의 해결, 기각이 결정된 수하르토 부패사건 재조사, 총선에서 분열된 국민의 대화합, 대선에서 드러난 정치엘리트와 일반대중간의 괴리극복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난제의 해결 여부는 온건보수 성향인 와히드와 개혁성향의 메가와티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가는 가에 달려 있다. 보수와 개혁의 불안정한 동거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정국혼미는 불문가지다.

정치평론가 살림 사이드는 “와히드와 메가와티가 평소에도 자주 만나 현시국의 문제점을 논의해 왔다”며 “두사람이 호흡을 맞춰 정치안정과 경제개혁등 시급한 과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최기수·국제부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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