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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연속교류좌담회] 21세기 대비한 문화공통성 추구

한국일보사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사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의 성공을 기원하고 새 밀레니엄시대의 성숙한 한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연속 교류좌담회를 개최한다. 좌담회는 ‘한일 이해에의 길’이라는 대주제 아래 99년 1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여섯 차례 열린다. 11월7일 일본 쓰시마에서 ‘한일교류의 바람직한 상태-조선통신사의 행적과 선각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를 주제로 열린 첫 좌담회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2차 좌담회는 2000년 5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참석자

<한국> △이어령(좌장·새천년준비위원장) △김태준(동국대 교수·국문학) △한수산(작가·세종대 교수)

<일본> △우메하라 다케시(좌장·일본 펜클럽회장) △가미가이토 겐이치(데스 카야마가쿠인대 교수) △구로다 후쿠미(여·배우)

진행:임철순(한국일보 편집국 국차장) 후루가와 히로시(요미우리 편집국 국차장)

일시:11월7일(일) 장소:쓰시마 벨포레홀

우메하라=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메이지(明治)시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 약 50년간 일본지배의 대단히 불행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일한관계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국의 한(恨)의 역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후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저는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이같은 시기에 월드컵축구의 양국 공동개최가 결정됐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본문화를 개방해 일본과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영단을 일본국민들은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어령=저는 어린 시절 고구마를 먹고 자랐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성장하면서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에서 갖고 온 귀중한 작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고구마로 이름붙은 것은 단순한 식물로 전해진 것이 아니고-일본어로 ‘고코이모(孝子イモ)’가 한국에서 고구마가 됐습니다-한국과 일본의 도덕적 가치가 내재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에서 통신에 이르는 조선통신사와 쓰시마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쓰시마의 외교관이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이웃국가와 신(信)을 나누는 것에 의해 외교가 열린다고 말한 것은 쓰시마가 단순한 통상기지가 아니라 일본의 또 하나의 패러다임을 만든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메하라=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가 하나가 되어 EU(유럽연합)라는 경제공동체, 단순한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공통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아시아의 번영을 추구하려면 EU와 미주대륙에 맞서는 아시아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과 일본이 확실한 문화적 공통성을 확인하고 친선의 기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같은 공동체는 문화적 공통성을 배경으로 한 공동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령=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는 시기에 전세계는 문화의 통일성을 축으로 다양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문화의 통일성을 기반으로 한 EU,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이슬람 등으로, 최근 5, 6년동안 세계의 지도가 이데올로기로부터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터키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시대,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시대에는 확실한 NATO, 유럽의 일원이었지만 문화의 시대가 되자 유럽과의 문화적 연결성이 없어 EU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슬람으로도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일본도 터키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구라파로 들어감)’시대에는 터키 이상으로 유럽의 일원으로 활동했지만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이 문화,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급작스럽게 신지역주의가 부상함에 따라 고립적인 문명이 돼 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 독창성과 동일성을 가진 신지역협력체라는 점에서, 고립돼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일본은 군사, 경제로는 만들 수 없었던 아시아라는 하나의 문화동일성을 추구하며 임진왜란 이후 신평화의 시대를 구축해 간 조선통신사와 같은 모델, 쓰시마와 같은 지역적 역할등을 진지하게 검토, 그것이 2002년 월드컵으로 이어진다면 통상이 통신이 되는, 정치경제문제가 문화문명으로 되는 패러다임의 변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통신사와 아메노모리

우메하라=저는 아이치(愛知)현 오와리(尾張) 출생입니다만 아이치현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좋습니다만 조선정벌행위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쿠가와는 일본에서는 음험한 인간으로 인식돼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통신사라는 것을 시작하고, 일한의 평등한 관계를 모색했습니다. 쇄국에 의해 외국의 문명과 단절됐던 일본에 새로운 해외문명을 접하게 해준,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통신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대등한 문화관계가, 대등한 외교관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지 이후 일본지배의 역사, 전후 역사를 극복하고, 역으로 에도(江戶)시대 아메노모리 호슈의 지혜를 배우면서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미가이토=아메노모리는 우호선린을 촉진한 외교관만은 아니었으며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문화철학을 만들어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로쿠·게이조(文祿·慶長)의 큰 전쟁(임진왜란)을 체험한 후 평화외교를 추진하려 했던 것이 쓰시마항(對馬島藩)과 그의 입장이었습니다. 당시는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만 불화의 요소, 알력의 씨가 존재한다는 것이 호슈의 인식이었습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알력의 원인이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 호슈는 ‘하나 하나씩 아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부산에서 공부한 호슈는 조선어를 잘했고 나가사키(長崎)에서 중국어 회화도 공부했습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구조, 형태가 다른 언어라도 언어로서의 기능은 평등하며 우열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세계사상사에서 문화의 차이와 언어구조의 차이에 관심을 두어, 아무리 달라 보이더라도 평등하다고 주창한 인물은 적어도 서양의 사상가 중에는 없지 않을까요. 호슈는 다시 한 번 21세기에 평가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태준=아메노모리가 활약했던 18세기 동아시아는 공통문명권이었습니다.

유교등 공통종교와 공통된 문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호슈가 있었을 때 일본에는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등이, 한국에도 홍대용(洪大容)이라는 동아시아의 문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린 ‘우주무한론’을 주장한 대단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중세라고 하면 평화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홍대용과 박지원(朴趾源)등은 윤리의 문제에 대해 오륜(五倫) 중 4개는 종(縱)의 윤리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은 4개의 종의 윤리를 떠받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4개의 종의 윤리란 원래 알고 있는 사람들 간의 윤리입니다. 홍대용은 모르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므로 붕우유신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과 친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윤리관을 제시했습니다.

문화와 차이와 오해

한수산=저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흔들의자같다고 생각됩니다. 새로운 인식과 이해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지만 앞으로는 전진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상호 이해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한 마디 하자면,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음식을 먹습니다. 한국에서는 내려 놓고 먹습니다. 한국에서 그릇을 들고 먹으면 “너 거지냐”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개나 식기를 놓고 밥을 먹는다”는 말에 매우 놀랐습니다. 그렇게 보면 상대가 거지이기도 하고 개이기도 한 것입니다. 개를 가만히 살펴 보니 확실히 그릇을 들고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관점과 시각은 버립시다. 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구로다=문화적 오해가 불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아메노모리 호슈가 말했다는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일본에서는 ‘恨’이라고 쓰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사람들은 일제36년이라는 것이 있어서 원한을 품고 있다’는 식으로 오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고’라는 말을 일본에서는 왠지 ‘哀號’로 쓰고 있는데 일본인은 한국인들이 ‘아이고 아이고’하고 통곡하기도 하지만, “아이고 죽겠다”며 웃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또 일본인은 무언가 요청을 할 때 “될 수 있으면 이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만”이라고 완곡한 표현을 씁니다. 한국에서 그렇게 말하면 “아 안해도 되는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이처럼 세세한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문화를, 작은 것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문화적 통역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메하라=일본인이 한국인으로부터 제일 경멸받는 것은 결혼풍습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촌결혼을 태연하게 치르거나 형제결혼마저 한다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와 결혼한다고 금수(禽獸)의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같은 사람들과 결혼할 수 있는 아이누족의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같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는 강력한 터부가 있습니다. 한국은 역시 부계터부입니다. 풍습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이는 커다란 세계문화·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작은 것입니다. 지금부터 같은 문명의 피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서, 작은 차이의 원인을 확실히 파악해 적어도 “너는 거지다” “너는 개다”라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거지도 개도 아닌, 사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문화의 같은 점·다른 점

우메하라=일본문명의 바탕은 조몽(繩文)이라는 수렵채집기의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수렵채집문화의 흔적이 일본보다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기원전 3세기경 도작문명과 사람들이 이주해와 나라를 세웠습니다.

고대의 일본과 조선3국(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도작문명을 토대로 불교와 도교가 발전했으며 유교는 도작문명과 밀문명을 통일시키는 사상으로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은 도교 불교 유교를 국가사상의 중핵으로 삼아왔습니다. 도입방법은 달라도 도작농업지역에서 탄생한 사상을 문명의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세계문명의 넓은 흐름에서 보면 공통점이 매우 많습니다. 받아들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상적 공통점을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령=도작문화에서의 미묘한 차이를 젓가락을 통해 생각해 보면 한국의 젓가락은 뾰죽하지 않고 짧고 두껍습니다. 일본의 젓가락이 날카로운 것은 생선을 많이 먹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은 가족 전원이 모여서 먹기 때문에 젓가락이 깁니다.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공통점은 쌀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을 대표하는 산업인 반도체산업도 도작과 관계있습니다.빵을 먹는 밀문화의 사람들은 인내해가면서 치밀하게 작업해야 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쌀(米)이라는 한자가 ‘八十八’로 돼 있듯 여든여덟 번 손질을 하지 않으면 쌀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기계와 사람이 융합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게 반도체입니다. 이런 화합, 융합의 문화는 오랜 쌀농사의 전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보화사회를 지탱하는 섬세한 반도체문화가 발흥합니다.

김태준=의식주가 지금은 비슷해진 상태가 됐지만, 한국인이 일본의 기모노(着物)를 입기라도 한다면 저항감을 매우 갖거나 합니다. 의식주라는 기초문화의 관점에서 폭이 매우 넓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의 도작 농업문화에서는 18세기 실학이 매우 발달했습니다. 실학의 실(實)은 열매라는 뜻으로 농업과 관련이 매우 많은 사상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실학사상과 농업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수산=쌀은 동양 공통의 화제이지만, 저는 아이스크림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중국인은 어떻게 먹는지 몰라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숟가락으로 생긴 구멍을 메워가면서 먹습니다. 메운다는 것은 같은 농경민족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서양인들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덮어서 평평하게 하는 습관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아이들이 숙제를 하지 않거나, 장난이 심하면 우리는 “나가라”고 합니다. 서양의 경우는 아이들을 방에 가둡니다. 그런 공통점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간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통신사도 길이 있었기 때문에 오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E메일을 주고 받을 만큼 길이 없어도 통신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통신사의 역할수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로다=농경문화에 대한 이야기나 나왔으니 저도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한국의 숟가락은 훌륭합니다. 조미료로 간을 볼 수 있고, 주걱 대신 냄비 안을 휘젓는 것이 가능해 서양의 스푼보다 매우 편리합니다. 일본에는 남성용과 여성용, 아동용 젓가락이 있습니다. 일본은 젓가락이 훌륭하고, 한국은 숟가락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양국가가 사이좋게 되는 것이 멋진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호 이해로 가는 길

가미카이토=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공통성을 말하는 것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는 금기시됐다고 봅니다.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같은 것, 다시 말해 일본어와 한국어는 기원이 하나이므로 나라가 하나로 되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 식민지지배의 구실이 됐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으로는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일본제국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화에 구실도 됐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합니다.

과거 에도시대에도 화려한 조선통신사행사의 이면에는 불화의 씨앗들이 많았습니다. 호슈는 이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가 아마도 최후에 도달한 것은 하루하루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만이 위험, 즉 전쟁을 피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에도시대를 능가하는 진정한 우호와 평화를 실현하려 한다면 에도시대 사람들에 뒤지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김태준=조선에서는 쇄국시대에 중국에 연 2회 사절을 보냈습니다. 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공 이후 12번 일본으로 갔는데, 같은 기간 쓰시마가 조선에 보낸 사이반이라는 외교관은 그 10배인 120차례 다녀갔습니다. 쓰시마는 식량부족으로 시달려 그 필요성 때문에 조선에 사이반을 보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생하면서 왕래한 사람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쓰시마의 중요성도 이제 재평가해야겠지요.

이어령=양국의 이해와 관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공생관계인 기린과 찌르레기를 통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찌르레기는 기린의 털로 둥지를 만들고 기생충을 잡아 먹지만 기린에 상처가 나면 기린의 피를 빨아 먹기 때문에 천적관계로 변하고 맙니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상처가 남아 있다면 관용이나 새로운 공생은 불가능합니다.

양국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까 하는 문제와 상처를 치료했을 때의 공생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지식인들의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지식인이란 혼자만 사는 ‘live in’이 아니라 함께 사는 ‘live with’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live in’으로 자신의 국가에 매여서는 자신의 국가 외에는 보지 못하고 자신의 결점도 보지 못합니다. 자유로운 지식인들은 자신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식인이 많이 모이면 공생관계라든지 국익이 상충될 때의 중개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구로다=저는 한국 배구선수의 팬이 된 것을 계기로 한국에 급속히 친근감을 갖게 됐습니다. 외국에 관한 지식은 데이터에 지나지 않지만 한 번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한 문화를 만들어낸, 그 나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데이터라는 평면적인 것이 실물로 다가옵니다. 먼저 흥미를 가지면 좋아하게 되고, 애정어린 눈으로 한국을 볼 때 과거의 역사를 모르더라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김태준=어린 시절부터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500개 이상의 대학이 있고 그중 반 이상이 일본어학과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아마 900개 이상의 대학이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중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10~20개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로의 언어를 아는 것은 우호·교류를 위해 중요한 것으로 이를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미가이토=양국관계에서 어느 쪽이 더 노력해야 하나를 생각하면 일본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히 한국의 여러분께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인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은 전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에 대해 동정을 갖고, 혹은 호의 우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일입니다. 일본인은 모두 신용할 수 없다든가 침략적이라든가 호전적이라고 이야기하면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어령=마지막으로 한 가지 구체적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서로 편견을 없애고,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관계가 나쁠 때에도 친선과 우호의 길을 열어주었던 자료로 쓰시마의 소케(宗家)문서가 있습니다. 이 귀중한 기록은 한국과 일본, 중국에 3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자료사본같은 것을 교환,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협력해 해독한다면 이해의 길을 넓히는데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메하라=이번 좌담회는 좌담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생의 제안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합시다. 역사를 새롭게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직 일본인 중에는 침략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측에는 일본에 대한 원한을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측의 그같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들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측에 대해서는 일본이 과거에 범한 일은 분명히 나쁘다, 일본도 점점 변해왔다, 그리고 미래에는 친선관계를 맺는 방법밖에 서로 살아나갈 길이 없다는 식으로 과거를 정리해줄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도 경계를 늦추면 안됩니다. 동시에 한국인들도 이 무드를 훼손하지 말아 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 다시 과거 나쁜 시대로 돌아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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