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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배를 꿈꾸는 사람들] 한탕주의에 날아간 꿈

원단을 제조하는 한 중견기업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는 최지환(41·가명) 차장은 불혹의 나이에 ‘올빼미’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매일 새벽 3~4시부터 컴퓨터와 씨름한 뒤 출근하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남들이 곤히 잠든 이 시각부터 미국 나스닥의 종목·테마별 주가 동향을 면밀히 분석, 그날 아침 국내 코스닥에 투자할 전략을 세운다. 코스닥이 언제부터인가 미국 나스닥 추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철저한 분석 덕에 그는 이달 들어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하지만 그는 ‘이제부터’라고 말한다. 그간 엄청난 손해를 보다 이제야 본전을 찾았기 때문이다. 최씨가 코스닥에 뛰어든 때는 지수가 210까지 치솟던 7월 중순. “일주일에 두배를 번다”는 동창들의 권유에 따라 명퇴한 아내의 퇴직금과 그간의 적금 등 총 7,000만원을 모아 벤처기업 2곳에 분산 투자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대우 사태가 터지면서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 두달여가 지난 9월초 그의 시가 총액은 3,000만원으로 줄어 있었다. 아내와의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9월 중순 심한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와 여관을 전전했다.

이때부터 패인 분석을 위해 나스닥을 살피기 시작한 최차장은 10월 중순부터 서서히 투자 분석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금은 원금을 회복해 집에 들어갔지만 아내와 감정을 상하면서까지 치른 대가치고는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모험에 가까운 코스닥과의 무리한 승부

주식으로 낭패를 본 예는 비단 일반 투자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명문대 경제학과를 나와 모 증권사에서 5년째 근무하는 박원준(33·가명)대리는 몇달전만해도 사무실에서 ‘애널리스트’로 불릴 만큼 시세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올 9월초 거래소가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에 좌우되자 개인투자가들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결심했다. 13평 전세에 살고 있는 그는 아파트를 사려고 대출까지 해서 모아두었던 1억2,000만원을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모 전자회사에 소위 ‘몰빵’(전액 투자)을 했다. 7월 중순 최고 214까지 갔던 지수가 150선대로 떨어진 터라 ‘이제는 바닥을 쳤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패착이었다. 채 한달이 안돼 무려 65% 가량 폭락했다. 결국 박대리는 8,000만원을 손해본뒤 4,000만원에 주식을 팔고 나왔다. 5년간의 내집 마련의 꿈이 단 한달 사이에 산산조각 난 것이다.

‘High Risk, High Return.(위험이 높은 곳에 수익도 크다)’ 증권가에서 투자자에게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로 통하는 이런 충고가 지금 국내 증시에선 마치 위험이 큰 모험 주식에 베팅하라는 ‘메시아의 예언’처럼 신봉되고 있다. 모두가 ‘한탕주의’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치고빠지기 수법에 멍드는 투자자

이런 기류에 편승해 ‘부실 벤처’‘거품 벤처’들이 속출, 선량한 일반 투자자들을 울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심기술 없이 벤처회사라는 간판만 걸어 놓고 투자자들을 모은 뒤 나몰라라 하는 ‘치고 빠지기식’ 수법이다.

이들은 중소기업청이 인증하는 벤처기업 확인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 1~2년 뒤 코스닥에 벤처기업으로 등록하면 10배 이상의 수익을 남길수 있다고 꾀어 투자금을 모아 챙긴다.

또 일부에서는 실제 매출이 없음에도 막연히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장밋빛 환상만 강조해 자본금을 끌어들인뒤 이를 개인 치부에 사용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마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10억원 미만의 규모에서 자본금을 모집할 경우 금융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관리 ·감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 무차별적으로 자본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한 예로 정보통신업을 표방하며 97년말 설립된 B사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20평 규모의 사무실에 직원 4명을 두고있는 자칭 벤처회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구축을 표방하는 이 회사의 지난해 1년 매출액은 고작 1,500만원. 그럼에도 사장 P씨는 “2년후에 코스닥에 등록하면 최소 10배 이상의 수익을 남길수 있다”고 떠들며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말 10여명의 에인절 투자자로부터 2억원의 자본을 끌어 모았으나 현재는 거의 바닥난 상태. 만약 이 회사가 파산할 경우 투자자들은 건물 보증금인 1,500만원을 나눠가져야 할 형편이다.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부실 벤처회사의 한 단면이다.

작전세력까지 등장, 벤처기업5%만이 성공

서울 에인절클럽의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의 성공 가능성은 5% 미만인데 최근의 투자는 거의 ‘참견마’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더구나 미등록 회사의 3~4년후 주가가 공모가의 4~5배는 되야 경제성이 있는데 최근의 벤처사들은 공모가를 너무 올려 투자자들이 적정 수익을 내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코스닥이 급성장하자 자본력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빠져나가는 ‘작전세력’까지 등장하고 있다. 대개 사채업자가 운영하는 파이낸스사나 창업투자사가 많으며 심지어는 그 해당 회사의 대주주들까지도 불법적으로 이 대열에 나서고 있다.

올해 주가가 50배나 폭등한 골드뱅크를 비롯해 상당수 등록 업체가 이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증권업협회가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이상 매매 종목’으로 적발한 기업수가 하루 평균 65개에 달할 정도로 코스닥 시장은 아직 불안하기 이를 때 없다.

이처럼 첨단 벤처기업의 무대인 코스닥 시장이 쉽게 작전 대상이 되는 것은 자본금 규모가 작고 대주주 지분 분산이 제대로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동 물량마저 적어 수억원에도 주가가 요동친다. 또 코스닥 종목에 대한 투자 정보라곤 주관 증권사가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유가증권 신고서’가 고작이어서 그만큼 작전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금융 당국은 최근 대주주는 등록후 6개월 이내에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보완 조치를 강구했지만 창업투자회사에 대한 규제가 전무하는 등 아직 규제가 미미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벤처 투자에 앞서 ▲매출액과 부채 규모 ▲사업 아이템의 참신성과 실용성 ▲전환사채(CB) 발행과 액면 분할 규모 ▲대주주 지분율과 거래 규모 ▲코스닥 등록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파악한 뒤 투자할 것을 권고한다.

현재 코스닥과 벤처기업에 대한 이상 열풍은 현 정부의 강력한 벤처 드라이브 정책에 상당 부문 기인한다. 물론 첨단 벤처 기업의 육성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국내 산업 발전의 초석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활성화는 현재와 같이 무분별하고 불안정한 양적 토대를 위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현재의 위험한 ‘머니게임’ 아닌, 기술과 실적이 조화를 이루는 내실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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