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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개선으로 '12억'과 맞서야

“12억5,000만명의 ‘거대 시장’이 활짝 열렸다.”

“12억5,000만명의 ‘거대 공장’이 쳐들어 온다.”

어느 말이 맞을까. 중국이 11월15일 미국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타결지었다. 세계경제 대주주인 미국과의 합의는 곧 가입이 기정사실이 됐음을 뜻한다. WTO는 전세계적 차원의 자유무역체제 확립을 목표로 성립된 기구. 중국이 WTO에 가입한다는 것은 자유무역체제에 합류함을 의미한다.

‘12억 거대 시장’이 우선 연상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보는 해외의 시각은 인구와 영토 등 양적인 측면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중국인에 내의 한 벌씩만 팔아도 12억벌”식의 이야기는 미국 정치·경제인, 로비스트들 입에서도 회자돼 온 이야기다. 이런 선입관은 현실도 현실이지만 과거 저개발 시절의 중국에 대한 편견이 묻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은 변했다. 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불을 당긴지 올해로 21년째다. 세계 총무역량의 3.1%(10위)를 점하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변했다. 미래의 덩치는 더 크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7.8%였고, 올 상반기는 7.6%를 기록했다.

선진국들이 3%대 경제성장에 턱걸이하고 있는 동안 2배 이상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중국을 ‘12억 거대 공장’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2억시장’과 ‘12억공장’의 차이

‘12억 시장’과 ‘12억 공장’은 모두 맞는 말이다. 문제는 나라마다 경우가 다르다는 점이다. 무역상 비교우위를 누가 어느만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중국의 WTO 가입을 보는 시각과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은 애초부터 큰 걱정이 없었다. 섬유를 비롯한 중국의 경공업 제품은 한국과 동남아산 보다 미국시장에서 값이 싸다. 값이 싼 만큼 미국 소비자들의 가계지출이 줄어들어 미국에 이익이다. 값싼 중국 경공업 제품이 미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미국이 협상에서 끝까지 집착한 것은 자국이 압도적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서비스, 통신 등 첨단분야 시장개방이었다. 그래서 미국에게 중국의 WTO가입은 ‘12억 시장’으로 비쳐진다.

한국은 형편이 다르다. 정확한 손익계산은 어렵지만 ‘12억 시장’보다는 ‘12억 공장’쪽에 다소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의 ‘4,700만 공장’이 중국의 ‘12억 공장’과 해외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미다.

왜 무한 경쟁인가. 지금까지 중국은 WTO 비회원국이라는 약점 때문에 세계시장 접근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왔다. 수입국이 관세를 높이 매기면 중국 수출품의 가격이 올라간다. 중국제품의 가격 상승분 만큼 한국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제 이같은 혜택은 사라지게 됐다. 교훈은 한가지.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중국과 다투려면 가격경쟁은 아예 꿈꾸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시장이 확대되고 중국의 관세장벽이 낮아지면 물론 한국에도 유리한 점이 많다. 미국이 열어 놓은 문으로 한국이 무임승차하는 셈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현재 평균 22.1%인 수입품 관세를 17%로 내려야 한다. 당연히 대중국 수출이 늘게 된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는 2005년까지 6년간 중국의 수입액이 182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중에서 한국의 몫은 얼마나 될까. 우선 ‘12억 시장’측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국의 WTO 가입으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연간 10~17억 달러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서비스, 전자부품, 기초석유화학제품, 철강제품, 자동차부품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경공업제품, 한국수출시장 장식

‘12억 공장’시각에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내리기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중국산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대우경제연구소는 2002년 한국제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최고 1.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자동차, 전기·전자, 일반기계, 철강, 의류, 완구·운동용구 등 거의 전업종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중국이 한국의 수출시장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중국제품의 수입도 당연히 늘게 된다. 값싼 중국산 콩, 참깨, 고추, 마늘 등 농산물 유입량이 증가하고, 미질이 비슷한 쌀도 저가에 들어올 공산이 크다. 경공업에도 발등의 불이다. 김익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의 WTO가입은 중국산 저가 공산품, 모조품 수입을 급증시켜 국내 경공업과 단순자본 집약적 산업의 생산기반을 현저하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책은 하나다. 국내 산업구조를 고도화, 고부가 가치화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점점 좁아지는 세계 틈새시장에 목을 매야 한다. 저가품은 중국산에, 고가품은 선진국에 다 내놓은 채 방황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도 최근 산업구조 조정에 팔을 걷고 있다. 노동집약산업에서 기술집약산업으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김익수 교수는 “국내 산업계에서 경쟁력없는 산업의 퇴출과 업종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과 획기적인 기술개발 투자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WTO 가입이 ‘12억 시장’이 될 지 ‘12억 공장’이 될 지는 지금에

달려있다. seapower@hk.co.kr>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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