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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1999] 시간속에 묻혀가는 '그때 그사건들'

20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 조선조말에서 일제 암흑기를 거쳐 근대화가 시작됐고 군사독재의 암울한 터널을 넘어 문민정부와 현재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이 와중에서 일제와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민주투사들의 의문 사건이 숱하게 일어났다. 대표적인 의문사들과 국민들의 뇌리에 지금도 생생한 미제사건들을 정리한다.



◆백범 김구 암살

1949년 안두희에 의해 암살된 직후부터 백범 김구 선생의 시해 동기에 대해서 그간 엄청난 의혹이 제기 됐었다. 40여년간 입을 다물고 있던 안두희는 96년 ‘정의봉’에 맞아 숨졌지만 병석에 있던 때 한 지사의 설득에 따라 테이프 121개에 암살과 관련된 몇가지 진실을 증언으로 남겼다.

여기에는 서북청년단 가입과정, 경찰 수뇌부의 도움, 정보장교 김창룡과의 정기적인 만남, 암살 기획자 김지웅과의 접근 과정, 한독당 양근환을 백범 암살의 미끼로 던진 사실 등 백범이 친일파와 분단체재의 희생양이 됐다는 증거가 들어있다.

이밖에 암살후 김창룡의 극진한 대우, 호텔같은 감방 생활, 한국전쟁 직후 국방장관 신성모의 금전 제공, 암살사건에 관련해 국가기관의 개입을 확신하는 고백 등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자주적 통일독립’이란 민족주의 이념을 무덤까지 가져갔던 백범 김구. 앞으로 맞이할 21세기에는 암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장준하 최종길 등 시국사건 의문사

1975년 8월17일 오후1시20분께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반대투쟁을 벌이던 재야 지도자 장준하(당시 57세)씨가 경기 포천군 이동면 도평3리 약사봉 등산길 계곡 아래 벼랑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조사 결과 14m 높이의 벼랑에서 추락한 그의 시신에선 외상이나 골절상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잡혀가면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양쪽 겨드랑이에 피멍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것을 단순 변사 처리했다. 당시 장씨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한·일회담을 반대했으며 71년 7대 대통령 선거때는 박정희가 선출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몇안되는 반독재 인사였다. 유가족들은 장씨가 독재정권에 의해 살해됐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자살 사건도 의혹이 짙다. 최교수는 유신 정권의 서릿발같은 날이 휘날리던 73년 10월16일 오전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최교수가 간첩 혐의를 인정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밝혔지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전기 고문기 조작 실수에 의한 심장 파열’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고문사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다 지난해 그를 아끼는 선·후배 지식인 100여명이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 역사적 진실 규명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밖에 시국 관련 의문사로는 89년 8월15일 전남 여천군 삼산면 거문도 해수욕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인 이내창(당시 27세)씨 등 다수가 있었으나 결론은 모두 자살로 끝났다.



◆군 의문사

그간 베일에 가려있던 군(軍)의문사는 지난해 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 사건은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이 4개월에 걸쳐 재조사를 벌였으나 결국 자살로 결론을 맺었다. 이때부터 군의문사가 불거져 유가족단체들으로부터 강력한 재조사 요구를 받고 5개월간에 걸쳐 132건에 대한 재조사를 했으나 역시 단 한건도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86년 9월15일 첫발생이후 91년 4월2일까지 경기 화성군 일대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은 여성들의 밤 나들이가 현저히 줄어들었을 정도로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건은 야산이나 농수로와 같은 한적한 곳에서, 그것도 늦은 밤에 벌어졌다. 희생된 10명의 부녀자중 13세의 여중생 2명을 포함해 10대, 20대가 각 3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50대, 60대 각 1명, 심지어는 70대 할머니 1명도 희생됐다.

대부분이 성폭행당한 뒤 목이 졸리거나 둔기에 맞아 살해됐다. 대규모 수사 착수 이후 한동안 사건이 발생하지 않다가 6년만인 96년 11월 화성에서 또다시 한 여고생이 피살됐는데 그 수법이 예전 것과 유사해 11번째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14년이라는 사상 최장기 수사본부를 설치, 연인원 200만명에 가까운 수사인원을 투입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정신이상자의 소행이거나 여러명의 모방 범죄라는 두개 상황을 설정하고 수사에 착수해 용의자만 1만8,000명을 조사하는 기록을 남겼다.

지문과 유전자 감식 의뢰건수도 4만건에 달했다. 수사과정에서 88년 1월 용의자로 몰린 명노열(당시 16세)군이 고문 끝에 숨졌고 90년 12월에는 용의자로 조사받던 차겸훈(당시 38세)씨가 정신분열증세로 열차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부작용도 잇따랐다.

대량 물량 공세에도 답보 상태에 머물던 이 사건은 말단 경찰관의 기지로 10건중 유일하게 1건의 범인이 검거됐다. 수원남부경찰서 매탄파출소 원천출장소 최웅렬(41)경장은 당시 살해된 김모(당시 13세)양의 몸에서 남성 체모를 발견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성분 분석을 의뢰, 일반인보다 2배가 넘는 다량의 티타늄과 염화칼슘이 묻어 있는 것을 밝혀냈다.

공고 화공과와 보건전문대 식품제조학과를 나온 최경장은 범인이 티타늄 원료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일 것이라 추측하고 티타늄을 다루는 화성 일대 32개 업체 465명의 체모를 감정해 결국 농기구 용접수리공 윤성여(당시 22세)를 검거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이후 수사팀은 추가 검거는 못한 채 사실상 해체 상태에 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90년대초 전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대표적인 미스테리 사건. 김종식(당시 9세)군을 비롯한 대구 달성구 성서초등학교 친구 5명이 91년 3월26일 오전8시께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와룡산으로 간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특별히 가출할 이유도, 의심갈 만한 유괴의 흔적도 남기지 않아 8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사건의 방향 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장기간 행방이 오리무중인 상태로 남자 ‘유괴된 뒤 암매장 됐다’‘가출후 해외로 팔려갔다’에서 심지어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으로 납북됐다’등 각가지 소문과 억측만 난무하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 전국을 이잡듯이 뒤졌으나 실패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이 나서 700만장의 전단을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각 언론사들이 실종 어린이 사진을 인쇄해 배포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성금도 답지했으며 현상금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4,200만원까지 치솟았다. 경찰은 94년 8월 실종 당시보다 나이가 든 얼굴 전단 4만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추가 배포했으나 역시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수사본부는 96년 5월 해채됐고 지금은 제보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종 직후 수백건에 이르던 신고전화도 97년 2건, 98년 1건에 그치는 등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다. 생계까지 포기하고 아이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가족들도 93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수색을 포기했다.



◆대천 영아 연쇄 피살 사건

91년 8월16일~94년 8월16일 충남 대천시 한 동네 400m 반경의 가정집에서 생후 5개월 미만의 영아 4명등 영·유아 5명이 잇달아 유괴 살해됐다. 범인은 주로 부모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집으로 들어와 아기만 들고 나가는 수법을 썼다.

특히 희생 어린이들의 복부를 예리한 칼로 가른 뒤 간 등 장기 일부를 잘라가는 잔인무도한 짓을 해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다. 희생자들의 부모가 부유하지도 특별한 원한 관계도 없는 것으로 보아 장기 매매를 노련 조직적인 범죄로 보인다.

경찰은 초기 이 사건을 정신착란자의 소행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수사가 처음부터 꼬였다.

경찰은 나중에 △장기가 유실된 점 △복부 절개가 전문가 수준인 점 △희생자들이 대천시내 모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생했다는 공통점 등으로 미루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장기매매 범죄로 수사 방향을 돌렸으나 단서 하나 제대로 못잡은 채 흐지부지 사건을 종결하고 말았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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