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동해안 겨울바다

12/30(목) 11:22

겨울바다를 찾는 이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의 바다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색의 수영복과 파라솔,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의 굉음, 바가지 상인들의 호객행위…. 그 모든 것을 떠나보낸 바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조용하지만 깊은 추억을 남긴다.

덕분에 겨울바다의 명소가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시설면에서 앞서가는 유명해수욕장이 이 역할까지 도맡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더 조용한 곳, 더 새로운 곳을 찾기 때문이다.

최근 겨울바다의 총아로 떠오른 곳은 뭐니뭐니해도 정동진. 빅히트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장소이자 서울에서 정확히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정동진역)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유혹했다. 높은 파도와 바위, 간이역의 서정이 어울린 정동진은 당연히 그럴 자격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람의 때가 타버렸다. 널린 카페와 술집, 주말마다 운집하는 전국의 수천, 수만 대의 차량은 정동진을 역사상 가장

수명이 짧은 여행지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동진을 찾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동진 역앞의 시멘트 축대와 백사장만을 맴돌다 돌아간다. 그러나 정동진의 매력은 그 북쪽과 남쪽 4~5㎞에 걸쳐 넓게 펼쳐져있다. 북쪽의 명물이 등명낙가사.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탁월한 아담한 사찰이다. 서울에서 정확히 동쪽으로 나있는 해안은 바로 이 절 앞이다. 용주(龍柱)로 받친 절의 일주문에는 ‘대한민국정동’이라고 쓰여진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남쪽의 명물은 현재 조각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정동진해수욕장이다. 정동진역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이 곳은 역전의 번잡함을 피하면서 두 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텅 빈 백사장, 달려오는 파도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양양군의 최남단인 남애항도 겨울바다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바다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취를 한 데 모아놓은 곳. 방파제와 빨간 등대, 작은 포구와 어시장, 백사장과 기암괴석 등등. 싸고 푸짐한 횟집,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한 숙박시설은 보너스이다.

이 곳에서는 새벽부터 아침 식전까지가 가장 즐겁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방파제로 나간 여행객은 우선 항구로 돌아오는 고기잡이배의 경쾌한 엔진소리에 귀가 즐겁다. 고깃배들은 저마다 갈매기떼를 몰고 오고 그 뒤로 붉은 해가 장엄하게 솟는다.

찬바람에 볼이 빨개지면서 일출을 보고 방파제에서 내려오면 고깃배가 펼쳐놓은 좌판에 입이 벌어진다. 남애항의 고깃배는 오징어에서 고등어까지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잡는다. 포구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직접 흥정하는 재미가 일품일 뿐 아니라 값이 엄청나게 싸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는 기쁨이다.

삼척시 임원항은 먹는 재미가 추가되는 곳. 항구에 상설 해산물 시장이 있어 싱싱한 횟감은 물론, 북어, 노가리, 말린 가재미 등 동해안의 별미를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시장입구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횟집촌이 임원항의 하이라이트이다. 붉은 고무통에 들어있는 생선을 회쳐주고 매운탕까지 끓여준다.

회는 주로 메인생선 하나와 들러리 작은 생선 4~5가지를 섞은 모듬회 형식으로 판다. 4명이 배가 터지게 먹는데 3만원이면 족하다. 이 횟집촌의 특기는 매운탕. 걸쭉하고 얼큰한 맛이 ‘강원도 음식은 밋밋하다’편견을 일소하기에 충분하다.

생활과학부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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