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두 물이 하나된 한강(漢江)

12/30(목) 11:29

강물이여! 가서 가서 쉼 없는 자여/ 한번 가서 돌아옴이 없는 자여/ 즐거이 즐거이 노래하며 가는 자여/ 한번 가서 마침내 뉘우침이 없는 자여····유치환 ‘영원과 사랑의 단장’에서

강물은 그 흐름 자체로 한 편의 수필을 이룬다. 실개천이건, 개울이건 간에 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바다로 흘러 가는 것이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물의 흐름이 바다로만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적이면서 한편 목적의식적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흐름은 가치 지향적이면서 자기원칙에 충실한 합리성이다.

바다로부터 가루개(分水嶺)의 발원지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는 그 부절(不絶)의 연면(連綿)은 일관된 필연성을 추구한 결과이다. 그리하여 한 방울 개울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그 물방울은 바다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다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긴 여행의 끝이자 시원(始源)에의 귀향이며 하나의 완성이다.

강물은 그 강나루에 정착, 살아왔던 사람들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실어나른 역사의 통로이다. ‘나일강의 선물’로 회자(膾炙)되는 이집트 문명이 그러하고, 전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라일강의 기적’이 그러하며, 서울의 한강이 또한 그런 강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강은 ‘한강(漢江)’이기도 하다. 조국이 남과 북으로 나뉜 것처럼, 강줄기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그 한 뿌리는 북녘에, 또 한 뿌리는 남녘에 두고 있으니····

그래서 북에 뿌리를 둔 강이 북한강(北漢江:北韓江)이요, 남녘에 뿌리를 둔 강이 남한강(南漢江:南韓江)이다. 서울의 젖줄이자 어머니인 한강은 두 아들강도 남북으로 나누어져 국토분단의 아픔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강에는 이념도 사상도 없다. 북한강의 뿌리가 되는 금강산의 만폭동물은 이념도 사상도 아랑곳 하지않고 유유히 휴전을 뚫고 흘러 내린다.

그러나 양수리(兩水里)에서 남한강 물과 포옹한 뒤 서울시민의 갈등을 풀어주고는 교하(交河)에서 다시 임진강과 아우러져 황해로 들어간다.

서울 시민은 가만히 앉아서 금강산 물을 먹는다.

흐르는 물은 이처럼 서로 사귐을 즐거워한다. 기꺼이 사귀고, 동반자가 되어 함께 노래하며 흐른다.

그렇게 두 강이 만나는 곳이 경기도 양평고을의 양수리. 여기가 우리말로 ‘두물머리(두머리)’ 또는 한자로 뜻빌림 한 것이 ‘이수두(二水頭)’라 부르는 곳이니 ‘북한’과 ‘남한’의 두 물이 만나서 하나 되는 곳이기 때문에 ‘두물머리’인 것이다.

강물에 있어서 1+1은 둘이 아닌 하나. 그리하여 한강(一江)이다. 둘이 합해져 하나가 됨은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위한 전제이기에, 두 강물의 해후는 마침내 양수리에서 거침없이 한 몸이 되고, 그리고 ‘북한’산과 ‘남한’산 사이에 몸을 풀어 ‘서울’을 낳았다.

그러기에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요 탯줄, 어머니의 크고 따뜻한 가슴을 열어 자양분을 공급하는 민족의 하염없는 핏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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