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벽두부터 파죽지세의 기세로 달려 나가는 시민단체의 약진이 눈부시다. 1월10일 경실련 ‘공천부적격자명단’에 코너에 몰린 뒤 24일 총선연대의 ‘공천반대인사명단’의 강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정치권에 정개련이 27일 ‘유권자가 알아야 할 15대 국회의원’명단으로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총선을 앞둔 이 맘 때는 정치인들에겐 표밭갈이에 한시가 아까운 시기지만 지금은 시민단체의 눈치를 살피는 것 만도 숨이 부칠 지경. 적어도 부패 정치인들에게 새천년은 끔찍한 악몽과 함께 시작됐다.


“사람사는 세상 한번 만들어보자”

현재 유권자심판운동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는 총선연대를 비롯, 경실련, 공선협, YMCA, 정개련 등이다. 이들의 활동방향과 노선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부패정치인 추방을 통한 선거혁명이라는 큰 흐름에는 일치된 입장이다. 온갖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세상 한번 만들어 보자”는 신념 하나로 달려왔고 기어코 큰일을 낸 시민단체들. 그 지칠줄 모르는 열정속에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전사들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다.

시민단체 선거운동의 다양한 움직임속에서도 현재 470여 단체가 참여, 공천반대인사 명단 선정·발표 등 활발한 낙천·낙선운동을 펼치고 있는 총선연대가 단연 선봉에 서있다. 이 단체를 대표하고 기본 노선을 설정하는 것은 직제상 최열 환경련사무총장 등 공동대표단과 박원순 참여연대사무처장 등 상임집행위원장단이지만 직접 현장을 뛰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실무차원의 세부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각 단체에서 파견돼 있는 386세대들이다.

이들 젊은 일꾼들은 대부분 지난해 가을 4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 참여를 통해 정치현장의 최전선에서 함께 뛰며 낙후된 한국정치의 현실을 절감했고 ‘낙선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졌다. 국감 후 각 단체로 복귀한 이들은 간부들에게 2000년 총선에서 전국차원의 낙선운동을 펼칠 것을 제의해 관철시켰다.

김기식(33·참여연대 정책실장) 사무처장은 총선연대내 포진중인 젊은 피들의 좌장. 서울대 인류학과 85학번인 그는 이번 명단선정과 발표까지 모든 사안을 기획하고 집행한 핵심브레인이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조용한 성격의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이었어요.1984년 재수시절 길을 지나다 광주항쟁 관련 대자보를 읽었습니다. 갑자기 뒷골이 멍해지면서 알 수 없는 슬픔이 치솟아 오르더군요.” 이 곱상한 용모의 모범생은 1985년 대학진학과 동시에 민주화를 위한 열혈 투사로 변신한다. 1986년 구국학생연맹사건 1987년 6월항쟁과 관련, 집시법 위반혐의 등으로 수차례 ‘빨간 딱지’도 붙였다. 1987년 인천공단으로 노동운동을 떠난 그는 만 6년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민초들의 애환과 고충, 그리고 소박하기만한 삶의 모습을 가감없이 경험했다.

“현장에서 무참히 깨져 나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구조적 힘’의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특히 제대로 운동을 펼치기 위해선 정책부분에 있어 지식인들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 백골단에게 맞고 현장시절 구사대에게 깨지면서 ‘정말 이기는 운동 한번 해야겠다’는 오기도 있었지요.”


‘이기는’ 사회운동에 뛰어든 투사들

그가 현장경험을 중단하고 공개의 장으로 돌아온 것은 1993년 중순께. 합법적 공간에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주변 동료들을 설득해 참여연대 전신인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를 결성했다. 부인 문혜진(29)씨도 여기서 만났다. 그의 가족사랑은 유별나서 24일 공천반대인사명단 발표를 앞두고 합숙에 들어갈 때 문씨와 아들 준서를 동행시키기도 했다.

총선연대 김타균(32·녹색연합 정책부장) 공보국장은 업무적으로 김기식 사무처장과 호흡을 맞춰야 할 경우가 많아 늘 함께 행동한다.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인 그이기에 ‘냉철한 판단의 소유자’로 통하는 김사무처장과는 서로의 취약부분을 보완해 주는 찰떡궁합을 이룬다.

직책상 대외 활동에만도 하루를 25시간으로 쪼개써야 할 지경이지만 부지런한 천성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손이 달리는 동료의 잡무처리는 물론, 격무에 시달리는 후배들을 끊임없이 격려하는 등 안식구챙기기에도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95년 시민운동에 투신하면서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을 선택한 것은 고교시절 뼈아픈 시련에 기인한다. 경남 합천출신인 김공보국장의 고향은 85년 합천댐 건설시 수몰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환경난민’임을 자칭한다.

“어린시절 추억이 모두 잠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설인데 지금도 어머니는 명절때 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십니다.”

고교 시절 서럽디 서러운 실향민 생활은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했다. 진주 경상대 87학번인 그의 전공은 산업공학이지만 정작 관심은 사회과학과 환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환경운동가로서의 뜻을 굳히고 95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녹색연합에 공채 4기로 활동을 시작한 ‘준비된 환경지킴이’이다.

‘포커페이스’로 통하는 총선연대 이태호(32·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기획조정국장은 감정의 기복이 없다. 그렇다고 인상이 차다는 말이 아니다. 늘 조금 피곤해 보이는 듯한 표정에 사람좋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는 아무리 기쁘건 힘들건 간에 그 얼굴 그대로이다. 그래서 늘 그가 맡는 업무는 정교한 기획력과 함께 꾸준한 뚝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공천반대인사명단작성에도 김기식 사무처장과 함께 핵심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 작업을 위해 합숙에 들어갔는데 방송에선 ‘경기도 모처’에서 작업중이라고 하더군요. 근데 사실은 시내에 있었어요. 바로 그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나왔는데 시민 한분이 제 얼굴을 알아보고 밥값을 내주었습니다. 유명세라고 하면 오만일까요? 후후…”

물고기도감에 밑줄까지 쳐가면서 연구할 정도의 낚시광인 그는 피리에도 일가견이 있어 동료들사이에 타고난 ‘풍류쟁이’로 통하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이끌어내

총선연대 사이버팀장 이경숙(28·여·여성연합 정책부장)씨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94년 충북대 졸업후 지역PC통신망 운영자로 일하던 중 충북 여성민우회의 일을 도와주면서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든 것은 97년 3월 환경연합 김달수 홍보국장과 결혼하면서 부터. 두살배기 아기까지 있지만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에 힙입어 시민운동에 정진하고 있다.

“아직까지 휴일 시댁에서 아침밥 한번 지어본 적 없을 만큼 아내와 며느리로서는 낙제감”이라고 자조하는 그는 시부모님과 남편의 후원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전한다.

양세진(34·참여연대 시민감시부장) 운영국장, 이강준(30)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일꾼들이다. 또 총선연대에는 참여하고 있진 않지만 경실련 고계현(34) 시민입법국장도 이 단체가 펼쳐온 ‘공천부적격인사명단’발표 등 ‘정보공개운동’의 핵심역할을 담당하면서 유권자심판운동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끌고 있다.

“이번 한 번으로 정치판을 모두 바꿀 수는 없겠죠. 하지만 오만과 허세에 빠져있던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 단호한지를 똑똑히 알려 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이란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젊은 시민운동가들의 흔들림 없는 각오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자신도 주체하기 힘든 뜨거운 열정을 조금이나마 식혀갈 수 있는 여유 정도인 듯 하다.

이주훈·사회부기자


이주훈·사회부 jun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