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은 열여섯 살이다. 120여종이 넘는다는 판소리나 소설 어디에서도 춘향은 과년한 처녀요, 성인이다. 춘향가나 춘향전은 그가 이몽룡과 벌이는 첫날밤의 장면을 질편하게 쏟아 놓는다. 조혼(早婚)이 성행했던 시대에 춘향의 이런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종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여자 나이 열여섯이면 신체적으로, 성적으로는 성인이다. 그래서 그 나이가 되면 성인으로 취급하는 곳도 있다.

우라나라에서 그들은 청소년이다. 사회적 성인은 만 19세다. 그 전에는 술집에 갈 수도, 담배도 살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는 만 20세다. 그 전에는 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문화적으로, 더 정확이 말해 영화에서 성인은 만 18세이다. 법제처가 지난해 말 법의 형평성을 들어 19세로 높이려다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금의 성년, 미성년의 기준은 다분히 근대교육제도가 낳은 것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거나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성숙 단계로 본다. 학자에 따라서는 그것이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억압과 통제의 구조라는 비판도 나온다. 육체적 성숙도를 정신적 성숙으로 억제하려는 이데올로기라고 비난한다. 그것도 특히 ‘성(性)에 대한 억압’에 집중된다. 그것이 여성의 성에 대한 미성숙과 부작용으로 나타나 성적 타락과 성의 상품화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과거 성인이었던 춘향은 현대사회에서 미성년자가 됐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춘향뎐’에서는 과거 성인인 춘향을 현대의 미성년자인 열여섯살의 배우(이효정)가 나와 성행위를 연출했다. 배우는 가슴을 노출했고, 나체로 남자와 뒤엉켰다. 배우는 그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감독에게 여러번 혼이 났다. “너 안해 봤어”감독은 그의 서툰 연기에 호통을 쳤고, 그 장면을 예고편에 담았다.

청소년 보호위원회는 ‘춘향뎐’의 정사 장면은 청소년에 대한 성적 학대와 착취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영리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음란한 행위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춘향뎐’이 비록 해외영화제에 출품해 수상을 노리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리나 흥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영화가 성적 학대와 착취, 음란한 행위를 하게 했느냐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어이없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나 예술적 시각에서 보면 16세 배우의 연기는 사실성에 해당된다. 열여섯의 춘향을 스무살이 넘는 배우들이 어리광부리듯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로리타’‘택시 드라이버’도 10대 배우였다.

그렇더라도 강지원 청소년 보호위원장의 말은 영화계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배우 개인의 인격이다. 누구나 대중 스타를 꿈꾸는 세상에서 당사자가 원하고, 부모가 동의한다고 해서 미성년자의 성을 상업적으로 마구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강 위원장의 주장이다.

선진국처럼 미성년자의 성적연기에 신중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8시간 이상 연기를 시킬 수 없고, 정신과 의사를 붙여 연기가 당사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 그 것은 곧 우리 사회가 가져야할 또 하나의 인격 존중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가, 예술이 청소년 관객에게 미칠 영향만을 생각해 왔다. 교복을 입은 여배우가 나와서 성행위를 하면 안되고, 나이 어린 배우가 노출을 심하게 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의 생산 주체인 배우 한사람의 인격까지 생각할 때이다.

비록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거짓말’에 이어 일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포르노그라피 ‘감각의 제국’에 등급을 내줘 우리 사회의 문화 수용과 도덕적 기준에 대한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가볍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꽃잎’‘나쁜 영화’등에서 연기 차원을 넘어서 “이것은 배우에 대한 학대”라는 느낌을 너무나 분명하게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대현 문화부기자 /


이대현 문화부 leed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