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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반상의 성(性)혁명 루이 9단

조훈현 꺾고 '국수' 등극, 바둑사상 첫 여류 사상

"바둑도 사랑도 결국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지는 것"

조훈현 9단을 꺾고 세계바둑사상 여자로선 처음으로 타이틀 홀더에 오른 루이나이웨이 9단. 그는 10년의 유랑 딛고 정상급 승부사로 우뚝 솟은 여장부다. 2월 21일 광화문에 있는 동아 미디어센터는 하루 종일 낯선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새 천년 벽두부터 최강 이창호를 메다꽂아 화제가 되었던 ‘반상의 마녀’ 루이나이웨이(37) 9단이 등판하는 날인 탓이었다.

등판도 예사 등판이 아니었다. 그 한 판을 이기면 전통의 타이틀 국수에 오르게 되는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상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조훈현 9단. 루이는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를 KO시켜 버렸고 그 이전엔 신예 강타자 김승준을 넉다운 시켰다. 또 그 이전엔 랭킹 4위 최명훈을 고꾸라뜨렸다. 이미 그 한판 한판이 바둑가에선 심상치 않은 뉴스거리였다. 그래서 루이 9단의 욱일승천하던 기세가 국수 조훈현에게까지 미칠지 모두들 관심을 쏟았다.

“던졌어, 던졌어, 조 국수가 던졌어”오후 7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검토실이 벌집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필시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루이9단의 승리로 끝난 21일의 대결은 한국 바둑사가 새로 쓰여져야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날의 기록을 위해서는 바둑사에서 한 페이지로는 모자랄지 모르겠다. 국내 50년 바둑사상 첫 이방인 타이틀 홀더가 탄생한 순간이요, 한 중 일 공히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첫 여류 타이틀 홀더가 되는 순간이었으니까.


막 내린 이창호 독주시대

바둑계로서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루이9단의 등장으로 바둑계는 일단 정상구도가 전면적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이창호를 정점으로 조훈현과 유창혁이 뒤를 따르는 ‘1강 2중’ 구도가 전면적으로 수정될 지 모른다. 아직은 이른 판단이지만 루이9단이 이창호나 조훈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창호의 ‘일인독주’시대도 끝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루이9단의 강세를 점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전투형 기풍에 있다. 그녀는 전신(戰神)이라는 조훈현과의 3번기에서 시종 전면전으로 일관한 끝에 조9단을 넉다운시켜 버렸다. 이창호의 능기(能技)가 끝내기라면 루이9단의 능기는 전투다. 그런데 전투 하나만으로도 조훈현을 넉아웃시킬 정도이니 싸움에 강점이 없는 이창호로서는 그녀와의 대결에서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10년 공백 깬 정상 등극

무엇보다 루이9단의 정상 정복은 ‘노력하는 자가 과실을 따먹고 최선을 다하면 못따먹을 과실이 없다’는 진리를 입증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미 바둑가에선 소문이 난 얘기지만 루이9단은 남편 장주주(38세) 9단과 함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국기원을 찾아 기보연구에 열성이다.

그녀의 노력을 그 정도의 공부로만 평가하면 결코 안된다. 루이9단에게는 무려 10년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 공백기를 딛고 그녀가 정상에 설 정도라면 숨겨진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녀의 괴력도 이창호 못지 않게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다.

익히 알려진 대로 1990년, 지금은 그림자보다 더 가까이 지켜주는 남편 장주주가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나자, 피앙세를 따라 중국을 등진 루이9단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바둑으로 설 ‘무대’를 찾는 데만 10년이란 세월을 허비했다. 장주주는 천안문 사태 때 피켓을 들었다는 이유로, 또 고위관료와 알력을 빚어 중국에서 기사생활을 하기가 힘들었다. 장주주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고 그녀와 함께 한 ‘동거생활’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기에 바빴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팬들로부터 간간이 레슨요청도 들어와 허기는 면하게 되었으나 결국엔 승부사란 사실을 잊고 살 수 없다는 걸 루이9단은 깨닫는다. 그리고 1992년 짐을 쌌다.

일본으로 날아간 그들은 ‘메이저 리그’로 불리는 일본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텃밭을 이방인에게 내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퍼지면서 일본 기사들이 기어코 그들의 일본 진출을 막았다. 이미 조치훈이나 린하이펑 등 용병들에게 자신의 텃밭을 내준지 오랜 일본에서는 여류 바둑계마저 루이9단에게 내줄 수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꿈의 나라' 한국서 이룬 꿈

그러다 보니 루이9단은 한국무대를 노크하기도 하고 중국을 바라다 보기도 했다. 그녀가 한국 무대를 밟기까지는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루이9단의 표현대로 한국은 ‘꿈의 나라’였다. 그녀는 지난해 4월 한국에 상륙하자 마자 10년 동안 갈고 닦은 비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본디 ‘승부란 기량이 아니라 기세가 최고의 요소’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승승장구했다. 정신력 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출중해진 루이9단이었다.

그녀는 지난해 7월 여류국수를 ‘예정대로’ 따내더니 1999년 바둑문화상 승률상을 수상한다. 또 새 천년 벽두부터 이창호를 꺾어 대파란을 이르킨 후 급기야 정통 국수전까지 휩쓸어 버렸다. 바로 사흘 전 흥창컵 세계여류 선수권을 차지한 건 국수전 파란의 전주곡이었고.

루이9단의 별명이 ‘마녀’에서 ‘미녀’로 바뀌고 있다. 두뇌 스포츠인 바둑은 늘 남녀노소가 동일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설파해 왔지만 실상은 수천년을 남성이 주도한 도락이었다. 그것은 남녀의 지적능력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저변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였음에도 남성우월 사상을 보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방인 여류기사 루이9단은 우리가 가진 남성우월의 편견마저 간단하게 허물어 버렸다. 어쩌면 그녀의 쾌거에 힘입어 여성바둑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한국 땅에서 받은 혜택의 몇배를 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 일본서 결혼하고 한국에서 바둑으로 정상에 오른 여장부 루이9단. 그녀는 이 대목에서 강인하게 말한다. “유랑10년-.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집약의 시간이었다”.


루이 나이웨이(芮乃偉) 약력

1963년 중국 상하이 출생

73년 바둑 입문

80년 중국국가대표팀으로 활동

86~89년 중국전국대회 여자부 4연패

88년 9단 승단(세계 최초)

90년 미국으로 이주

92년 일본서 강주주(江鑄久)와 결혼

92년 응씨배 4강(이창호에게 승리) 진출

94년, 96년, 97년 보해컵 우승

99년 4월 한국서 객원기사 활동 99년 7월 여류국수(이지현에게 2:0승) 타이틀

1999년 12월 바둑문화상 승률 1위상 수상

2000년 2월 흥창컵 우승(조혜연에게 2:1승)

2000년 2월 국수쟁취(조훈현에게 2:1승)


글 진재호(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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