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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황태자' 조훈현 꺾고 명인을 지키다

육사출신 엘리트 장교와 진흙탕속에서 세월을 보낸 특무상사 출신의 맞대결. 언제나 극과 극의 만남은 묘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늘 이런 만남은 엘리트가 강하지만 특무상사가 이기게 되는 것이 영화의 스토리다. 그들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조훈현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한국 바둑계의 ‘황태자’로 군림하는 단계였고, 서봉수는 그 득달같은 기세에 눌려 보기 좋게 들러리로 내려앉는 시절이 바로 1974년 명인전의 배경이었다.

승부는 역시 뻔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서봉수는 조훈현과 호선(互先)이 아니었다. 정선(定先)으로도 서봉수가 조훈현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시되던 시절이었다. 아니, 똑같은 프로기사에다 똑같은 타이틀 홀더끼리 호선이 아니라니 그 무슨 말인가.

바로 연습바둑 탓이었다. 당시 기사실에선 지금으로 치면 1만원짜리 한장씩을 바둑판 아래에다 묻어두는 ‘1만원 타이틀전’이 자주 열렸다. 그냥 두기는 맨송맨송하니 서로 점심 값이라도 걸고 트레이닝을 하는 셈이었다. 더욱이 그때는 기전이 많지 않았고, 프로들이 따로 돈벌이할 기회도 드물었기 때문에 기사실에서 시간을 죽이는 일이 지금보다 잦았다.

연습바둑이지만 레벨이 있었다. 조훈현이 나타나기 전까지 서봉수는 그래도 기사실에서 군림하는 위치이긴 했다. 그러나 조훈현이 군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오고나서부터 서봉수와 맞붙는 일이 잦았고, 서봉수가 지는 일이 많았다.심지어 정창현같은 ‘화통한’ 선배는 서봉수가 패하자 노골적으로 “정선으로 덤벼보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조훈현은 그 화려무쌍하고 번득이는 재주에다 ‘메이저 리그’ 일본에서 배워온 신기술을 장착한 최신형 탄도미사일이었다. 어찌 대장간에서 갓 구워온 손도끼로써 그를 제압할 수 있을까.

서봉수는 매일 터지면서도 매일 조훈현에게 덤벼들었다. 훗날의 회고이지만 터지면서 그는 묘한 쾌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복싱에서 이르기를, 맞을 때에도 눈을 뜬다고 했다. 서봉수는 조훈현의 뭇매에 시달리면서도 눈을 항시 떠서 그의 펀치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언젠가 이 거인을 만나야 할 것이니 준비를 해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의외로 없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무대에 오른 것만도 그리 나쁘지않았는데 조훈현은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신펀치를 구사해 주었기에 그를 경험해보는 것 자체가 서봉수에겐 즐거움이었다. 서울서 전학온 친구에게서 본 고급 샤프펜을 처음 본 시골소년의 신기함이랄까.

1974년 5월의 명인전은 조훈현의 화려한 날을 축하하는 축제가 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조훈현은 그날따라 어눌했다. 그의 특기인 날렵한 행마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웬지 물먹은 솜 마냥 무거운 행마로 일관하다 첫판을 패한다. 그뿐 아니다. 2국도 내리 패한 후 셋째 판을 만회하지만 결국 4국도 패해 서봉수가 3승1패로 명인을 거뜬히 방어한다.

희한한 일이었다. 연습바둑에서는 번번히 패해 자주 이기던 쪽이 오히려 미안한 맘이 들 정도였는데 건곤일척 타이틀전에서는 괴력을 발휘한 사나이 서봉수. 돌이켜 보면 조남철을 1972년에 이겼고 정창현을 1973년에 이긴 건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이해할 만하지만 1974년 황태자 조훈현을 꺾은 건 실로 이변이요, 괴력의 일단으로 이해되어야 했다.

바둑가는 서봉수의 실체를 인정한다. 명인을 3연패 한 서봉수. 그후 그는 5연패까지 방어전을 장식한다. 1975년엔 조남철을 3:0으로 다시 물리쳤고 1976년엔 윤기현을 3:2로 이겨 명인 5연패에 성공한다.

서봉수의 괴력은 한마디로 기술보다 기세로 승부한다는 점이다. 설사 기량이 떨어지더라도 정신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준 ‘승부사’ 서봉수의 등장은 훗날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사였다.


<뉴스와 화제>

· 루이나이웨이, 드디어 신화를 이룩하다

‘철녀’루이나이웨이 9단이 드디어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 루이는 2월18일 제1회 흥창배 세계여류선수권 결승 3국에서 ‘앙팡테리블’조혜연에게 승리를 거두어 2승1패로 초대 여류황제에 올랐다.

또한 3일후에 벌어진 제43기 국수전 도전 3번기 제3국에서 ‘대표기사’ 조훈현을 상대로 시종 싸움으로 일관하며 완승을 거둬 역시 2승1패로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루이나이웨이의 국수 타이틀 쟁취는 세계적인 관심속에 이루어졌다. 외국인 기사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타이틀을 따냈을 뿐 아니라 여류기사로서 본격 타이틀을 따낸 최초의 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류가 본격 타이틀을 따내어 반상 성(性)혁명을 이룩한 일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 이로써 국내 바둑계는 정상구도 개편에 불씨가 당겨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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