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점심을 함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꺼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그 친구는 “26일이 무척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완전히 몸에 밴 그는 “남들보다 결코 적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 혹시 알아? 1억원짜리 행운이 찾아올지”라며 싱글벙글했다.

그리고는 “국세청에서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정말 훈장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뭐가 훈장감이야. 진짜 해야 할 일은 젖혀두고 엉뚱한 일이나 벌이는데…”라며 쏘아부쳤다. 평소 ‘국세청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해오던 터라 역시 공무원인 그 친구가 국세청 칭찬을 길게 이어가자 부아가 났던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의 확산을 위해 국세청이 노력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경제는 투명해지고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맑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국세청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국세청은 신용카드를 받지않느냐’는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이 그렇게 절실한 정책목표라면 국세청도 세금을 받을 때 신용카드로 받는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왜 국세청은 신용카드를 취급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라고 떠들며 복권추첨이니 하는 눈꼴사나운 행사를 벌이는 것인지…. 본말이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비단 국세청만이 아니다. 우리 정부기관중에는 국민으로부터 각종 납부금이나 세금을 받는 부처가 여럿이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한 곳에서도 신용카드를 받는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못했다. 병원에서 한때 신용카드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강도높은 목소리를 냈던 정부가 막상 자신의 일에서는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조그만 음식점까지 신용카드를 취급하고 있는데 정부기관은 어째서 못한다는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만큼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탓일까. 그래도 말이 안되는게, 그러면 민간업자는 수수료만큼 수입이 줄어도 좋고 정부는 안된다는 것인가.

오래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권장했던 것이 가계수표의 사용이었다. 지금은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그 때도 정부기관에서 가계수표를 취급했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신용사회의 정착을 위해 가계수표 사용이 중요한 정책목표였다면 자동차세나 재산세 등을 받을 때 정부기관은 마땅히 가계수표도 받았어야 하고 지금도 그렇다.

신용거래가 정착했다는 미국에 가면 우체국에서 우표살 때를 빼고는 모든 정부기관에서 신용카드를 받는다. 우표는 현찰과 같기때문에 신용카드 수수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외의 경우에는 신용카드를 가장 선호한다.

매년 한차례씩 날아드는 재산세 납부고지서를 보면 신용카드 번호를 적어넣거나 개인수표를 넣어 반송토록 돼있다. 물론 구청에 직접 가서도 낼 수 있으나 그 경우에는 재산세 전액을 다받고 신용카드 번호를 적어넣거나 개인수표를 넣어 반송하면 조금이나마 할인혜택을 준다. 직접 구청에 찾아오면 그만큼 행정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니 더 내야한다는 논리다.

일이 이쯤 되면 신용사회가 정착했기때문에 미국 정부기관이 신용카드를 취급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미국 정부기관이 그랬기 때문에 신용사회의 정착이 빨라진게 아닌가 싶다.

정부는 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는 하라고 강권하는 자세, 바로 그것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공무원의 태도’다. 물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국민 중에도, 그리고 공무원 중에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일이 닥칠 때마다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말로만 국민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만 되풀이하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은 공무원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아직도 자유당 정권인가”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세상이 완전히 뒤바뀐 지금도 완강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관료사회를 보며 빈정대는 투로 던지는 말이다. 이제는 정부가 절실하다고 느끼는 일은 정부 스스로 먼저 시작해보자. 그래서 더이상 ‘자유당 공무원’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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