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권하는 사회] 말로만 영어장려, 대책은 엉망

2000 03/22(수) 11:34

목소리만 높은 정부의 영어‘찬양’- 몸소 실천해야

“인터넷에서 한국 정부의 사이트에 어떻게 들어가야 합니까.”

영자 일간지 코리아타임즈에서 기자로 일하는 앤드류 캐롤는 어느날 미국에서 온 사업가라는 사람으로부터 이같은 질문은 받고 당황했다. “검색엔진으로 찾아보면 된다”고 상식수준에서 말해주었지만 “해봤는데 없다”는 답변이었다.

앤드류는 세계 최고의 접속율을 자랑하는 야후 사이트에 직접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korean government’로 찾아보니 외무부와 국방부 정보통신부 밖에는 없고 나라별 정부 섹션으로 찾아들어가니 엉뚱하게도 정부 전산정보관리소 홈페이지가 나왔다.

이것이 한국 정부의 대외 홍보 현주소다.

정부는 외환위기이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9년 초 재정경제부 등 6개 경제부처에 외신대변인 제도를 도입하고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의 홈페이지에 영문 사이트를 추가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대한 지식이 없는 외국인도 정부의 각 부처 사이트에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안내시스템은 방치해 사실상 한국인을 위한 영문 사이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외신대변인제 1년만에 흐지부지

국제 경제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세계 공조화현상이 심화하면서 영어능력은 국제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 영어의 공용어화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정부가 국민의 영어능력을 높이는데 앞장서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거창한 대책만 마련할 뿐 정작 속을 들여다 보면 허술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초 도입한 외신대변인제가 대표적인 사례. 정부는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 경제개혁 관련 6개 부처에 영어가 능통한 기자 출신이나 해외유학 경력이 있는 6명의 외신대변인을 선발했다.

그러나 불과 1년여만에 이들중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 기획예산처 등 3개 부처의 대변인이 그만 두거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공석인 상태다. 기획예산처와 금감위는 외신대변인제를 아예 폐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정거래위는 최근 외신대변인을 공개모집했으나 적임자가 없어 고심하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있는 외신기자의 대부분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외신기자 지원은 공보관실로 이관하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공과 지원분야는 국제홍보팀을 강화해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외신대변인제에 대한 호응이 좋자 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 농림부에도 외신대변인제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외신대변인제가 출범 1년여만에 삐그덕거리게 된 이유는 제도적 뒷받침없이 우선 시행부터 하면서 나온 부작용때문이다. 당사자들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극히 꺼리지만 계약직으로 신분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공무원의 배타적인 자세, 예상보다 훨씬 적은 임금 등으로 자리를 지탱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비경제부처 영문사이트 형편없어

한 외신대변인은 “간부들 회식자리에 가면 어디에 앉아야 할지부터 고민일 정도로 외신대변인은 불안정한 상태다. 장관의 인식이 가장 중요한데 외환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사람이 바뀌면서 일관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기자 경력자나 해외유학 출신자를 뽑아놓고 급여 수준도 턱없이 낮아 당초의 취지는 퇴색됐다”고 말했다.

외신대변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외국 언론사들은 외신대변인이 하나둘씩 사라지자 통역원 사용시간을 늘리게 돼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의 한 서울특파원은 “서울 주재 외국통신사에 들어오는 외무부 보도자료조차 영문 서비스는 없다. 그나마 영문 서비스도 시간이 늦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외신기자들은 한국 정부가 아직도 국내 언론사만 신경쓰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경제 관련 핵심부처들은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상당량의 관련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띄어놓는 등 영어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비경제부처의 경우 영문 사이트만 만들어놓았을 뿐 내용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총리실 홈페이지의 영문 사이트의 경우 국무총리 소개란에 아직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프로필을 사진과 함께 그대로 띄어놓고 있다. 또 정보통신부의 영문 사이트에는 1997년에 발표된 정보화정책 자료와 지난해 10월의 보도자료 등만 있을 뿐 거의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상태다.

공무원의 영어능력은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미국방송사 기자는 “외신대변인을 통해 담당 공무원과 몇차례 영어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한국 정부에서 영어로 된 최신 자료를 입수할 수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발전이지만 한국이 좀 더 국제사회에 친근하게 알려지려면 간부급 공무원부터 영어회화 역량을 높여 방송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외국 언론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인터뷰하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공무원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현실 모르는 영어수업”

정부의 영어장려정책의 헛점은 영어교육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교육부는 2월20일 초·중·고교의 영어수업을 완전히 영어로만 진행한다는 목표 아래 내년부터 우선 주당 4시간(초등 2시간) 가운데 의무적으로 1시간 이상을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교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시 초등영어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정정웅 서울 청파초등학교장은 “세계가 영어권으로 묶여지는 추세에 맞춰 영어 조기교육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영어교육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와 이에 따른 장기적인 교사수요를 미리 감안해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영여교사 4,661명중 올해 연수를 받을 교사는 10.3%인 480명에 불과하다. 2년간 영어수업을 진행해온 서울 덕수초등학교 홍종숙(45·여)교사는 “교육연수원에서 기본교육 60시간, 심화과정 120시간을 교육받았지만 역부족”이라며 “특히 초등학교 과정은 음성언어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문교육을 받지 않으면 수업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영어교과서를 생활영어 위주로 개편하고 원어민교사의 대폭확충과 교원 임용시 영어면접을 반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학급당 학생수를 대폭 줄이지 않는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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