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찌르고 할퀴고… 입들의 전쟁

2000 03/29(수) 21:26

대변인들 '막가파식 논평' 난무

“한나라당은 병역비리자의 국회 진출을 원하는가? 병역비리자가 국회의원이 되도록 용인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모독이자 60만 국군과 그 가족을 우롱하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국회를 병역비리자 대피소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마땅히 병역비리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3월18일, 민주당 대변인 정동영)

“총선에 악용하려는 불순한 병역수사는 SS라인이 공작했다. 병역수사는 마침내 검찰 내부에서도 ‘불순한 동기의 공작수사’라는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현정권에 불리한 수사는 선거후로 미루고 야당에 불리한 수사는 돌연 선거전으로 당김으로써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다시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번 ‘검란(檢亂)’의 망령이 되살아날까 우려된다.”(3월18일,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 이원창)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군을 능멸하고 있다. 이총재가 해병대복을 입은 해병전우회원에 둘러싸여 무동을 탐으로써 자랑스런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모독하고 말았다. 두 아들을 모두 군에 보내지 않은 이총재는 무동을 탈 것이 아니라 무동을 태워줘도 신통찮을 일이다. 그의 얼굴이 이렇게 두꺼울 수 있는가.”(3월18일, 자민련 부대변인 이삼선)

“오늘날 사회 지도층의 병역비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가족의 병역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자성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또한 여당은 선거의 공명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수사를 자제시켜야 할 것이다.”(3월18일, 민국당 대변인 김철)


매머드급 대변인단 구성

총선 정국에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소위 ‘병풍(兵風)’에 대한 각 당 대변인의 논평이다. 얼핏 듣기에 민망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자당의 전략과 주공격 방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 대변인이 살벌한 성명전을 벌이고 있다. 때론 정연한 논리를 펴기도 하지만 때론 시정잡배를 무색케하는 ‘막가파식’ 논평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다.

1여3야는 4·13 총선을 맞아 대변인진을 대폭 보강했다. 민주당은 선대위 출범과 함께 모두 18명으로 대변인진을 구성했다. 정동영 대변인을 좌장으로 해 부대변인에 김현미, 임종석, 김윤태씨 등 17명을 포진시켰다.

한나라당은 이원창, 장광근 대변인 투톱체제 아래 김영선씨 등 23명의 부대변인을 두어 모두 25명으로 이뤄진 매머드급 진용을 짰다. 자민련은 변웅전 대변인, 이규양 수석부대변인, 이미영 부대변인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민국당도 김철 대변인을 중심으로 각 계파에서 차출된 7명의 부대변인이 뛰고 있다.

여야의 상당수 부대변인은 지구당위원장으로 총선후보 공천자. 민주당은 대변인 중 12명이, 한나라당은 16명이 현직 지구당위원장이다. 따라서 이들 공천자가 실제로 논평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부대변인이 대서해 이름만 걸어주는 것. 부대변인 제도가 이들 후보의 지명도를 높이는 편법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선거전의 포병역할

쏟아지는 논평은 자당의 입장을 밝히기 보다는 특정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형태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말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민주당은 3월16일 “정치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오합지졸의 골목대장 행세나 하는 이회창 총재에게 우리는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며 쏘아 부쳤다.

민국당도 이날 이 총재를 가리켜 “그의 후안무치에 소도 웃다가 정색을 할 것이다”며 코미디에 가까운 논평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17일 중소기협회장의 민주당 입당을 ‘전체주의’행태라고 공격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전이익단체의 민주당 기관화’‘전공무원의 민주당 홍보요원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을 연상케 하는 논평이다.

선거에서 대변인의 역할은 포병이다. 보병이 혈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적재적소에 원거리 지원사격을 해주는 것. 1여3야의 대변인실 포병단장인 4인방의 스타일과 타법(打法)은 어떨까. MBC기자와 앵커를 거친 민주당 정동영 대변인은 시의적절하게 정곡을 찌르는 논평이 일품이다. 정치적 사건이 쟁점화할 때마다 집권여당의 입장을 피력하는 차분하고 논리적 달변이 강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출신으로 총재 공보특보인 한나라당 선대위 이원창 대변인은 언론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적실성과 논리성이 돋보인다. 이 대변인과 함께 쌍두마차를 구성하는 장광근 대변인은 14대 전국구 의원과 과거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을 거친 인물. 저돌성과 화끈한 논평으로 정평이 나있다.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은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본능적 감각을 갖춰 치고빠지는데 능하다. 유머가 있는 화법 속에 김종필 명예총재의 의중을 정확히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철 민국당 대변인은 15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입문 후 신한국당 선대본부 대변인과 당대변인을 거친 실무형. 신문기자 출신으로 짧은 논평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강점을 갖고 있다. 김 대변인은 최근 민국당으로 옮기면서 한솥밥을 먹던 이사철 한나라당 대변인과는 동지에서 적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알맹이 없이 말꼬리잡기로 일관

보병전이 달아오르고 있는만큼 포병도 바쁘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변인 부대변인은 아침 7시반이면 출근해 회의를 시작한다. 무슨 내용을 누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 여기서 결정한다.

부대변인이 작성하는 포탄(논평내용)은 대변인의 최종 검사를 거쳐 약실(발표준비)로 들어간다. 포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시간은 오전 9~10시경. 정기논평 이외에 특별사안이 생기면 그때그때 같은 과정을 거쳐 발사된다. 사령부(당 지도부)와 지속적인 교신은 당연한 절차.

각 당 대변인이 벌이는 ‘입의 전쟁’이 끝없이 막가는 이유는 뭘까. 경희대 임성호 교수(정치학)의 분석. “각 당이 정책대결이 아닌 권력지상주의 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말이 험해지고, 알맹이없는 말꼬리잡기로 흐른다. 미국 정치판에서도 말이 험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책논쟁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상대방의 인격 자체를 건드리거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도 대변인의 도를 넘은 성명전에 분노를 터뜨렸다. 정치개혁시민연대는 3월15일 “각 정당은 또하나의 구태를 보이고 있는 대변인 제도의 본래 취지를 되살리라”고 촉구했다. “정당 대변인단이 뿜어내는 독기어린 언어들이 우리 사회를 전투적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게 정개련의 이야기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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