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뱅크, 실리 택한 대타협

2000 03/29(수) 23:11

3월20일 불거져나온 이래 닷새동안 뜨거운 공방을 벌였던 골드뱅크의 경영권 분쟁이 일단 ‘타협’으로 일단락됐다. 김진호 사장과 유신종 이지오스 사장은 2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공동대표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양측에서 4명씩 이사를 선임, 이사회를 구성할 것에 최종 합의했다.

전날 있었던 심야 술자리의 담판에서 끝내 합의도출에 실패한 두사람은 이날 표대결 직전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양측 모두 “우여곡절 끝에 골드뱅크를 살리자는 대의를 선택했다”고 발표했지만 이같은 타협이 과연 ‘잘된 일’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사실 이번 타협은 김사장의 ‘선방’(善防)에 유사장이 양보한 결과다. 당초 유사장의 계획은 김진호 사장을 비롯, 이사회에 포진한 김사장의 측근을 모두 몰아내는 것이었고 또 그럴 수 있는 힘도 있었다. 20일의 기자회견에서 경영권 도전을 공식화하고 나섰을 때만 해도 골드뱅크를 2개 회사로 분리, 지주회사쪽은 자신이 사장을 맡고 커뮤니티포털은 김상우 ICG사장에 맡긴다는 계획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판세는 유사장측에 유리했다. 최대 주주인 릴츠 펀드(지분 20%)의 막강한 후원이 있었고 ‘골드뱅크 비즈니스모델 개편’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또 지난해 코스닥시장의 대장주였던 골드뱅크가 무분별한 투자와 확고한 수익 모델의 부재, 김사장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 등으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이미 팽배해져있던 터였다.

그러나 닷새간의 ‘랠리’에서 김사장의 ‘재벌의 벤처사냥’이라는 여론몰이 반격이 상당한 공감을 얻게 됐다. 소액주주들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벤처를 재벌과 해외 펀드에 내줄 수는 없다는 김사장의 홍보전략이 성공하면서 유사장으로 하여금 협상을 제의하도록 했다.

김사장은 주총에서 “양쪽 모두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이뤄낸 극적인 타결”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표대결까지 갔다면 유사장이 유리했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장은 표대결 이후 쏟아질 비난을 걱정했을 것이고 그 결과 김사장이 막판에 제시한 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면에 두 사람만의 어떤 계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김사장이 선방한 셈이다.


제일제당 인수설등 소문 만발

타협으로 결말이 나면서 ‘처음부터 주가부양을 위한 고도의 시나리오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롬기술의 네이버 합병으로 M&A가 증권가 및 벤처업계의 테마로 떠오르자 골드뱅크가 주총을 앞두고 이를 교묘히 이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가부양을 위한 양측의 시나리오라고 보기에는 양쪽의 싸움이 너무 격렬했고 분쟁과정에서 양쪽이 입은 상처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제일제당 인수설이 더욱 그럴 듯 했다. 이번 파문의 주역인 유사장의 뒤에 이미경 릴츠 펀드 아시아담당이사가 있고 삼성가(家) 출신으로 이미경씨가 제일제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

이미경 이사는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의 맏손녀로 2년전까지 제일제당에서 영상사업을 총괄하는 이사로 재직했었다. 이 루머에는 제일제당이 현재 인터넷업계에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골드뱅크를 인수, 엔터테인먼트 사업군과 연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뒤따라 다녔다.

이에 대해 제일제당측은 “이미경씨의 개인적인 사업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또 이 소문을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진 김진호 사장에 대해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업계에서는 인터넷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제일제당의 교두보 확보 전략에서 이번 일이 빚어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재현 제일제당그룹 부회장이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드림라인의 기간통신망, 제일제당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골드뱅크의 인터넷 마케팅 채널 등 세 부문을 묶을 경우 초대형 인터넷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같은 소문이 맞다면 경영권 분쟁은 언젠가 다시 불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쟁의 주역들

김진호 사장에 반기를 든 선봉장은 유신종 전 부사장. 이지오스 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75년 미국으로 이민간 뒤 하버드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IBM 리튼 데이터시스템 및 NASA 자회사인 JPL 등에서 전산 엔지니어로 일한 바 있다. 뛰어난 업무추진 능력으로 미국에서 16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다 역이민을 했다.

지난해 5월 골드뱅크 수석부사장으로 영입되기 전에는 증권·금융 솔루션 보유기업인 ICM 등에서 영업맨으로 아시아의 개도국을 누비며 프로젝트 파이낸싱 업무를 하기도 했다. 유사장의 골드뱅크 재직기간은 지난해 5월에서 올 2월까지. 이메일로 해임통지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한편 유사장이 골드뱅크의 포털부문 사장으로 내정한 김상우 ICG사장은 유사장의 주도로 진행돼온 골드뱅크 비즈니스모델 개편을 위한 컨설팅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유사장으로부터 지목받았다는 것이다. 김사장은 1976년생의 N세대 사업가로 현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경영공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웹넷코리아 캠퍼스21 닥스클럽 패션플러스 등의 이사직도 맡고 있다.


경영권 갈등불씨 여전

골드뱅트의 경영권 분쟁이 수면밑으로 내려갔지만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 골드뱅크의 향후 비즈니스모델에 대해 김사장과 유사장의 이견이 많고 이사회도 4대4의 동수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같은 갈등이 골드뱅크의 변신이라는 생산적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골드뱅크는 제2의 도약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지분경쟁, 경영권 장악경쟁으로만 치닫는 다면 골드뱅크는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유병률·경제부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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