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땅’이란 ‘물’을 위해 있는 거다. 지상의 생활은 물에 뛰어들기 전 일종의 대기시간일 뿐이다. 잔잔한 물도 재미없다. 거칠고 난폭할수록 그는 더 흥분한다. 장애물이 많아도 좋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쾌감은 기대 이상이다.

급류에 관한 한 ‘물의 귀신’으로 불리는 김명석(37)씨. 현재 청파카약클럽 회장이자 대한카누연맹 레저카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인 ‘물의 사나이’다.

“이건 ‘예약’된게 아무것도 없어요. 스키장의 슬로프처럼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동산처럼 뭔가 미리 알고 탈 수 있는 것도 아니예요. 혼자 급류를 타다보면 처음엔 이러다 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 싶은게, 무섭고 겁이 나기도 하죠.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돌파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이 더 커요. 결국 ‘내가 해냈구나’ 하는 기분이 너무 좋아요.”

배만 있으면 물 속에선 혼자 노는 법을 수십가지나 알고 있다. 급류 속에서 배를 수직으로 세우거나 바위 위에서 회전하기, 배 뒤집기 등 한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묘기만 십여가지. 강폭 60cm, 깊이 30cm만 되면 어디든 못가는 곳이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스킨스쿠버는 물때가 안맞으면 들어가지 못하고 윈드서핑 역시 바람때를 맞춰야 즐길 수 있지만 그는 마음만 내키면 바로 뛰어들 수 있다. 특히 이맘때인 4월부터 10월말까지는 그의 주특기인 카약의 제 철. 그야말로 제 물을 만난 그다.


수상레포츠로 관한 한 실전박사급

취미로 즐긴 수영 등 자잘한 기억을 제하고도 그동안 물에서 보낸 세월만 15년. ‘미친 놈’ 소리도 무시하고 고집을 부린 끝에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큼직한 타이틀도 몇 개 땄고 국가대표급 전문선수들을 교육할 수 있는 경기지도자 1급과 생활체육지도, 인명구조 등 관련 자격증만도 여섯 개에 이르는, 카누와 카약, 래프트, 요트, 조정, 윈드서핑 등 수상레포츠에 관해선 실전박사급이다.

갖고 있는 카약만 세 대. 주로 가는 곳은 강원도 내린천과 한탄강이다. 매주말은 기본. 여름이면 아예 강에서 죽치고 산다. 특히 물이 불어나는 장마때면 가장 신이 나는 때. 다만 수재민들 보기가 죄송해 속으로만 쾌재를 부를 뿐이다. 작년 장마때엔 ‘현장조사하러 나왔다’고 얼버무린채 내린천과 한탄강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사실 이리저리 따지면 그에겐 ‘제 철’이란 것도 없다. 작고 다부진 체격에다 섬소년 같은 표정을 가진 남자는 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몸살을 한다. “겨울에 래프팅 하는 사람들이요? 별로 없어요. 단지 ‘맛이 간 사람’이나 하죠”라는 그가 바로 그 ‘맛이 간 사람’이다.

혹한의 한겨울, 얼음 덮인 강까지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배를 타고 돌아다닌다. 정 두터운 얼음장에 길이 막히면 도중에 배를 들고 걸으면 그만. 꽁꽁 얼어붙는 손발끝 관리만 잘하면 추위쯤은 크게 문제도 아니다.

워낙 물과 가깝다보니 한치 땅속은 몰라도 열길 물속은 환하게 아는 그다. 한번 물속에 들어서기만해도 금새 물 전체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물살의 빠르기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어디서 어떤 구비가 나타날지, 또는 어떤 장애물이 튀어나올지, 심지어 보이지 않는 강바닥 사정까지도 손바닥처럼 밝다.

“물도 성질이 여러가지예요. 보기엔 다같은 물이라도 사람을 당기는 물이 있고 감기는 물이 있는가 하면, 바다의 파도조차 삼각파도로부터 시작해 제 각각의 모양과 속성이 다 다르거든요. 또 수면 위의 물만 봐도 바닥의 바위가 둥근 모양인지 뾰죽한 모양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물을 오래 접하다보니 절로 알게되더군요.”


체력소모 엄청난 급류타기

물의 생리를 알면 인간이 연어처럼 물을 역류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원리는 간단하다. 아무리 세차게 흐르는 물이라도 그 표면의 빗면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 배를 움직이기만 하면 어떤 급류도 리드미컬하게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급류 자체가 엄청난 인간의 체력을 소모시킨다. 평균적으로 받는 물의 힘만 1초당 약 1톤. 물의 빠르기에 따라 1급에서 6급수까지 나뉘는데 한강과 같은 아주 잔잔한 물이 1급, 댐 방수시 나오는 물과 같은 정도가 6급이다.

이중 5급부터는 일반인 수준에선 헤어나오기 힘든 정도. 6급이면 어떤 인간도 도저히 살아나기 힘든 수준이다. 언젠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래프트로 도전한 외국인 일곱명은 단 한명도 살아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과욕만 가지고 덤비지 않는다. 한때 그도 일본에서 폭포에 뛰어내려본 적도 있지만 언제나 판단과 계산을 끝낸 뒤다. 더 젊었을 적엔 온갖 종목을 시도하며 온 몸으로 급류를 헤치고 다닌 그지만 거친 모험에도 불구하고 몇차례 바위에 어깨 등을 부딪쳐 가끔 타박상을 입은 것 외엔 그다지 큰 사고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고자들만 숱하게 건져내봤다. 음주후 한탄강에서 배를 타다가 물에 빠진 사람, 물놀이중 갑자기 움푹꺼진 강 밑바닥에 발이 빠져 익사 직전까지 간 아이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신을 건져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라도 올 여름 장마철엔 119구조대와 협조해 상습 사고지역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본격적으로 펴 볼 생각을 갖고 있다.

“원래는 수영을 좋아하다가 그냥 취미삼아 들어와본건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어요.” 물과 친한 건 아주 옛날부터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여섯 살때까지 가덕도에서 자란 배경이 있다. 학창시절 내내 국가대표 수영선수를 꿈꿀만큼 물과 수영을 좋아했고 어느날 재미있겠다 싶어 카누를 배운 뒤 정신없이 빠졌다.

1년간 정신없이 카누를 타고나자 ‘이래서 다들 카약을 타는구나’ 싶었다. 급류의 매력을 느낀 뒤 조용한 수면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7세쯤엔 아예 독립해버렸다.

국내 최초의 카누클럽인 송강 카누클럽을 만들었다. 이름은 그럴싸했지만 사실 규모는 그리 볼 품이 없었다. 그저 우리나라 급류의 발원지인 한탄강가의 한 식당 뒤에 배를 맡겨놓고 서울에서 수시로 오가며 동호인과 카누를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국내최초의 카약클럽 설립

몇가지 안되는 종목으로 만족 못해 직접 외국서적을 찾거나 제 돈까지 투자해 외국에 나가 새 종목을 배워오기도 했다. 보트를 이용하는 인플레터블에서 출발한 그는 카약과 래프팅은 물론이고 특히 지상의 스포츠를 수상에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갖가지 신종목을 도입해 선보였다.

마치 지상의 로데오경기처럼 거친 물살 속에서 다양한 고난도 묘기를 연출하는 수상 로데오, 지상의 스키대회를 물 위로 옮긴 듯한 급류 장애물경기 슬라럼, 스피드를 따지는 와일드 워터, 그외에도 수상 마라톤, 폴로 등 이름도 생소한 종목중 상당수가 그의 힘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 자신이 직접 선수로 뛴 국내외 대회도 많다. 1996년 일본 씨카약 선수권대회 1위 기록을 비롯해 여섯 번의 세계대회에 참가해 한국선수로서 맹위를 떨쳤다. 덕분에 동호인층이 엷은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선 이 분야의 세계 2위 국가로 한국을 알리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처럼 주위로부터 기분좋은 시선을 받은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3-4년. 초창기엔 급류가 좋은 장소를 찾느라 혼자서 수시로 배낭을 메고 온 산이며 강을 뒤지는 그를 보고 인근 주민이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당한 경험도 왕왕 있었다. 집에 들어가도 박대. 틈만 나면 장사도 대충 접고 강으로 내빼는 다 큰 아들을 두고 그의 부모는 “차라리 집을 나가라”고 했고 동네 이웃조차 “저 집 자식은 얼마나 돈이 많아서 저러냐”며 따가운 눈총이 이어졌다.

장사 10년에 알뜰히 모은 돈도 여기에 다 쏟아부었다. 제대를 한 뒤 바로 장사를 시작한 그는 숙명여대 앞에서 단추와 안감 등 의류재료를 팔았다. 그리고 그후 액세서리 가게도 잠시 운영한 뒤 그렇게 모은 돈을 죄다 배를 사거나 카누, 카약클럽을 운영하는데 쓰느라 바닥을 냈다. 5형제중 셋째인 그는 지금도 혼자만 미혼. “돈도 떨어지고 직업도 불안정한데 누가 시집오겠냐”며 그래도 씩씩하게 웃는다.


물위에 건 인생, 돈하고는 거리 멀어

사실 앞으로도 돈 잘 벌기는 요원한 듯 하다. 여전히 실비 혹은 거의 무료에가까운 인생계획만 잔뜩 세워둔 그다. 얼마전 동호회원을 위한 아지트 겸 카약 보관장소를 짓느라 자비를 들여 내린천 가까이 클럽하우스를 짓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뒤 동호회원들로부터 받는 돈이란 것이 매번 모임때마다 서울간 왕복 교통편에다 1박2일 숙식, 부대비용까지 두루 합쳐 단돈 2만원.

강습이란 것도 무려 4년째 무료로 가르치고 있는 동양공고 학생들이거나 앞으로 준비중인 계획도 폐교를 매입해 박물관 겸 청소년을 위한 무료강습장을 마련하는 것, 또는 하반신 불구 장애인을 대상으로 ‘자기가 먹을 것만 싸들고 오면 나머지 문제는 다 해결해주겠다’는 봉사성 교육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손해나는 일만 줄줄이 벌이고도 웬만해선 화내는 일 한번 보기 어려운 그지만 얼마전엔 지난 15년을 통틀어 가장 기막힌 일을 당했다.

조만간 대대적인 시위를 결심하고 있을 만큼 그에겐 심히 언짢은 중대사다. “얼마전 인제에 갔던 동호회원이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수상레저안전법에 저촉된다며 배를 못 타게 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어요. 15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 당해봅니다. 해양경찰청에서 시행하는 법이라는데, 참 얼토당토 않은 일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선수든 전문가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를 못 띄우게 돼있어요. 이상하게도 몇몇 사단법인에만 이것이 허용된 채 심지어 대한카누연맹소속의 활동도 막겠다는 겁니다. 일반인은 둘째치고 당장 5월말에 대만 아시아 폴로선수권대회에 선수들을 내보내야 되는데, 그럼 그 연습은 어디 가서 합니까. 다른 나라에선 오히려 국가며 지자체에서 앞장 서서 레저시설도 만들어주고 붐을 조성하는데, 우린 옆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길을 막다니,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곧 동호회원이랑 모여서 크게 항의시위를 할 겁니다. 뒷일이 걱정 안 되냐구요? 물은 오히려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신경쓰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화를 낼 필요도 없었겠지요.” 시위날짜는 몰라도, 시위장소는 이미 확고히 정해졌다. 한탄강이나 내린천 배 위. ‘물의 철인’은 하고 싶은 말조차 물에서 해야겠다는 것이다.

입력시간 2000/04/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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