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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역사 기행 ④] 영암(下)

도기의 하이테그 실현- 구림리 밸리

화사한 봄날, 먼 산에는 살구꽃, 길가에는 벚꽃이 만개할 무렵 도갑사 입구 구림리로 가는 길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행화촌’(杏花村)을 연상케 한다.

구림리 초입에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김완(金完)장군의 사당이 있고 그 길을 쭉 따라 들어가면 신라말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인연이 깊은 구림리가 나온다. 늙은 느티나무와 청태 낀 기왓장의 정자와 돌담마을에 둘러싸인 고색이 창연한 구림리 마을, 그리고 그 속에 주변과 잘 조화된 ‘영암 도기문화센터’란 단아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이나 오사카의 동양도자기미술관에 온 것처럼 착각이 들었다. 좋은 건물은 그 시대 사회의 아름다운 얼굴이다.

‘영암 도기문화센터’에는 1987년 이화여대박물관의 나선화 학예연구실장 주관 아래 학술발굴조사된 구림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8세기-10세기) 유약을 입힌, 가장 하이테크인 구림리 도기들과 찻그릇 도편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영암군이 이화여대의 기술지원으로 옛날 구림리 가마터에서 사용하던 철분과 장석 성분이 많이 함유된 붉은 황토를 이용하여 옛 구림리 도기의 전통을 재현하는데도 힘을 쓰고 있다.

‘영암 도기문화센터’라는 복합 문화공간이 개관되기까지는 김철호 영암군수의 문화적인 식견과 안목이 바탕이 됐다.

이화여대박물관(관장 김홍남)과 합심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농촌의 폐교를 잘 활용하여 1997년 전국 최초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방문화육성이란 하나의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 문화적인 쾌거다.

영암 도기문화센터에서 동쪽으로 약 500m 쯤 가다보면 야트막한 야산을 낀 도로 주변 언덕에 구림리 옛 도기파편이 수없이 퇴적층을 이루며 1Km 규모로 산재해 있다. 지금은 가마터 앞에 일제시대 방조제가 축조되는 바람에 넓은 농경지로 변해버렸지만 고대에는 뱃길로 서남해로 나갈 수 있는 포구였다. 파란 보리밭이 봄바람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신라말 최대의 하이테크였던 유약을 입힌 도기가마터는 거대한 ‘구림리 밸리’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1987년 이화여대의 1차 발굴조사 결과 구림리 가마터의 규모와 특징은 1Km에 걸쳐 구릉을 따라 1m 또는 2m 간격으로 축조된 대단위 도기 전문제작단지였다.

계획적 구상과 설계에 의해서 국가적 단위 규모로 강력한 지방호족세력에 의해 조영된 관수용 또는 특수용으로 제작한 가마터라 추정된다. 여기서 제작된 도기들은 뱃길을 통하여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가마구조는 자연구릉을 파고들어간 지하식 구조로서 평면은 대부분 타원에 가까운 고구마 모양이고 오름형식을 하고 있다.

구림리 가마터에서 생산된 도기들은 종류와 특성을 보면 대부분 생활용기들이며 특이한 것은 1976년 경주안압지에서 발굴된 9세기경의 토기찻그릇과 비슷한 형태의 도편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 도기들은 삼국시대 고분의 부장품토기와 경주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와 형식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흑갈색과 녹갈색으로 유약이 입혀진 도편은 한국 도자사 발달과정에서 가장 하이테크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은 한반도에서 자기발생을 예고하면서 청자제작기술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굽혀진 온도는 1200℃ 정도의 비교적 고온이다.

구림리 도기가마터는 월출산 주변의 차 유적지와 함께 남도의 가장 오래된 찻그릇 문화를 탄생시켰다. 구림리 가마터 답사 후 귀로에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 들려 강순형 관장이 팽주가 되어 내놓은 매화차향기에 답사의 고단함이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입력시간 2000/04/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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