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 구조조정·금리 등 불투명 횡보장세 전망

‘블랙먼데이’로 기록되고 있는 17일 한국 증시의 대폭락 이후 시장심리의 회복이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증권가 주변에서는 ‘이제 증시는 죽었다’는 극언(極言)까지 나왔고 투신권 등 기관투자자는 정부의 증시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매도세를 이어갔다.

외국인마저 부활절 휴일이 겹쳐 적극적인 시장 참여를 늦추었다. 다행히 지난 21일부터 거래소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매기가 살아나고 코스닥시장의 투매가 진정되며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장의 파국’이라는 극단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거래소는 횡보하는 양상, 코스닥시장은 재투매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한 투자를 신신당부한다.

금리는 한자리 수를 맴돌고 있지만 부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되지 않고 자꾸 은행권으로 몰려들거나 상장·등록 이전의 벤처기업을 찾아 떠나는 자금수급의 불균형이 주요한 요인이다.

미국 시장의 불안정한 랠리도 국내 시장의 안정을 더디게 하는 한 축. 증시에 몰아닥친 ‘잔인한 4월’의 후유증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기관투자자의 매도공세 중단이 관건

‘블랙먼데이’ 다음날인 18일 증시는 전날 나스닥시장의 반등 소식에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대거 ‘사자’세력이 형성돼 거래소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60포인트나 상승하는 폭등양상이 나타났지만 투신권의 매도물량이 쏟아지는 바람에 결국 39포인트 상승에 머물렀다.

코스닥지수는 무려 1,274억원의 기관 순매도물량에 거의 압사당한 형국이었다. 이후에도 지수반등 때마다 투신권 은행권은 대형 우량주를 대거 처분하면서 시장심리를 위축시켰다.

올들어 외국인이 6조원 이상을 순매수한 것과는 반대로 기관은 모두 4조원대를 순수하게 팔아치웠다. ‘블랙먼데이’ 이후에만 5,0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특히 투신권의 경우 17일 거래소에서 2,400억원 이상을 사들였다가 다음날 지수반등을 틈타 1,000억원 이상을 털어내면서 초단타매매의 성격까지 내비춰 ‘시장안전판’이라는 기관 고유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지적이 비등했다.

투신권 매도는 환매급증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동안 하락세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손실분을 회복하자며 기다리는 간접투자자가 많았지만 최근 급등락 장세 속에 한치 앞이 불투명해지자 반등할 때마다 현재 수익분이나마 지키자며 환매 요구가 더욱 증가했기 때문.

환매자금을 대기 위해서 투신권은 보유물량을 부득이 처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환매가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

투신권이 주식을 살 수 있는 주식형 수익증권에 지난해 7월까지 30조원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지금까지 대략 10조원이 환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직까지 환매 가능한 물량이 상당하다는 계산.

전문가들은 대략 6월까지 환매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종증권은 주식형 수익증권이 급증하기 시작한 1년을 기점으로 환매가 수그러들 것으로 전망했다. 대유리젠트 증권 김경신 이사는 “종합지수 800선을 회복하면 대세상승에 대한 전망과 함께 환매요구가 줄어들고 환매압박을 벗어난 투신권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전망도 암운

증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수급불안이나 저조한 실적이 아닌 전망에 대한 불투명성. 지난해 코스닥이 대활황을 이룬 것도 당장 인터넷·정보통신 벤처기업이 실적을 내지 않더라도 성장가능성과 미래가치가 인정받았기 때문.

최근 코스닥의 기술주들이 절반으로 꺾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벤처의 수익성이 기대만큼 높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대두되면서 벤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증시는 전망의 불투명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제조업계의 1·4분기 실적이 속속 발표되면서 사상 최고의 호황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증시는 이같은 실적을 반영할 움직임이 전혀 없다. 실적에 대한 전망은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예상된 것이고 당시 증시에 대부분 반영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증시는 벌써부터 내년의 실적이 올해보다 저조할 것에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단기적으로 증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금융권에 대한 2차 구조조정.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투신권의 매도세는 환매압력도 있지만 구조조정에 대비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성으로 인해 더욱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블랙먼데이’ 이후 3,000억원 이상을 팔고 있는 은행권도 구조조정 대비 차원의 물량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이 현실화하면 전면에 제기되는 지표가 자기자본비율(BIS)인데 주식의 경우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있어 물량을 최소화하는 게 이롭기 때문이다.

금리도 정부의 의지로 한자리 수를 지키고 있지만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변동이 생긴다면 증시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KTB의 장사장은 “정부는 대우채 환매일정을 앞당겨 증시 주변의 불투명성을 제거했듯이 금융권 구조조정도 최대한 일정을 앞당기는 것이 어떠한 활성화 대책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트폴리오는 중소형주 위주로

증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게걸음처럼 옆으로 기는 횡보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 기관의 매수여력이 제한적인 데다 최근 정부와 재계의 불편한 관계가 노출되고 대기업 세무조사까지 겹쳐 약세장을 탈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우량주의 약진은 힘들게 된 셈이다.

LG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수급상황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 대형주는 매물소화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수횡보 장세에서 대형주보다 중소형주에서 수익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증권가의 정설이기도 하다. 지난 21일부터 개인투자자의 관심은 벌써 중소형 종목으로 이동했다.

중소형주 가운데 낙폭과대한 실적우량주, M&A나 외자유치와 관련된 재료주를 눈여겨 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 21일 거래소에서 강세를 보인 나자인 대원제지 롯데제과 등도 모두 실적에 비해 낙폭이 과대한 저PER(주가수익률)로 꼽히고 있다. 코스닥도 박스권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실적우량 중소형주에 대한 추천빈도가 높다.

김정곤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4/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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