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와 이화여대 앞, 이태원, 강남역….

그곳은 ‘해방구’와도 같았다. 젊음과 자유가 넘쳐흘렀고 일부에선 방만과 허무마저 느껴졌다. 대낮부터 이곳저곳 골목길을 누빌 때는 마치 ‘중년 접근 금지’라는 팻말이 서있는 곳에 몰래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코와 눈썹을 뚫은 남자 대학생, 등에 문신을 하고 다니는, 자칭 현대음악가, 마치 번개에 맞은 듯 머리를 한 청년…. 솔직히 처음 이런 젊은 친구들을 인터뷰할 땐 ‘친동생이라면 한번 까무러칠 만큼 본때를 보여줘 정신을 차리게 할텐데’하는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사실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외모에는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다. 결혼 예물 반지와 시계를 장농 속에 두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바지 주머니속의 동전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다. 옷 색깔도 대부분이 부라운이나 회색 계통 일색이다.

이런 내가 신세대 남성 패션을 취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나마 내가 ‘주간한국’의 취재기자들중 상당히 신세대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 신세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세계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거칠고 독선적일 것 같았던 그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너무 앞선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나는 한동안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청춘의 에네르기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미는 듯한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이화여대 앞에서 취재를 마치면서 동행한 20대 중반의 후배 여자 사진기자가 갑자기 제안을 했다. “선배, 출출한데 맥도널드에서 감자 튀김이라도 먹고 가지요.” 그날 나는 즐겨먹던 양념 치킨보다 휠씬 맛있는 닭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5/03 19:38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