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철학의 이단자들/중국철학회 지음/예문서원 펴냄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그 사회를 지탱해 가는 주류의 무리가 있다. 이들은 당대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이자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다. 하지만 그 안정된 모습의 이면에는 ‘정체(停滯)’의 이미지가 있다.

또 작용에 반작용이 따르듯 언제 어디서나 주류의 반대편에는 비주류가 있게 마련이다. 큰 줄기를 좇아 안정된 무리 속에 섞이기를 거부하고 굳이 변방에 서기를 고집하는 이들은 이탈의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 의식과 문제 제기는 자칫 한 방향으로만 치달을 수 있는 흐름에 제동을 걸어 속도와 균형을 조절한다.

흥미로운 것은 동양 철학의 경우 옛날의 비주류가 여전히 오늘날에도 비주류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중국 철학의 이단자’는 5,000년 중국 역사에서 비주류에 속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춘추 말기의 사상가 양주(楊朱)는 묵적(墨翟)의 겸애설(兼愛說)에 상대되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나의 털 한 올을 뽑아 세상을 구제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공자와 맹자를 따르는 주류파로부터 극단적 이기주의로 비판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결국 “양주의 사상이 개인을 존중하는 정치적 불간섭주의, 나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존중하는 ‘생명 중시사상’이 핵심”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국 중기시대의 사상가인 혜시(惠施)는 만물의 평등성을 설파한 논리학자였다. 혜시는 “만물을 널리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국시대 일곱 나라의 쟁패가 한창이던 당시 그의 주장은 철저히 무시됐지만 그는 격변기에 평화와 우애가 넘치는 세상을 꿈꾼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완적(阮籍)은 허무주의가 판을 치던 위진시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음주와 관련한 숱한 기행으로 당시의 주류였던 예교(禮敎)를 반대하는 이단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완적은 현실 사회의 종법적 등급 질서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문제 의식으로 중국 철학사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논의를 가능케 한 인물이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북송의 유학자 왕안석(王安石). 그는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신법을 추진하다가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혀 파직과 함께 몰락한 인물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에게 몰려난 뒤 왕안석은 희대의 간신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은 왕안석은 숭고한 개혁 정신과 고매한 인격을 소유했던 지식인이라고 복권시키고 있다.

남송시대의 사상가인 등목(鄧牧)은 남송이 몽골에게 멸망한 이후 벼슬길을 단념하고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인물이다. 그 때문에 그는 울분만 있을 뿐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중국 철학사에서도 도외시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은둔주의 속에 내재하는 사회 비판 의식을 확인하고 왕조 교체기에 ‘은둔’이라는 행위를 통해 유학의 현실 비판정신을 계승해나가려 했던 지식인의 자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홍수전(洪秀全)은 청조 말기 농민 봉기군을 이끌고 태평천국을 건설했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 전통의 유교적 사상을 내던지고 기독교와 중국 전통 사상을 결합시켜 당시의 전통적 통치체제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홍수전은 종교적 평등주의자였으며 핍박받는 소농 위주의 경제체제와 농민의 전통적 균등 배분 사상에 기초한 공상적(空想的) 농업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이밖에도 이 책은 이지(李贄), 당견(唐甄) 등 중국 사회가 사상적으로 썩지 않는 역할을 했던 비주류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입력시간 2000/05/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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