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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서울 종로구 홍파동(紅把洞)

옛 정보통신망의 구실을 하던 파발골

홍파동(紅把洞)은 옛 서부 반송방(盤松坊)의 어수정(御水井), 신촌동(新村洞), 월암동(月岩洞), 파발동(擺撥洞), 천변동(川邊洞)의 일부와 홍문동(紅門洞)을 합해 ‘홍문’과 ‘파발’의 머릿 글자를 각각 떼어 1914년 4월1일 일제가 엉뚱하게도 ‘홍파정’(紅把町)이란 이름으로 창지개명(創地改名)한 것이다.

그런데 홍파동의 ‘파’(把)는 본디 ‘擺’였던 것을 일제가 ‘把’로 고친 것이다.

홍파동 안에는 이이(李珥) 율곡(栗谷)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 문성묘(文成廟)가 있다. 문성묘는 원래 황해도 벽성군(碧成郡)에 있었다.

8·15 광복이 되면서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자 1947년 4월에 율곡의 14대 손 이재능(李載能)씨가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38선을 넘어와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1958년 선생의 11대손 이시영(李始榮)씨의 주선으로 젊었을 때 율곡선생이 공부하던 자리인, 높고도 아늑한 이곳을 가려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셨다는 것이다.

사당 아래에는 강당이 있고 사당 서쪽 산 밑에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는 ‘삼기’(三奇), ‘성동인우 애지산학’(性同麟羽 愛止山壑)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바위 밑에는 맑은 우물이 있다.

또 옛날 조선조 때 이 홍파동과 교북동(橋北洞) 일대에 걸쳐 파발마(擺撥馬)가 대기하는 역참(驛站)이 있었다 하여 파발골, 또는 파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파발’이란 조선조 중기 이후 변경의 군사정세를 중앙에 신속히 전달하고 중앙의 시달사항을 변경에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오늘날 정보통신망과 같은 제도다.

파발에는 말을 사용하여 보다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기발’(騎撥)과 사람의 도보에 의해서 전달하여 ‘보발’(步撥)이 있었다.

정부의 정보통신 전달 구실을 하던 파발골! 그 파발골에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나라가 암울했던 구한말의 일제 강점기에 언론의 선각자들이 우국충정을 담아 나라안 곳곳에 정보와 소식을 알리던 직필(直筆)의 산실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일제의 강압에 따라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무효를 주장한 대한매일신보가 여기에 자리했고 이 신문의 창간자이자 영원히 이 땅에 잠든 베델(한국명 裵說)의 집이 또한 여기에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였던 최은희(崔恩喜)씨의 집도 이 파발골에 있었다. 이와 함께 동요 ‘봉선화’, ‘고향의 봄’의 작곡가 홍난파(洪蘭坡)씨가 살던 집도 이곳에 있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매일신보 사옥’, ‘배설의 집’, ‘최은희 집’, ‘율곡 선생의 문성묘’, ‘홍난파 집’ 등을 묶어 ‘언론사적공원’을 만들 계획이라니 ‘파발골’이라는 땅이름과도 그리 무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 인근의 ‘살구골’이 풍기는 이미지 또한 난파의 ‘고향의 봄’을 연상케 하는 땅이름이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이사

입력시간 2000/05/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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