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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⑩] 텐노(天皇)①

‘텐노’(天皇)는 일본의 임금이다. 지금은 텐노의 우리식 발음인 ‘천황’이라는 호칭이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지만 뿌리깊은 거부감에서 굳이 ‘일본 국왕’ ‘일왕’ 등의 호칭을 고집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천황이라는 호칭에 대한 거부감의 바탕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지만 대개는 겹쳐져 나타난다. 우선 식민지 지배를 겪은 피해 당사자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정점이었던 천황에 대한 반감이 있다. 내용상으로는 꼭 그렇지도 않았지만 일제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서 늘 천황의 뜻을 앞장세웠다.

그 때문에 피해자의 저항감은 자연스럽게 천황에 집중됐으며 나중에는 구체적 인물보다 천황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한편 유교의 정명론(正名論)의 침투로 이름과 호칭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우리의 상대적인 자존심 손상에서 기인한 콤플렉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일본은 태풍이 잦은 바다 덕분에 한번도 중국의 세력권에 흡수되지 않았던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단순히 결과만으로 왕과 천황을 비교한 결과이다.

구한말 국권이 가물거리던 당시 대한제국을 수립, ‘광무’(光武)라는 연호와 ‘고종(高宗)황제’를 내세운 것은 반외세 자주의식의 표현이었지만 ‘건원칭제’(建元稱帝)에 대한 오랜 집착의 표현이기도 했다.

따라서 오랫동안 오랑캐의 나라로 여겨 온 일본의 임금을 천황으로 부르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에 어긋났다. ‘피터 대제’ ‘니콜라이 황제’ 등은 그대로 부르면서 일본에 대해서만은 ‘왕’을 고집해 왔다. 이웃 나라에 대한 특별한 경쟁의식 때문이다.

일본에서조차 텐노가 보편적인 호칭으로 정착한 것은 겨우 100여년 전의 일이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인 1881년 대일본제국헌법(제국헌법) 제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등장했고 1889년 제국헌법의 공포에 의해 확정됐다.

헌법 초안 논의 당시 ‘고테이’(皇帝) ‘고쿠테이’(國帝) 등의 제안이 난무한 것은 물론 헌법 공포 이후에도 1936년까지의 외교문서에서는 고테이와 그 영어 번역인 Emperor가 쓰였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호칭의 혼란이 더욱 심했다. ‘바쿠후’(幕府·군사정권)의 최고 실력자인 도쿠가와(德川)가문의 역대 ‘쇼군’(將軍)이 ‘다이쿤’(大君)이라고 불린 반면 천황은 ‘미카도’(御門) 또는 ‘다이리’(內裏)로 불렸다. 존경의 뜻을 담은 ‘긴리사마’(禁裡樣), 또는 ‘덴시사마’(天子樣)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했다. 또 바쿠후 타도에 나섰던 무사들 사이에서는 ‘교쿠’(玉)라는 말이 천황을 가리켰다.

일본이 근대국가를 세우면서 국민들에 익숙하지도 않은 텐노라는 명칭을 택한 것은 그 특별한 함축 때문이다.

텐노는 ‘하늘의 신을 주재하는 최고 신격’을 뜻하는 말로 중국의 도교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이 현실의 군주를 가리키는 말로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674년의 일이니 일본에 들어온 것은 훨씬 뒤의 일일 것이다.

특히 일반 용어는 아니었지만 궁정의 특수용어로 정착했던 ‘스메라미코토’라는 말을 표기하는 데 가장 의미가 가까운 한자로 차용된 것이 천황이었다. 이를 한자음으로 텐노라고 읽은 것이 언제부터였던가는 분명하지 않다.

‘스메라미코토’의 ‘스메라’는 ‘스베루’(統べる·다스리다)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스메루’(澄める·맑게 하다)라는 말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전자는 세속적인 왕권을, 후자는 신성 왕권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신성한 사람, 즉 귀인을 뜻하는 ‘미코토’의 원래 뜻이 말씀, 천명, 신탁(神託)이었음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후자쪽에 무게를 싣고 싶다. 지금도 무녀(巫女)를 ‘미코’라고 읽듯이 나중에 신분이 높은 사람과 관련된 접두사로 쓰인 ‘미’(御)는 원래 영적 능력을 가진 자에 대한 외경심의 표현이었다.

스메라미코토의 한자 표기인 천황은 이처럼 종교적·제의적인 함의가 짙다. 스메라미코토 이전의 일본 문헌은 천황을 ‘오키미’(大君·大王)로 칭하고 있다. 대군·대왕은 초기 부족 연맹체 국가의 수장을 가리키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종교적인 색채는 포함돼 있었다. 현재 상대방을 조금 높여 부르되 절대 윗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기미’는 당시에는 임금은 물론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널리 쓰였다. 기미는 ‘가미’(上·神)와 뿌리가 같은 말이다. 위는 곧 하늘이니 신과 자연스럽게 통한다.

일본 최초의 국가인 ‘야마타이’(邪馬台)국을 한반도 출신의 무녀 히미코(卑彌呼)가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제정일치 시대의 군왕의 이미지에 덧씌워진 신의 개념을 현대까지 이은 것이 텐노이다. 일본의 선각자들이 바쿠후의 권위를 대체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 잠자던 텐노의 개념을 되살린 것이다.<계속>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0/05/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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