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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강타하는 훔쳐보기 프로그램

6월1일 저녁 7시 1,700만명이 넘는 미국인의 눈은 CBS-TV로 쏠렸다. 그동안 방영여부를 두고 많은 관심을 쏠렸던 ‘생존자’(Survivor)라는 프로그램이 이날 첫 방송을 타기 때문이다.

닐슨 미디어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1,700만~1,8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고 이 시간대에 CBS-TV가 지난 2년간 방영한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나라한 생존의 모습 방영

이 프로그램은 최근 유럽과 미국 방송계를 휩쓸고 있는 훔쳐보기 형식의 실제 게임이다. 미국 전역에서 지원한 6,100명 중에서 선발된 각계각층의 남녀 16명이 보르네오섬에서 7시간 떨어진 풀라우 티가라는 무인도에서 13주동안 지내는 모습을 방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탈락자를 정하고 최후의 생존자는 100만달러를 상으로 받게 된다. 출연자는 해군 특수부대 출신의 72세 노인에서부터 22세의 대학생까지 다양한 경력과 나이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섬에서 기초적인 먹거리부터 모두 해결해야 하는데 CBS측은 이들이 쥐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방영할 계획이었으나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측은 이들의 3일간 생활을 45분 분량으로 편집해 매주 수요일 방영하는데 나중에는 생존자간의 성관계까지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CBS의 레슬리 문브스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몇몇 커플은 아마도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CBS측은 이 프로그램이 성공할 경우 내년 1월쯤 유사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히말라야나 안데스산맥 등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이같은 유형의 프로그램은 최근 미국에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란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ABC-TV가 방영했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실제로 간호사 출신의 한 여성이 즉석에서 백만장자로 알려진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떠났으나 나중에 결혼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여성은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후회한다”며 울면서 말했지만 플레이보이에 누드사진을 게재하기로 계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게임 프로그램이 처음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네델란드에서다. ‘빅 브러더’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주부 카린 반 엘스위크(40)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 아벨두른에서는 그냥 카린이라는 이름만 쓴 편지도 그녀의 집에 배달될 정도다.‘빅 브러더’는 카린 등 9명의 사람이 100일동안 한 집에 사는 모습을 24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방영한 프로그램이다. 마지막회가 방영된 날에는 시청률이 무려 53.6%로 치솟아 거리에 인적이 끊어질 정도였다.


"사생활 상업화" 비난 쏟아지기도

네덜란드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빅 브러더’가 방영됐다. 독일의 RTF2가 3월1일부터 방영한 ‘빅 브러더’는 시청률이 23%대에 이르렀으며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바이에른 뮌헨팀의 축구경기의 시청률보다 높게 나오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출연자들은 팬사인회를 갖고 광고에 출연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출연자 10명을 뽑는데 무려 2만여명이 지원했을 정도다. 그러나 침실이나 욕실에도 카메라를 설치해 방영함으로써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사생활을 상업화했다”는 비난이 들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에서 ‘빅 브러더’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이 프로그램이 TV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방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빅 브러더’의 웹사이트에 접속만 하면 편집을 거치지 않은 실시간 영상으로 출연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이 웹사이트의 접속건수는 기획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10배나 많은 5,200만건에 이르렀다.

방송사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웹캠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사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방영하고 있는 사람이 현재 25만명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TV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삶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노출증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전에는 불쾌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노출증이 이제는 ‘모험’이라는 의미로 바뀌는 것이다.

과거의 탐험가들이 거친 환경과 거센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듯이 ‘빅 브러더’의 출연자들은 수백만명의 낯선 사람 앞에서 몸을 씻고 울기도 하면서 자아를 탐험하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현대인의 훔쳐보기 심리와 맞물려 시청률도 크게 올릴 수 있어 일거양득인 셈이다.


비판불구 유사프로그램 봇물 이룰 듯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네덜란드에서는 ‘빅 브러더’의 방영계획이 발표되자 심리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해 방송사측이 출연자들을 선정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독일에서는 방송규제위원회가 이 프로그램을 취소시키려고 시도했다가 법적 근거가 없어 포기했지만 기획자들은 하루에 한 시간씩 집안의 침실 하나는 촬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히려 출연자들이 이같은 조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고 모험의 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빅 브러더’의 출연자들은 생각처럼 무작위로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측에서 프로그램을 흥미있게 만들기 위해 면밀한 계산을 통해 선발된다.

네덜란드에서 방영된 ‘빅 브라더’의 기획자들은 시청자들이 출연자의 일상생활에서 드라마같은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반항아, 지도자, 어머니 혹은 아버지, 아름다운 소년과 소녀, 못된 누이 같은 타입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만으로는 부족했다. 출연자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충돌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출연자의 샤워시간을 90초로 제한했다. 또 출연자에게 우편번호 90개 외우기, 줄타기 배우기, 집 바깥에 피워놓은 불을 4일동안 꺼뜨리지 않기 등의 과제를 내주었다.

네덜란드 ‘빅 브라더’의 기획자이며 유럽의 다른 나라와 미국판 ‘빅 브라더’ 기획에도 참가한 폴 로머는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사람의 생활이 보통 사람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현대인의 왜곡된 심리에 기댄 비정상적인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이같은 형식의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바탕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길 것이란 게 방송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입력시간 2000/06/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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